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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문화의 힘을 그리워하며

2019.05.21

근래 우리에게 문화가 있냐고 묻는 ‘이웃’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태풍급 정치 바람은 횡행하는데 문화예술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이나 사회에서 별 관심이 없어앙드레 보인다는 아쉬운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문화 국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펄쩍 뛰실 분이 적지 않겠지만, 실제로 문화 국민의 면모와는 거리가 먼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문화예술가의 이름을 거명하자면 하도 많아 오히려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 정책 수립자를 꼽으라면 그리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승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패전국 못지않은 전쟁의 고통을 겪어 그 후유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후 프랑스의 문화예술 수준을 크게 중흥(重興)시킨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대통령의 임기 초인 1959년부터 1969년 퇴임 때까지 그와 정치 생명을 함께한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입니다. 

앙드레 말로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이미 저서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 1933) 》으로 프랑스에서는 물론 세계 지식인들의 큰 사랑을 받는 저명작가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연극 시나리오 작가로도 두각을 나타낸 그가 문화부 장관 자리에 올랐으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적을 유심히 지켜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말로가 시행한 일 가운데 파리 시민과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체감한 것 중 하나는 파리 시내에 즐비한 (너무나) 고풍스러운 건물에 겹겹이 쌓인 ‘때’를 벗겨내는 ‘청소 작업’이었습니다. 정부 청사는 물론 개인 소유의 건물도 예외 없이 그의 시책을 따라야 했기에 개인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개인 소유 건물이 ‘청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정부 용역업체가 외벽 청소를 대행해주고 영수증을 건물주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영수증에 청구한 액수가 스스로 청소했을 때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원성이 얼마나 컸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외국 언론에 소상하게 보도되면서, 독일 사람들도 프랑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건물 청소’에 큰 관심을 보이곤 했습니다.

독일 유학 중 필자가 1960년대 중반 프랑스를 찾아갔을 때, 파리 시내는 온통 건물 청소 중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풍스러웠던’ 건물에서 눈부실 정도의 광채가 났습니다. 묵은 때가 겹겹이 쌓인 ‘고풍스러움’이 사라지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건축 예술품이 진면목을 드러낸 것입니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앙드레 말로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드골 대통령이 그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웃 나라 독일에는 전국에 아우토반(Autobahn)이 깔려 있는데, 프랑스도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앙드레 말로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취했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25킬로미터를 건설하는 비용으로 문화 회관을 지으면 10년 이내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첫째가는 문화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프랑스 지방 곳곳에 문화센터가 건립된 것은 물론입니다.

필자는 1967년 자동차로 프랑스 중남부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오를레앙(Orléans), 리옹(Lyon) 같은 도시 외곽에만 고속화 도로가 제한적으로 건설되어 있는 것을 보고 독일과의 국력을 비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속도로 상황만 놓고 볼 때 프랑스는 독일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앙드레 말로는 고속도로라는 ‘하드웨어’보다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했다는 점이 크게 돋보입니다. 문화예술 정책 수립자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10년 이내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첫째가는 문화국이 될 수 있다”는 말에서 말로가 당시의 프랑스를 문화 대국으로 자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프랑스는 오늘날 그의 말대로 명실상부한 세계적 문화 대국이 되었습니다.

앙드레 말로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소박한 모습을 지닌 지식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1961년 ‘한국보물 5천 년 전(展)’이 파리에서 절찬리에 열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지막 날 앙드레 말로가 찾아와서는 전시 작품을 찬찬히 감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파견되어 전시장을 지키고 있던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1984) 선생의 전언에 따르면, 그의 문화 사랑의 폭과 깊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답니다. 《그가 있었기에 – 최순우를 그리면서》 (진인진, 2010)

앙드레 말로가 ‘문화의 힘’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놓았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사회는 차분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문화의 사회성, 국제성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합니다.

우리에게는 세계적 수준에 오른 문화예술인이 각 분야에 많습니다. 아니, 넘쳐납니다. 이런 문화 자산을 활용해 국가 경쟁력에 큰 보탬이 되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앙드레 말로’ 같은 문화 정책 입안자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기를 갈망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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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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