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년 연장이 시사하는 점

일본의 정년 연장이 시사하는 점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65세 정년-고용 유지 법안 2012년 발표

반발 상당했지만 기업에 자율성 제공하고 

이듬해부터 경기 좋아져 법 안착하게 돼

한국, 연장 논의 중이지만 기업 실적 난조

현 경제상황 고려 시 더 신중한 접근 필요


 

    일본의 현행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에 따르면 기업은 사원의 정년을 최소한 65세로 하든지, 아니면 정년을 앞둔 직원이 원하는 경우 계약사원 등의 형식으로 적어도 65세까지는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이 법이 현재처럼 수정된 것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2012년의 일이지만 수정된 법이 시행된 것은 2013년 4월부터다. 일본에서는 새 회계연도가 4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사이 정권이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넘어갔다. 2012년 수정안이 발표되었을 때 기업의 반발은 상당했다. 그러나 자민당 정부는 민주당 정권에서 제정된 법에 칼을 들이대지 않았고, 지금은 오히려 한술 더 떠 70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65세 정년 연장에 기업의 반발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2013년부터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60세 이후 고용 형태와 관련해서 기업에 상당한 재량권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8년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정년을 아예 폐지한 기업은 2.6%밖에 되지 않고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기업도 전체의 16.1%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업은 계약직원 등의 형식을 빌려 65세까지 고용을 유지한다. 종업원 입장에서 보면 60∼64세 직원의 60% 이상이 계약직원인 것으로 보인다. 계약 기간은 대개 1년이고, 매년 갱신되는 형식이다.


계약직원이 되면 업무 내용이나 연봉에 변화가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업무 내용에 변화가 있고 임금도 이에 따라 조정된다. 즉, 임금이 깎이는 것이다. 그러나 업무 내용에 변화가 없다면? 직원은 당연히 과거와 같은 대우를 받기 원하겠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계약사원으로 고용하는 부담을 기업이 졌으니, 임금만큼은 삭감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기업과 직원 간의 분쟁이 법정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수년 전, 60세 퇴직 후 계약사원으로 재고용된 트럭 운전사가 이전과 완전히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임금이 20% 이상 삭감된 것이 부당하다며 운수회사를 상대로 법정 다툼을 벌인 일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임금 삭감이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반대의 결론을 내렸고, 2018년 6월 대법원 판결은 “정년 후의 임금 삭감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는 이유로 운수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정년 후 계약사원의 급료를 삭감하지 않는 기업은 전체의 1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2013년 이후 60∼64세 인구의 고용률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남성의 경우 2012년 71%에서 2018년에는 81%로 증가했고, 여성도 같은 기간 45%에서 57%로 상승했다. 남녀 모두 10%포인트 이상 고용률이 증가한 것이다. 


청년 고용에는 악영향이 있었을까? 정년 연장이 입법되면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지 않았고, 지금은 오히려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20대 청년 고용률 역시 남녀 모두 상승했으며, 놀랍게도 비정규직 인구는 감소한 반면 정규직 인구는 증가했다. 2013년 이후 기업의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고, 다수의 대기업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덕분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정년 연장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기업의 실적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 최저임금 인상이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된 것은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탓이 크다. 현재 한국에서는 20대 청년의 25%가량이 자신을 실업자라 여기고 있다.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기는커녕 예년보다 못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 구직자들은 정년 연장으로 인건비가 상승한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지나 않을지 마음 졸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경기상승기에 정년이 연장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폭넓은 재량권을 줌으로써 정년 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노력을 함께 했다. 한국의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보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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