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라를 지키나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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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라를 지키나

2019.06.28

북한의 목선귀순 사건은 구멍 뚫린 나라 안보태세를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은 과연 누가 지키고 있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군가 ‘진짜 사나이’의 가사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돼 있습니다. 

북한 주민 4명을 태운 목선이 지난 15일 아침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으로부터 직선거리로 130㎞ 떨어진 삼척항에 정박할 때까지 우리의 군과 경찰은 몰랐습니다. NLL 인근 해역에는 북한 어선들의 불법조업을 감시하기 위해 경비함과 해상훈련초계기, 해상작전헬기 등이 3중의 경계경비를 하고, 동해의 항구들에는 경비정, 순찰병, 해안감시레이더가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선 감시레이더, 지능형영상감시체계, CCTV 등 고가의 첨단감시장비가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이들 장비와 병력들은 북한 목선이 우리의 해역을 휘젓고 다닌 57시간 동안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삼척항에서 아침 산책 중이던 주민들이 발견해 해경에 신고함으로써 군과 청와대에 차례로 보고됐습니다. 이 보고 과정에 군 당국의 사실은폐 또는 축소의 정황까지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라 늘 있어왔던 것입니다. 6·25전쟁부터 우리는 아무런 대비 없이 북한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습니다. 휴전 이후에도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당했던 무수한 침략도발 중에서 군경이 사전 적발해 제압한 것보다 민간의 신고를 받고서야 출동해 겨우겨우 수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안함폭침사건처럼  손도 못 쓰고 당한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사전 정보를 입수해서 저지한 사건은 땅굴침투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1968년 1·21사태는 휴전선을 넘어온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사건입니다. 이틀 전 파주의 나무꾼이 이들의 수상한 행동을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군경의 경계가 강화돼 청와대 코앞인 세검정에서 이들의 습격은 저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해 10월 30일 120명의 공비들이 울진과 삼척에 침투했을 때도 우리 군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사흘 뒤 공비들이 작전을 개시한 뒤 민간의 신고를 받아 소탕작전에 들어갔습니다. 1996년 강릉북한잠수정 침투사건 때도 26명의 공비들이 사흘 동안 강릉 앞바다를 드나들며 공작을 폈으나 우리 군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으며 잠수정이 좌초되어 물위에 떠오르고 나서야 발견됐습니다.

그나마 떠오른 잠수정을 최초 발견한 사람은 지나가던 택시운전사였지 해안가를 철통방어한다던 군이 아니었습니다. 1998년 6월에는 무장공비 9명을 태운 잠수정이 속초 앞바다에서 바다 속의 그물에 걸려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전방의 군인들은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도록 소중한 젊음의 시간을 나라에 바치고, 군인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후방에서 생업을 꾸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한편 생업에서 발생한 과실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해 국방비를 댑니다.

나라의 방위는 그렇게 군인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얼마나 확고하게 공유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국방력은 결정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크건 작건 개인의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빈부, 이념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우리가 지녀온 가치관에 대한 혼돈도 심화하는 모습입니다. 사회의 통합을 지향해야 할 정치세력들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집권전략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지 앞장서 양극화를 조장하는 경향도 엿보입니다.

남북이 오랜 적대관계에서 화해의 길로 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볼 북핵문제는 양극화의 촉매제로 더 기여하는 형국입니다. 그런 것들이 군의 기강해이를 초래해 안보에 구멍이 나게 된 것이라면 매우 위험한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라는 사후약방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야당들은 금방 나라가 망할 것처럼  정부여당을 향해 요란스레 정치적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꾼과 택시운전사, 농민과 어민 심지어 바다 바닥에 버려진 그물까지도 군을 도와 무수한 무장공비들의 도발을 물리치고 지켜낸 대한민국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북한의 비무장 민간인이 귀순하려고 타고 온 목선 한 척의 위치파악을 못했다고 나라가 망해서야 되겠습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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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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