수시(隨時)를 없앱시다!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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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隨時)를 없앱시다!

2019.09.23

아래는 최종 학력이 중졸이 되어버린 정유라와, 내신 성적에 ‘가’와 ‘양’이 많아서 ‘양가집 규수’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장시호의 연대 수시 입학을 보고 필자가 3년 전에 ‘차라리 학력고사를 부활시킵시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 중 일부입니다.

대입 수시 전형은 정성적(定性的) 평가입니다. 합격과 불합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어떤 전형보다도 ‘공정성’이 담보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합격 과정을 보면 도대체 어느 한구석도 공정성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어느 누구도 대입 전형을 신뢰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부정 입학한 사람이 이 두 사람뿐일까?”“이참에 전수조사라도 해봐야 되는 거 아냐?”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수시전형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양하고 대학마다 기준이 들쭉날쭉해서 대학 교수들조차도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할 정도라서,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개연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양하고 복잡해지면 오히려 허점이 생깁니다. 아는 사람만 교묘하게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의적으로 특정 수험생에게 편의를 봐주더라도 표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3년 동안 입시 비리와 관련한 뉴스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공분을 산 뉴스가 교수들이 자신의 자녀를 논문의 공동 저자로 등재해서 이를 수시전형에 활용하고 그 자녀들은 교수 부모를 둔 덕에, 그 어려운 논문을 ‘직접 쓴’ 학생이 되어 입시에 큰 혜택을 받게 됐다는 거였습니다.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능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당연히 그 해 성적은 취소되고, 다음 해에도 응시 자격이 박탈됩니다. 그런데 수시전형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된 이런 사례의 자녀들은 아직 학교에 잘 다니고 있거나 이미 졸업했을 겁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이제는 듣기만 해도 피로도가 몰려오는 ‘조국대전’이 촉발된 계기도 자녀의 수시 스펙 문제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자녀의 진로에 맞춰 부모들의 ‘자녀 스펙 만들기 품앗이’까지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따로 있었던 거죠. 부모 잘못 만난 아이들은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보통의 부모는 해 줄 수 없는 그들만의 뒷바라지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아이만 교묘하게 쉬운 길을 택할 수 있고 이들 앞에 어쩌다 오르기 힘든 계단이 나오면, 늘 부모가 사다리를 대어주는, 이상하지만 합법적인 입시과정들 덕분에 그들은 늘 앞서 나갔습니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왜? 아무도 이렇게 지도층에 ‘이용당하는 입시제도’를 개선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결과적으로 성공한 장관이 되든 아니면 피하지 못할 결정적 흠결이 드러나서 중도에 하차하는 것 따위는 이미 그의 표리부동한 모습에 실망한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겁니다. 외고에서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과연 아무나 가능할까요? 세상에 어느 의대 교수가 생면부지인 고등학생에게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도 논문의 제1 저자를 허용할까요? 봉사활동을 하면 대학 총장이 표창장을 아무나 줄까요?

그런데, 뉴스의 초점은 지나치게 정치적입니다. 여야의 대치, 청와대의 지지율 변동 추이, 검찰 개혁에 얽힌 대립 등등, 얽히고설키고 물고 물어뜯는 대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정치꾼들의 싸움 중계가 서민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검찰개혁이라는 당연스러운 명제마저도 이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결국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의도인지 헛갈리게 된 마당에, 더 나아가 옳고 그름보다는 내 편, 네 편만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뉴스를 통해 싸움 구경만하게 됩니다. 하기야, 싸움 구경은 늘 재밌기 마련입니다. “조국대전이 재밌는 이유는 나는 다칠 일이 없기 때문이야.” 라는 누군가의 자조 섞인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심도 잃고 품위도 실종된 뉴스의 생산과 소비행태가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부조리를 생산하는 입시제도라도 평등하게 만들어서 젊은이들의 열패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의 방향을 돌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때, 젊은이들에게 진보 지성의 상징이었던 조국 장관마저도 자녀교육에서는 이중성을 보여 주었고, 그런 그가 장관에 임명되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이 이제는 그저 듣기 좋은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만큼, 그 말 많고 탈 많은 대입수시전형을 싹 들어내서, 앞으로 힘있고 빽 있는 인간들이 제 자식을 위해 입시를 이용해 먹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조국사태를 보면서 진보든 보수든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민낯은 이렇게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회에서 정의를 세우려면 제도 자체가 단순하고 명확해서 이를 어기는 경우 그 잘못이 확연히 드러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확실하게 공정했던 입시였던 학력고사 시절로 되돌아가 시험점수로만 줄을 세워야 이런 폐단이 없어질 겁니다.

이른바, 조국대전을 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의 우선순위는 사법개혁보다 입시개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녀의 계급이 정해지는 이 땅에서, 평범한 부모라면 어느 누가 자식을 낳고 싶겠습니까? 출산율 떨어진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식 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기껏 출산 장려금 몇 푼 준다며 아까운 세금 펑펑 쓸 일이 아니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다시 만들려고 노력해야 자식을 낳고 싶어질 겁니다. 사교육 문제를 개혁하고 수시를 없애고 입시를 획기적으로 단순화해서, 경제적 문제로 교육에 차등이 생기고 부모의 지위가 입시에 영향을 끼칠 개연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서, 앞으로 인사청문회에서는 제발 후보자의 비전과 자질만 검증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수시를 없애야 나라가 삽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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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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