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기료 할인 손실 떠안게 된 한전… “배임 여부 판단해달라” 로펌 의뢰/ 포퓰리즘 전기요금 언제까지

[단독]전기료 할인 손실 떠안게 된 한전… “배임 여부 판단해달라” 로펌 의뢰


“적자에 누진제 개편 부담 더해져”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 누진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정한 전기료 최종 개편안이 한전의 재무 구조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를 이사회가 의결할 경우 배임에 해당되는지를 로펌에 의뢰했다. 이사회가 회사에 손해를 미치는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자 법리적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전기요금 '누진구간 확장안' 최종 권고안으로 채택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18일 제8차 누진제 TF 회의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3가지 중 여름철 누진구간을 확장하는 1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jin34@yna.co.kr

edited by kcontents


18일 한전이 자유한국당 곽대훈 의원실에 제출한 ‘하계 주택용 전기요금 할인제도 관련 법률 질의’에 따르면 한전은 “1분기(1∼3월) 적자가 6200억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전에 지속적으로 불리한 방향으로 누진제를 개편한다”며 대형 로펌 2곳에 이사회 의결의 배임 여부에 대한 해석을 의뢰했다. 한전 소액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경우 승소 가능성과 이를 임원배상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도 질의했다. 한전 내부적으로 누진제 개편안에 대한 후폭풍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누진제 TF는 이날 매년 여름(7, 8월) 누진제 구간을 완화해 소비자의 전기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의 개편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정부에 보고했다. 한전 이사회와 정부 심의를 거쳐 최종안이 확정되면 한전은 매년 약 3000억 원의 손해가 불가피하다.  


곽 의원은 “한전의 적자 구조가 고착화할 수 있고 외국인 주주의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동아일보



포퓰리즘 전기요금 언제까지

온기운 객원논설위원·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원가에도 못 미치는 비정상적 전기요금 체계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햇반가격이 쌀값보다 싸고 김치가격이 배추가격보다 싸다는 식의 비유가 회자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정책당국은 요금을 현실화하기는커녕 되레 포퓰리즘식 요금 할인에만 골몰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올여름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대안 3가지도 모두 소비자 요금을 깎아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6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따라 누진 단계가 6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되면서 한국전력공사는 9393억원에 달하는 요금 할인 부담을 졌다. 작년 7~8월 주택용 요금 한시 할인 때는 할인금액이 3587억원에 이르렀다. 정부가 밝힌 올여름 누진제 개편 대안 중 채택이 가장 유력시되는 1안(2구간 전력 사용량 기준을 200㎾h에서 300㎾h로, 3구간 전력 사용량 기준을 400㎾h에서 450㎾h로 각각 높이는 것)의 할인금액은 2847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러한 막대한 요금 할인에 대한 적절한 보전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 이를 지속할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한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한전은 작년에 당기순손실 1조1508억원과 영업적자 2080억원을 기록했고, 올 1분기에는 영업적자가 6299억원으로 더욱 커졌다. 




소비자들이야 당연히 요금을 깎아주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책당국이 소비자 입맛만 맞추려고 해선 곤란하다. 전력사업자들의 재무 상황이나 전기소비가 국민경제 전반,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심을 잡고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소액주주들은 한전이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하면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사진에 요금 인상 의결을 해주도록 압력을 넣고 있기도 하다. 


산업자원부 차관 출신이며 한국지멘스 회장을 역임한 김종갑 한전 사장은 작년 4월 취임 당시 "공공성을 추구하되 원가 효율성이 있어야 하고, 주주 이익을 도모하되 국가 이익에도 부합하는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한전 주식의 51%와 49%를 정부와 민간이 각각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익성과 함께 기업성도 균형 있게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고위 공무원과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경력을 가진 그가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균형 있는 경영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의 압력과 규제 앞에서 기업성을 추구하는 경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소액주주들의 책임 추궁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딱한 상황에 처해 있다. 


법률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의 무리한 규제가 헌법 제37조 `비례 원칙`과 제23조 `재산권 보장 원칙`을 침해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전이 정상적인 투자 회수를 할 수 없게 됨은 물론 한전 및 투자자의 재산권 침해와 기업활동 자유의 침해가 문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상 측면에서는 적정 원가와 적정 투자보수의 회수가 어려운 전기요금 규제가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정·공평 대우 위반으로 인정될 염려가 있으며, 이 때문에 외국인 주주들로부터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비자 눈치만 살피는 정책을 더 이상 펼쳐선 곤란하다. 우선 월 200㎾h 이하의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해 요금을 4000원씩 공제해주는 `필수 사용량 보장공제 제도`부터 손을 볼 필요가 있다.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가구에 저소득층뿐 아니라 고소득 전문직 1~2인 가구도 많이 속해 있어 이 제도가 오히려 불공평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에만 이 제도에 따른 공제액이 3964억원이나 됐다. 


요금 규제는 현재 세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꼴이 된다. 정치권과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손을 대지 않으려는 것은 미래 세대 부담을 볼모로 현재 세대가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기요금을 정치 논리로 왜곡시키는 구태가 청산되지 않는 한 에너지 절약이나 지구환경 보전 등도 한낱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매일경제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