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버스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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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버스

2019.07.02

우리 동네 버스 기사들(대부분)은 자기 편하자고 승객들을 괴롭힙니다. 백이면 아흔아홉은 정류장에 설 때 버스를 인도에서 떨어진 곳에 세웁니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허둥거리면서 차도로 내려가 버스까지 몇 발짝은 걸어야 합니다. 특히 할머니들과 아줌마들! 이분들은 차도에서 버스 발판에 한쪽 발을 크게 들어 올려야 하는지라 뒤로 넘어질 듯 자세가 위태롭습니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발판에 주저앉다시피해야 차도를 밟을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버스 기사들(대부분)은 저 혼자만 바쁩니다. 서울 외곽 도시에는 환승정류장이 있습니다. 서울 가거나 서울서 오는 사람들이 마을버스와 광역버스를 갈아타는 곳인데, 광역버스 기사들은 바로 뒤에 오는 마을버스에 자기 버스를 타고 서울 가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절대 안 합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후다닥 뛰어보지만 이미 차는 떠난 뒵니다. 서울서 올 때도 그렇습니다. 마을버스 기사들은 1분만 기다리면 도착할 광역버스 승객들을 안 기다려줍니다.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라 밤중이면 벌판에 불빛만 덩그러니 으스스한  정류장이 많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대는 한여름,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 그런 곳에서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쳐 20~30분씩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은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할 겁니다. 눈앞에서 휙 떠나버린 기사님 욕도 마구 하겠지요.

우리 동네 버스 기사들(몇 명)은 승객들을 훈련시킵니다. 신호 대기 시간이 좀 긴 교차로에서 버스를 세운 기사가 벨트를 풀고 일어나 통로 끝에 섭니다. “여러분, 버스가 완전히 설 때까지는 절대 나오지 마시오 잉? 그러다가 갑자기 서면 여러분도 다치고 나도 골로 갑니다. 지발 가만히 앉았다가 완전히 서면 나오시오 잉? 뭐가 그리 바쁘요들?” 안전을 위해서 하는 교육이지만 시커먼 선글라스에 말투가 군대 유격대 조교입니다. 승객들을 졸로 봅니다. 버스가 서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전에 버스가 급출발하는 통에 못 내린 적 있었거나 빨리빨리 안 내리고 우물쭈물한다고 기사들에게서 눈치를 받은 경험 때문일 겁니다.

우리 동네 버스 기사들(꽤 여러 명)은, 이밖에 승객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는커녕 승객이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도 안 받고, 휴대폰 통화를 쉼 없이 계속하거나 라디오 토크쇼를 애청하면서 운행하는 바람에 앞자리 승객들의 귀를 괴롭힙니다.

어느 아침, 우리 동네 버스 기사들의 이 모든 특질을 다 갖춘 서른 초반쯤 된 기사(더벅머리에 세수도 안 한 듯 꾀죄죄한)가 운전하는 마을버스에 탔습니다. 이 친구, 편도 4차선 도로에서 2차선으로 가다가 신호 대기에 걸리자, 내리려는 사람이 나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밖에 없는 걸 확인하고는 “지금 여기서 내려서 횡단보도 건너 저기 환승 정거장으로 걸어가실 수 있지요?”라며 앞문을 엽니다. 아침결이라 차가 많아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밀고 들어가 정류장에 버스를 대기가 귀찮은 겁니다. 영감탱이 하나, 허리 굽은 할망구 하나. 두 사람을 짐짝 부리듯 횡단보도 위에 내려놓고 신호 떨어지면 잽싸게 직진해 가겠다는 겁니다.

버스를 차도에 세웠던 거, 내 인사를 씹은 거, 아이돌 노래 크게 틀어 놓은 거, 다른 차들 끼어들 때마다 쌍욕 내뱉은 거 등등, 짧은 거리 오면서 이 친구 했던 짓이 모두 떠올라 대뜸 “아니, 너 편차고 우리더러 여기서 내려 저 언덕 올라가라는 거냐”라고 큰소리로 꾸짖었지요. 이 친구, 사과는커녕 “아니 제 편의 한번 봐주면 안 됩니까”라고 맞받아 소리칩니다. “니네 회사에 신고하랴? 여기 불량기사 신고하라고 엽서도 있구나, 전화번호도 있고”라며 더 큰소리로 혼쭐을 냈더니 마침내는 “아저씨, 저도 대학 나왔어요. 한번만 봐주세요”라고 이상한 논리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동네 버스 요금이 9월부터 오릅니다. 대책 없이 서두른 주 52시간 근무제 전면 실시로 내가 바로 손해를 보게 됐습니다. 서울은 안 오르는데 여기 경기도는 오릅니다. 지하철 타고 다니면 되잖냐고, 서울서 공짜 지하철로 여기저기 다니는 친구들이 그럽니다만, 지하철 타려면 돈 내고 마을버스부터 타야 합니다. 그 지하철도 강남까지만 가는 거라 친구들과 옛 직장 동료들이 출몰하며 지내는 광화문이나 인사동, 시청 주변으로 가려면 또 돈 내고 버스를 타야 합니다. 비용 절감 효과는 전혀 없고 시간은 30~40분 더 걸립니다. “공기가 좀 맑은 곳에 사는 대가로 교통비는 조금 더 낼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화가 많이 납니다. 요금 오른다고 해서 내가 짐짝 취급 덜 받지도 않을 것 같고 ….

버스 요금 인상이 결정됐을 때 몇 신문이 버스 회사 주주들과 그 일가 친족이 온갖 직위에 이름만 걸어놓고 일은 안 하면서 수십 년간 급여니 뭐니 온갖 명목으로 몇 십 억 원을 꼬박꼬박 받아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자들이 내 돈 뜯어갔구나! 이 자들 붙잡아 그 돈 다 토하게 하고 합당한 벌주면 대학 나온 기사들이 대학 나온 사람답게 되려나, 뭐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차피 우리 동네 버스 기사들이 이 글 읽을 리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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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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