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여의도 재건축…정책 암초 걸려 거래도 '뚝'

"매매·전세 거래도 뚝 끊겼고, 찾는 손님도 없어요." 


    "2017년 이후 여의도 재건축은 그냥 멈췄다고 봐야죠. 올해 들어 지금까지 계약을 한 건도 못 했을 정도로 매매·전세 거래도 뚝 끊겼고, 찾는 손님도 없어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인근 A공인 이 모 공인중개사는 "작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가 다시 보류하겠다고 한 뒤로는 여의도 부동산 분위기가 확 꺼졌다"고 말했다. 


재건축 잠룡으로 불리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아파트들의 재건축 사업 추진 계획이 수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준공한지 40년을 훌쩍 넘은 재건축 단지는 한때 투자자들이 몰렸던 것과는 달리 요즘엔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고 주변 중개업소는 전했다.


1971년 국내 첫 민간 고층 아파트로 지어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단지. /허지윤 기자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범아파트(1584가구)’는 조합 대신 신탁사를 재건축 사업 시행자로 지정해 맡기는 ‘신탁 방식 재건축’을 추진해왔으나, 작년 이후 제동이 걸렸다. 




2016년 3월 도입된 신탁방식 재건축은 11단계를 거치는 일반 재건축과 달리 추진위와 조합 구성 등의 단계를 생략할 수 있어 사업 속도가 비교적 빨라 재건축 사업의 대안이 됐다.


이 아파트는 2017년 6월 1일 한국자산신탁을 재건축 사업 시행자로 지정했다. 여의도 일대 아파트 중 유일하게 사업 시행자를 지정해 재건축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듯 했다. 하지만 이후 계획들은 제동이 걸리며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2017년 당시 재건축 사업 계획대로면, 사업시행자 지정(2017년6월)→건축 심의→시공사 선정(2018년)→사업 시행인가(2019년9월)→조합원 분양 신청·감정 평가→관리처분계획 인가→이주·철거(2020년7월)→착공(2020년11월)→일반분양→준공 및 입주(2023년9월)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공사 선정도 못한 채 힘을 못쓰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신탁방식 재건축 제도 자체 문제라기 보다는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영향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여의도동 A공인 관계자는 "신탁방식으로 추진한다 한들, 최종 결정권자인 서울시가 정비사업 추진단지에 대한 정비계획 승인·심의를 미루고 있으니 진전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탁 방식 재건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시장 여건 탓이 크다"며 "신탁 방식 재건축은 조합 집행부의 비리 우려를 해소할 수 있고,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의 도움으로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등 과거 일반 방식보다 장점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뀔 때마다 여의도 아파트 부동산 시장은 요동을 쳤다. 집값이 크게 올랐다가, 거래가 아예 끊기며 시들어버리는 식이다. 


2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79.24㎡짜리 월평균 매매가 변동 추이를 보면, 2016년 4월 평균 7억2750원에 거래됐다가 그해 9월 8억원을 돌파했다. 2017년 2월 다시 7억7750만원으로 다시 떨어지더니 그해 3월 8억2125만원을 지나 9월 9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전체를 새로운 업무와 주택지로 바꾸고, 신도시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공표했던 작년 7월에는 평균 매매가가 12억1500만원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다음 달 박 시장이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번복했고, 그해 9월 평균 매매가는 11억원으로 두달 만에 1억원 이상이 빠졌다. 


시범아파트는 작년 1~9월까지 48가구가 매매됐으나, 이후 4월 둘째 주 현재 거래는 한 건도 없다. 특히 이 아파트의 경우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도 깔려있다. 사업시행자 지정이 된 아파트는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장기 보유 기준을 충족한 조합원 매물만 거래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현재 나와 있는 전용면적 79.24㎡짜리 매물이 11억원 후반대인데, 작년보다 시세가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는 "장기 보유자 물건만 거래할 수 있다 보니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도 거래 급감의 요인 중 하나"라며 "사업시행자 지정 후 3년 안에는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 사업 시행인가 신청이 안 되면 내년 6월부터는 매물이 더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진주아파트 단지에 걸려있는 2018년 12월 재건축정비사업 설명회 현수막. /허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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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40년 이상된 아파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76년 건축된 공작아파트와 1977년 건축된 진주아파트도 작년 각각 신탁방식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답보 상태다. 진주아파트 관계자는 "작년에 신탁방식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결국 사업시행자를 지정하지 못 했고, 지금까지도 향후 계획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하지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주아파트 전용면적 63.83㎡는 지난해 9월 10억3800만원에 실거래 된 이후 지금까지 손바뀜이 없다. 2016년 연간 32건, 2017년, 31건, 2018년 24건 등 활발한 거래 흐름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작아파트는 올해 들어 매매가 3월에 한 건 있었다. 2016년 26건, 2017년 19건, 2018년 14건의 매매거래가 이뤄졌다. 전용 126.02㎡의 평균 매매가 변동 추이를 보면 2016년 10억원 돌파해 13억원까지 갔다가 2017년 12억~13억원 선을 오가다 지난해 최고 18억원까지 치솟았다가 올해 3월에는 3억5000만원이나 떨어진 14억5000만원에 팔렸다.


여의도동 K공인 관계자는 "정부 부동산 정책을 고려할 때 이번 정권 안에서는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보니, 개발 기대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여의도의 미래가치를 두고 있는 집주인들이 많아 집값을 내리면서까지 팔려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허지윤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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