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보다 비싼 서울의 장바구니 물가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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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보다 비싼 서울의 장바구니 물가

2019.07.22

필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아내와 장을 보러 갑니다. 따라서 장바구니 물가를 직접 느끼며 살고 있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 상승률을 뉴스로 전할 때마다, 대학에 다닐 때 배운 “통계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How to lie with statistics?)”를 읊조리게 됩니다.

지난겨울, 카레를 해 먹으려고 마트에서 감자를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놨습니다. 계란 크기만 한 감자 한 덩어리가 거의 2,000원이나 했습니다. 그 옆에 조금 더 싼 감자가 있기는 했지만 손질하면 버리는 부분이 반은 돼 보였습니다. 그 감자도 탁구 공보다 조금 더 큰 것이 한 알에 천 원꼴이었습니다. 당근은 그나마 감자보다는 조금 쌌는데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슬그머니 부아가 났습니다. ‘뭐지? 어쩌다가 감자, 당근 같은 기본적인 식재료 가격이 이 지경이 됐지? 도대체 도시 근로자는 어떻게 살라고 먹을거리 물가 관리를 이렇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웃기는 건 감자 값이 그렇게 비싼데도 감자 농사로 부자됐다는 농민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초에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뉴욕에서 3주 정도 지냈습니다. 뉴욕 레스토랑의 음식값은 확실히 한국보다 비쌉니다. 거기에 15~20%에 달하는 팁을 얹어줘야 하기 때문에 꽤 큰 부자가 아니고서는 매일 바깥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필자는 체류 기간이 긴 편이라서 취사가 가능한 호텔 방을 구해서 지냈습니다. 당연히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습니다. ‘트레이더 조(Trader’s Joe)’ 나 ‘페어웨이 마켓(Fairway Market)’ 같은 식품 체인점에서 우유, 요구르트, 오렌지 주스, 생선, 스테이크용 고기, 소시지, 버섯 같은 채소와 즉석조리가 가능한 냉동 식품 등을 샀습니다. 그런데 뉴욕 한복판에서 장을 봤는데 한국보다 더 싼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상하다. 여기가 한국보다 더 싼 느낌인데, 이 느낌이 맞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아내의 대답은 단순하고 단호했습니다. “더 싸요. 우유는 유기농 우유인데도 여기가 훨씬 싸고, 오렌지 주스는 착즙인데도 여기가 반값 정도고, 고기, 생선, 빵 모두 여기가 더 싸요. 그래서 지금 조금 화가 나요. 뉴욕보다 우리나라 장바구니 물가가 비싼 게 말이 돼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국제적 정치·경제 분석기관으로 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발간하는 이코노미스트 그룹(Economist Group)의 계열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발표한 '전 세계 생활비'(Worldwide Cost of Living 2019)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조사 대상 133개 도시 가운데 미국 뉴욕, 덴마크 코펜하겐 등과 함께 공동 7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생필품 가격은 서울이 일본 도쿄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먹고 사는 데 서울이 뉴욕보다 돈이 더 든다는 얘깁니다.

왜 그럴까요? 필자는 지난 수십 년 간, 정부가 도시 근로자의 장바구니 물가에 관심이 없었거나 관심의 우선순위가 다른 정책에 많이 밀려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명절에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 비축 물량을 풀어 놓는 정도의 일회용 생색내기 외에 어떤 노력을 했나요? 해마다 우리 농산물은 폭등과 폭락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일일까요? 그리고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농사짓는 분이 부자가 돼야 하는데 오른 값만큼 그분들의 수익이 증가했을까요? 그리고 가격이 폭락해서 산지에서 밭을 엎어버리는 상황이 돼도 도시에서는 그냥 조금 싸게 사는 정도일 뿐입니다. 물류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겠지만 그 정도로 과도한 물류비용이 드는 시스템이라면 정상이라고 볼 수 없을 겁니다. 물류비용이 핑계가 되려면, 땅덩이가 훨씬 넓은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비싸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합리적 추론을 하자면 어디선가 봉이 김선달이 우리 농산물 유통에 자리 잡고 앉아서 고혈(膏血)을 빼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걸 못잡는 건지 알면서도 안 잡는 건지 그게 궁금합니다.

포전매취(圃田買取), 계약재배, 밭떼기 등등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미리 돈을 주거나 계약을 맺어 농산물을 수확 전에 사들이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가 필요악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누구와 계약하느냐에 따라 상당부분 투기적 성격이 존재하게 됩니다. 농업구조가 근본적인 개혁이 되지 않는 한, 농가도 도시 근로자도 행복해지지 않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단계에 단계를 거치면서 가격이 올라갑니다. 농가와 직접계약을 맺고 물량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대형마트 수박이 전통시장보다 싼 이유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도매법인을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점적 지위의 자본도 한몫을 합니다. 산지에서 닭 값이 폭락해도 프랜차이즈 치킨을 2만원에 사먹는 가장 큰 이유는 중간에 병아리부터 사료, 그리고 출하계약까지 지배적 구조를 가진 거대 기업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상황을 정치하는 사람들과 관계부처 관리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집권하는 것이고 집권을 하려면 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생색을 내야겠지요. 그래서인지 정치인들에게 최근에 유행하는 풍조는 보편적 복지인 것 같습니다. 교복무상지급, 청년수당, 육아수당 등등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돈을 쓸 곳은 써야겠지요. 그런데 좀 똑똑하게 쓸 수는 없을까요? 정말로 필요한 곳, 정말로 급한 곳을 가려가며 쓰려니 일이 복잡하고 힘이 드니까 보편적 복지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류의 복지 표퓰리즘에 대해선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께서 ‘참 복지와 대중영합주의’라는 제목의 7월 19일자 칼럼에서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어쨌든 국민이 낸 세금을 아껴 가며 정교하게 쓸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차원적 해법이 필요한 서민들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주문일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또, 국민의 표로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들이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기에도 “겨울철 감자 가격을 안정화했다.” “올해는 재배 농가의 수를 조절해서 양파 가격 폭락을 막았다.” “농산물 유통구조를 단순화해서 산지는 제값을 받고 파는데도 과일 가격을 30%나 내렸다.”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언론에 노출되는 주제인 무상급식이나, 청년수당 같은 이슈에 매달리는 것이 더 실속을 챙기는 일일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 또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공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만 원으로 올린다 해도 물가가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오르면 속된 말로 ‘말짱 꽝’입니다. 그런데 정치권도 양대 노총도 돈의 액수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적인 논리로 접근하니까 숫자에 집착하는 겁니다. 최저 임금 올리는 것이나 최저 생활비가 덜 들게 하는 거나 내용은 같은 건데 어느 누구도 최저 생활비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더 힘들고 더 어렵고 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저임금도 오르고 이어서 최저 생활비도 오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라도 되는 듯, 국민들을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술수로 기만하는 것 같습니다.

“냉면 값이 13,000원이나 한다.” “콩국수가 10,000원이나 한다.”고 얘기하면서 물가가 올라서 못 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 먹는 것은 비싸도 됩니다. 다만,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사람들이 건강한 한끼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최저 생계비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해마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농산물 가격을 보면서 도대체 일을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못 하게 막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욕보다 비싼 서울의 장바구니 물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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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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