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1층을 점령한 도시

자동차가 1층을 점령한 도시


    언제부터였을까. 새로 짓는 건물 1층마다 사람 대신 자동차가 살기 시작했다. 필로티 구조로 지은 다가구·다세대 건물이 들어서면서다. 필로티는 건물 1층에 벽체 없이 기둥만 두고서 1층을 개방시키는 공법이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필로티를 처음 고안한 이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다. 그가 주창한 ‘근대건축 5원칙’ 중 하나다. 1층을 비워서 빛과 바람이 통하고 자유롭게 오가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 장마가 오면 습한 탓이다. 

  

그런 필로티가 어떻게 한국 다세대·다가구 건물의 건축 유형이 됐을까. 기원을 쫓아가 보면 1960년대 건축법규에는 주택 유형이 단독주택, 4층 이하 연립주택(건축면적 660㎡ 초과), 아파트밖에 없었다.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단독주택을 쪼개 여러 사람이 살도록 하는 불법 개조가 성행했다. 주거난에 시달리는 국민을 위법자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정부는 건축면적 660㎡ 이하의 4층 이하 다세대, 3층 이하 다가구 건물을 각각 84년, 90년에 법제화한다. 소위 집장사들이 골목 주거 공급에 힘쓰기 시작했다. 단독주택은 헐리고 다가구·다세대 건물이 들어섰다. 



  

자동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주차문제가 튀어나왔다. 결국 정부는 주차장법을 강화한다.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민간에서 알아서 주차 공간을 더 확보하게했다. 그 해법으로 ‘필로티’가 등장한다. 필로티 공법으로 건물을 지어 1층을 주차장으로 할 경우 1층의 바닥면적은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1층을 주차장으로 하고 한 층 더 올려 지으면 면적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 4~5층 짜리 다세대·다가구 건물의 탄생 배경이다. 


서울의 한 주택가에 있는 필로티 건물의 모습. 자동차가 지상층을 점령해버렸다. [한은화 기자]


1층에 자동차만 있는 골목길은 삭막하다. 밤이면 어둡다. 그때그때 누더기처럼 개정된 건축법이 만든 기형적인 동네 모습이다. 애당초 공공 주차장을 많이 만들어 공급했다면 어땠을까. 우리 삶터에는 늘 공공보다 민간의 분투 기록만 가득해 아쉽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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