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성공률 98% 미스터리···韓 기술위기 원인 따로있다"


"연구 성공률 98% 미스터리···韓 기술위기 원인 따로있다"


     “지금까지 정부 출연연구소의 기술 개발은 보고서단계에서 그쳤습니다. 현실 적용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하고도 성장엔진 하나 못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환진 UST 교수

  

국가연구소 대학원인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노환진(62ㆍ사진) 교수는 국내 과학기술계에 소문난‘미스터 쓴소리’다. 관료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 내는 현실에서 노 교수의 목소리는 두드러진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도“정치와 관료가 한국의 과학기술을 망친 원인”이라고 격정 토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 교수 자신이 과학기술 관료 출신이기에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중앙일보가 지난 9일 서울 시내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정부가 부품ㆍ소재 육성 등 기술독립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태껏 제대로 해오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할 수 있을까.   

“너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지금과 같은 자세로 한다면 제대로 된 성공사례가 나올 수 있다. 이때까지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 단순히‘기술 확보’만을 목표로 한 연구과제는 성공해도 확인하기 어렵다. 상용화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입품을 대체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추진하는 연구과제는 성공 가능성이 크다. 역설적이지만 성패가 분명하면 실패하지 않으려 애쓸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가 고질적인 한국 R&D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실마리를 주는 기회가 돼야 한다. 나중에라도 일본이 입장을 바꾸더라도 이제 시작한 부품소재의 연구개발은 계속 가야 한다. 우리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이 너무 유행을 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지난달 24일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과학기술 정책이 정권에 따라 크게 변동해왔다”며“부처 실ㆍ국장들은 새로 임용된 장ㆍ차관의 의지를 간파한 다음, 그들의 뜻에 배치되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연구 현장에 와서는 장ㆍ차관의 의지가 그러하니 이해해 달라고 사실상 강요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연구자들도 이미 예상한 일이라고 각오하고 있다”며“그들에겐 제대로 된 연구개발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간 왜 반도체 부품ㆍ소재 연구를 제대로 안 했을까. 

“국내 시장규모가 작아 개발을 안 한 것도 있다. 그런 경우 차라리 일본에서 사다 쓰는 게 경제적이라 판단했다. 우리가 기술개발에 성공하고나면 일본이 가격을 떨어뜨려 한국의 상용화 의지를 꺾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정말 국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요구되는 품질을 얼마나 빨리 얻느냐는 거다. 부품ㆍ소재별로 다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은 유럽을 넘어서는 기술 강대국이다. 감정적 대립보다는 이성적 대립으로 우리의 대응자세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정부 R&D 성공률 98%라는 터무니없이 높은 평가를 계속 받고도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았다.   

“대부분의 정부 R&D 목표가 기술의 현실 적용이 아닌 가능성 확보, 즉 기술 확보에 그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지금껏 수많은 기술이 연구소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기술이 상품으로 나오기까지의 개발연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이번과 같은 소재ㆍ부품ㆍ장비에 대한 개발연구에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처음부터 개입해야 한다. 그래야 기술과 상품 사이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널 수 있다. 기술축적을 문서 형태보다 연구자에 의존하면서 사람 관리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인적자원 개발에 더 힘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문제처럼 품질이 정해진 개발연구는 연구자보다는 엔지니어의 역할이 더 큰데, 현재 출연연의 인력구조는 엔지니어가 너무 부족하다. 대학에는 엔지니어가 거의 없다.”  


 

  

R&D 과제 성공률 98%는 계속 비판을 받는데도 왜 안 고쳐질까. 

“그것은 관료와 연구자의 적당주의의 산물이다. 과제를 관리해야하는 관료 입장에서는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안 된다. 연구자는 성패가 분명한 연구를 피한다. 그러니 기술 확보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묵인하는 것이다. 연구자를 키우는 ‘연구지원’과 연구자를 활용하는‘계약연구’를 구분하고 계약연구 과제만 위원회 평가가 아닌 수요자 평가를 한다면 합리적인 성공률이 나올 것이다. 이것은 연구출연금제도의 개혁을 의미하는 일이라 쉽지 않을 것이다.”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개발연구가 안 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연구를 위한 연구’로 끝나는 구조이다. 연구과제가 지식의 확대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정부가 시키는 연구(기술예측의 결과에 의거한 국가기술로드맵에 따라 주어진 연구)로 몰아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 R&D가 제대로 된 성장동력 하나 못 만들어내고 이 지경에 이른 이유다. 대학이나 출연연의 연구자는 하고 싶은 연구보다는 정부 예산이 나오는 쪽으로 연구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연구비보다 개발비가 더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10개의 기술 확보를 할 수 있는 연구비라면 개발 과제로는 3~4개밖에 못한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연구 개발사업은 기술확보까지만 하고 개발연구는 나중에 기업이 나타나면 하자는 방침이 정책화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연구가 논문과 보고서로 끝났다.” 



  

노 교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지난 수년간 노 교수와 만났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비판의 날은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아무리 외쳐도 변하지 않고 고착화 돼가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출연연 연구자나 대학의 교수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해당 부처 관료들은 날카롭게 대응한다. ‘발언을 자제해 달라. 계속 이러면 예산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식이다. 노 교수에게도 물어봤다. 그는 “나에겐 그런 소리 안 한다”고 답했다. 현직 관료들의 선배이기도 하고, ‘항상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중앙일보


노환진

1957년생.62세


서울대 조선공학(학부)-KAIST 생산공학과(석사)-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닉대 기계공학 박사    

과학기술처 사무관   

교육과학기술부 연구지원과장 

2009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2012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기술정책ㆍ연구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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