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정 기자 논란을 보며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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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정 기자 논란을 보며

2019.05.22

“야당 입장에서 보면 여러 현안들이, 야당이라고 하면 특히 제1야당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가 주도해서 여당이 끌어가는 것으로 해서 야당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독재자’,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우선은 패스트트랙이라는 성격이, 말하자면 다수 의석을 가진 측에서 독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야당은 또 물리적인 저지를 하지 않기로 하고, 그리고 그 해법으로 패스트트랙이라는 해법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해법을 선택한 것을 가지고 독재라고 하는 것은 정말 조금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그야말로 그동안 「국회선진화법」의 혜택을 많이 누려왔는데 「국회선진화법」이 정해놓은 방법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게다가 정말 촛불 민심에 의해서 탄생한 정부가 지금 말하자면 독재, 그것도 그냥 독재라고 하면 또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색깔론을 더해서 좌파독재, 이런 식으로 규정짓고 추정한다는 것은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부르지만 만나셔야 될 상대라고는 생각하시죠?” 

"일단 그렇게 극단의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도 다 하나의 정치적인 행위라고 본다면 여야 간의 정치적 대립은 늘상 있어온 것이고 그리고 또 이제는 한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 새로운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 나가야 된다고 보는 것이죠."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인터뷰에 나선 KBS 송현정 기자의 질문 중 질타를 받는 대목입니다. 이번 대담에서 문제를 삼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가 바로 ‘독재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말을 중간에 자주 끊으려는 시도를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송현정 기자는 다수 시청자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예의가 없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이냐?” 등등 기자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고 인터뷰어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비판이 정당한 것일까요? 이 비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번 대담의 주체가 청와대가 아니라 KBS여야 합니다. 즉, 방송사가 주체적으로 아이템을 정하고 공격적인 인터뷰어를 기용해야 하며 인터뷰이는 사전에 질문의 내용을 알지 못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담이 과연 그렇게 설계되었을까요? 이번 대담은 청와대에서 기획한 것이고, 필자가 알기로, 인터뷰어인 송현정 기자는 사전에 조율된 MC 후보군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질문의 내용 역시 큰 틀에서는 정리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대통령을 인터뷰 할 때는 메인 앵커가 나서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날 방송은 YTN등 다른 매체에도 방송이 되는 것을 고려해서 KBS의 색깔을 조금 희석하기 위해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송현정 기자가 낙점되었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와대가 가만있었던 이유는 그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미디어 수용자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똑같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누구는 줄거리에 집중하고 누구는 배우들이 입고 나온 옷을 먼저 봅니다. 물론 모든 것을 세세히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참고로 필자는 배우들이 입고, 들고, 차고 나오는 PPL 상품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이번 대담을 보며 그다지 거북한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독재자’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에구, 기어이 그 단어를 가져와서 쓰는구나. 질문의 디테일이 사전에 교감이된 것일까? 아니면 기자가 용기 있게 인용을 한 것일까? 이 질문이 마치 예방주사처럼 순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역기능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문대통령의 답변에 집중했습니다.

대통령의 답변은 칼럼의 앞 부분에 이미 올려 놨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답변한 내용 중 촛불민심에 의해 탄생한 정부라서 독재일 수가 없다는 뉘앙스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상 많은 독재자가 초창기에는 국민 절대 다수의 신뢰를 기반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정권의 정당성과 독재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기자의 도발적인 질문에 흔들리지 않고 답변을 하고 상대당의 이러한 극단적 표현을 정치적인 행위로 이해를 하고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답변에서 아직은 문재인 정권에 독재정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필자가 ‘아직은’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지지세력들에 대한 경계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특정 정치인의 지지자들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마치 사생 뛰는 팬들처럼 이성적이지 않은 모습을 많이 봅니다. 지금은 보석으로 풀려난 김경수 경남지사가 허익범 특검에 소환될 때 지지자들이 길에 꽃을 뿌린 행위를 보며 필자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행위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도 태극기를 들며 주말마다 광화문을 활보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도 역시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비교할 때, 두려움의 정도는 꽤 차이가 납니다. 태극기 부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반면에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은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방송사에서 고발 프로그램을 할 때, 종교집단 또는 아이돌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방송하면 어김없이 시위대가 들이닥치거나 프로그램 홈페이지가 팬들의 성토장으로 변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 자신이 믿는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지나치다 보니 논리적으로 방송내용의 사실관계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누가 감히 우리 교주님을 건드려?”, “누가 감히 우리 오빠를 모략해?”라며 덤벼듭니다. 만약에 송현정 기자를 성토하는 분들 중에 이와 같은 이유로 참여한 분이 있다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민주주의국가라면, 정치와 권력은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쪽은 필자가 보기에는 청와대입니다. 이번 대담은 취임 2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국민께 소상히 이야기하고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기획했을 텐데,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송현정 기자에게 쏠렸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지지자라면 질문보다 답변에 더 치중해서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했음에도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답변을 잘했다.”라는 점을 부각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차후에 ‘독재자’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는 감정적 접근을 배제하고 심도 있게 논쟁을해야 합니다.

다행인 것은 논리적인 비판이 바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이 KBS의 프로그램인 ‘저널리즘 토크쇼 J’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문대통령에게 '독재자'라고 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구호였다."라며 "대담에서 기자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하면 나올 대답은 뻔하다. 기자가 그런 말을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에게 했다는 것이 일종의 낙인 찍는 효과였다."라고 지적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비판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송 기자는 ‘독재자’라는 호칭을 쓸 때, “야당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시청자와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단어가 주는 프레임 효과는 고려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 점을 위에서 김언경 사무처장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얘기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코끼리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닉슨 대통령이 TV에 나와 “미합중국 대통령은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고 얘기하자 사람들은 ‘대통령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정쟁에 이용되는 단어를 쓸 때는 매우 신중했어야 하는데 평생 취재를 했던 기자였기에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비판 받을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만약에 인터뷰어가 송현정 기자가 아니라 손석희 앵커였다면 같은 질문이어도 다르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질문은 좀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은 야당의 주장에 동의를 안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야당의 주장이 맞다면 지금 제가 이 질문을 드릴 수도 없겠죠. 이쯤 되면 눈치 채셨을 것 같은데요. 야당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신가요?”이 정도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요? 상대방의 프레임이 담긴 단어를 가져와서 쓸 때, 그리고 그 단어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는, 그 단어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하고 방송을 보는 사람도 단어의 한계를 충분히 알게 해줘야 합니다. 물론 이 질문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세상에 어느 기자가 첨예한 대립에 놓인 상황에서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대담의 제목이 <대통령에게 묻는다>였잖습니까?

총선이 내년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미 본질을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은 조금 더 신중해져야 하고, 일부 극소수 광적인 지지층 역시 역풍에 조심해야 합니다. 무조건 지지, 무조건 혐오를 외치는 사람들은 이제 외면 받을 것이고 외면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인이 정치하기 힘든 나라를 만들어야 국민이 잘 살 수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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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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