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 [홍승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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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

2019.04.23

요즘 들어 가족이나 지인과의 저녁 모임에 참석했던 부부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아하게 생긴 집의 대문 앞에서 헤어지며 초대받은 쪽의 여인이 한 인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나 행복해요.” 듣는 이의 마음까지 들뜨게 하였습니다. 작은 식당에서 남편의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마친 젊은 부부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보, 오늘 힘들었지?” “아니, 나도 좋았어.” “고마워.” 뉴질랜드로의 이주를 앞두고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나온 가족도 보았습니다. 초등학생 아들은 그 집의 친구와 헤어지는 서운함이 컸던 모양입니다. 아빠가 말했습니다. “방학 때 초청하면 볼 수 있잖아. 삼촌(아들 친구의 아버지인 듯)도 같이 온다고 했으니 더 좋지. 그러니 가서 마음 놓고 잘 지내도록 해.” 옆에서 엄마도 거들었습니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몇 마디 말만 듣고도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임 직후 부부 사이에 부정적인 대화가 오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친정 식구들과의 외식 모임이 끝난 뒤 자신의 동생에 대한 남편의 태도를 비난하는 아내를 보기도 했습니다. 지인의 집에서 헤어진 직후 남편에게 무언가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도 있었습니다. 남매 사이의 가족들이 저녁 모임을 갖고 서로 따뜻한 인사를 한 뒤 한쪽 부부만 남게 되니 남편이 매제의 행동거지를 비난하고 아내는 달래는 상황도 보았습니다.

사업으로 얽힌 사람들의 저녁 모임이나 학교 선후배들이 만난 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양태도 가족들처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사람들 중 3월 하순에 만난 한 남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이 이곳(고양시) 생활 마지막입니다. 내일이면 부산으로 떠납니다.”

“왜 떠나세요?”

“가서 건축 인테리어 사업을 할 겁니다. 정확히 1년 동안 형님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현장 일을 익혔습니다. 다 마치고 이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형님과 함께 마지막 저녁을 먹고 방금 헤어졌습니다.”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여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전엔 무슨 일을 하셨나요?”

“거제도에서 식당을 운영했어요. 식당 셋, 커피집 하나를 차렸는데 다 문을 닫았어요.”

“거제도 경제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으로만 보고 들었는데 심각했던 모양이군요.”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좀 길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영업직으로 15년 일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회사 일 하느라고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 끝에 사직했어요. 거제도에서 식당 일을 시작했지요. 회사에서 프랜차이즈 분야를 맡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회사의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린 거죠. 의욕이 넘쳐서 점포를 네 개씩이나 냈습니다. 그게 4년 전이었어요. 첫 1년은 잘 되었어요. 1년이 지나자 손님이 거짓말처럼 뚝 떨어졌습니다. 2년간 버티고 버티다가 다 정리하고 말았어요. 남은 건 빚뿐이더군요. 대기업에 있던 사람이라 적응을 잘못한 부분도 있지 싶어요. 형님이 마지막 수습을 도와주고는 자기가 하는 사업을 해 보라 해서 이곳 와서 1년 지냈습니다. 3개월 단위로 일을 하나씩 배웠습니다. 목수, 가구공장, 이런 식으로요. 그런 현장을 형님이 다 알선해 주었어요. 쉬지 않고 익혔습니다. 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배웠지요. 상대방이 충분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까지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어요. 다행히 그럴 때는 더 가르쳐 주더군요. 형님 말이 이제 반 목수는 되었다 그래요. 현장 일을 익히면서 한편으로는 형님의 조언을 틈틈이 들었지요. 그러면서 부산 지역에는 사업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았어요. 시작하면 영업을 얼마나 잘 하는가가 관건이 될 겁니다.”

“그토록 열심히 하셨으니 잘 해 내실 겁니다.”

“내려가면 먼저 가족들과 함께 짧은 여행이라도 가렵니다. 지난 세월 일에만 매달리느라 가족에겐 너무 소홀했으니까요.”

실패한 동생이 재기의 의지를 갖도록 격려해준 그의 형님은 따뜻한 가족입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노력해 온 그에게는 마음의 박수를 보냅니다. 처음 만난 나에게 툭 던지듯이 먼저 말을 시작한 그가 이해됩니다. 굳은 의지와 함께 1년간의 수련에 대한 만족감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었을 테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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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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