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 건물주 계약 끝나면 나가라는 데..."투자한 권리금 찾을 길 생겨"


계약 끝나면 나가라는 건물주에게서도 권리금 찾을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건물주와 동물병원 임대차 갱신은 마쳤지만, 내년이면 갱신도 못 하고 권리금도 포기하고 나갈 처지의 김 원장을 기억하시는지요. (바뀐 건물주가 계약 기간 끝나면 나가랍니다. 어쩌죠?) 그에게 희소식이 생겼습니다. 김 원장이 투입한 1억원의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바뀐 건물주가 계약기간 끝나면 나가랍니다. 어쩌죠?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차계약 체결 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하고, 임대차가 종료될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반환합니다. 반면 권리금계약은 흔히 임차인들 사이에 체결되지요. 권리금 반환 약정도 없습니다. 기존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권리금은 다음에 들어올 임차인에게 받습니다. 목 좋은 상권에 큰맘 먹고 거액의 권리금을 투입한 임차인으로서는 장사를 잘해 후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회수하거나 추가로 받을 뿐이지요. 


 

건물주가 계약이 끝나는 대로 상가를 비워달라고 하는 바람에 권리금도 포기하고 나갈 처지에 놓였던 동물병원 수의사 김 원장. 김원장이 투입한 1억원의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그러면 상가건물이 신축되고 처음 들어온 임차인은 권리금을 지급했을까요. 이론적으로는 아닙니다. 권리금을 지급할 전 임차인이 없기 때문이지요(물론 ‘바닥권리금’ 또는 ‘지역권리금’이라고 해서 임차인이 없는 상태에서 건물주에게 지급하는 형태의 권리금도 있습니다). 그러다 임차인이 장사를 잘해서 손님이 늘어났다면 다음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두둑하게 챙겼을 겁니다. 



  

그렇게 권리금 폭탄은 계속 돌았을 텐데요. 그러다 상가건물이 철거되거나 건물주가 더는 세를 놓지 않을 때 마지막에 들어온 임차인은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요. 답은 불가능입니다. 다음에 들어올 임차인이 없기 때문이지요. 김 원장 사례가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그럴 경우에도 권리금을 돌려받을 길을 열어줬습니다. 

  


우선 A의 사례를 볼까요. A는 2010년부터 당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보장된 5년(현재는 10년) 동안 2015년까지 상가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 임대차계약 종료 무렵 음식점을 넘길 생각으로 새로운 임차인 B를 주선해 B와 권리금계약도 체결하고 건물주에게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지요. 

  

그런데 뜻밖에 건물주는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B와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했는데요. 그러자 A는 건물주를 상대로 권리금회수를 방해했다면서 권리금 상당액인 약 1억3500만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5년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받는 것을 방해하지 말도록 하고 있는데요(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건물주가 이런 규정을 위반했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2심과 달리 A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5312, 225329 판결). 2심은 A가 임대차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5년을 초과했기 때문에 임대인이 권리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전체적인 취지상 임차인의 영업이익 보호를 위한 최대기간은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5년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문언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며 임대차 기간이 지난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역시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건물주가 A에게 1억3500만원의 권리금 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해야 한단 결론이지요. A는 어쨌든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했습니다. 

  

 

상가건물이 철거되거나 건물주가 더는 세를 놓지 않아 다음에 들어올 임차인이 없다면 마지막에 들어온 임차인은 결국 권리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중앙포토]




그런데 김 원장의 사례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김 원장의 건물주는 바뀌면서 중개사를 통해 모든 임차인에게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나가줄 것을 통보했고, 건물 철거 계획이 이미 공개됐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철거한다는 건물에 들어올 임차인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줬습니다. C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C는 2008년부터 상가를 임차해 2016년까지 커피전문점을 운영했습니다. 임대차계약이 끝날 무렵 창업컨설팅 회사를 통해 권리금을 받고 신규임차인을 소개받기로 협의하던 차였지요. 

  

그런데 그 무렵 건물주는 C에게 상가를 더는 임대하지 않고 아들에게 커피전문점을 운영토록 할 예정이라고 알려왔습니다.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겠다는 소식에 실망한 C는 신규임차인 물색을 중단했고 상가를 건물주에게 넘겨주었지요. 이후 C는 건물주가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면서 권리금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안에 대해서도 2심과 달리 C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대법원 2019. 7. 4. 2018다284226 판결). 2심에선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기 위해선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주선해야 했는데 C가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김 원장의 건물주는 바뀌면서 중개사를 통해 모든 임차인에게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나가줄 것을 통보했고, 건물 철거 계획을 이미 알려줬다. [중앙포토]


그런데 대법원은 원칙적으로는 신규 임차인을 주선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봤습니다. 임대인이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주선하더라도 그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한 경우’ 주선이 불필요하고 본 겁니다. 임차인에게 불필요한 행위를 강요할 수 없다는 취지이지요. 결국 건물주는 C에게 3900만원의 권리금 상당액을 지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김 원장은 2024년까지 10년의 임대차기간을 보장받았지만 2020년 갱신할 때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을 거절할 경우 구체적 사정에 따라 갱신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선 두 사건에 비추어 보면 김 원장은 최소한 건물주에게서 권리금 상당액을 회수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김용우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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