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이 결국 ‘한전 적자’로...지속되면 대형사고 위험‘ → 전력의 달인’ 한전에 성장의 날개를 달아라


탈원전이 결국 ‘한전 적자’로...지속되면 대형사고 위험


2년 새 순익 2조 감소

1분기 4000억 영업손실 전망

1분기 손실만 작년 전체의 2배


    한국전력공사는 최근 대규모 적자에 신음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조1745억원 순손실(연결기준)을 기록했다. 2017년 1조4414억원 흑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불과 1년 사이에 이익이 2조6159억원이나 급감한 셈이다. 지난해 영업손실도 2080억원으로 6년 만에 적자로 반전했다. 한전은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109달러까지 치솟은 2012년에 818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한전 본사 사옥 전경. /연합뉴스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올해 1분기에도 4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망치가 맞을 경우 지난해 연간 손실의 2배를 한 분기에 내게 되는 것이다. 한전은 자본시장에서 차입도 확대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들어 두 달 동안 총 1조7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전은 2014년 9월 현대차에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각한 후 무차입 경영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17년 2월 회사채 발행을 재개하면서 차입규모를 늘리고 있다.




적자 반전에 대해 한전은 연료구매단가(두바이유·석탄·액화천연가스)가 오른 탓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의 여파라고 입을 모은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은 대규모 손실 이유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는 탈원전 선포 후 원전가동률이 낮아짐에 따라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LNG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료비가 오른 상태에서 수요까지 늘어 손실 규모가 커진 것이다.


실제 지난해 연료구매단가가 가장 싼 원전의 평균 가동률은 37년 만에 처음으로 65.7%까지 추락했다. 2017년 평균 가동률도 71.3% 수준이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의 맹목적인 탈원전 정책 탓에 사소한 핑계만 있으면 무작정 원전을 멈춰버려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


한전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에 따라 발전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LNG나 풍력·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는 원자력이나 석탄에 비해 발전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이에 맞춰 전기요금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한전이 회장사인 대한전기협회는 지난달 20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과 공동으로 관련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정부의 입김으로 취소됐다. ‘괜한 잡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 정책을 밀어 붙이면서도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전 내부에서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전 고위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 전환 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모두가 쉬쉬하고 있다"면서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 누군가에게 부담을 미루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전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전기요금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이라며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더 생산하려면 발전비용이 오르는데 전기요금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은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고 단언했다.


정부, 요금 인상 당위성 설명해야

한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 현 전기요금 산정체계가 산업부흥이라는 정책적 목표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부가 경제발전 과정에서 저렴한 전기를 풍부하게 공급해 제조업체 등 기업이 이를 마음껏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 동안 전기요금 인상 논의는 금기시돼왔다. 한전 관계자는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약관으로 다뤄져야 할 이슈가 정치적 이슈 내지 법률적 이슈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전 관계자는 "이제는 전력원가가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가 에너지 소비주체(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현 상황과 요금 인상 당위성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물론 저소득층 등 에너지 빈곤층에 대해서는 복지 차원에서 별도의 적절한 지원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의 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은 2006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전기요금이 오르고 있다. 독일이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태양광과 풍력 발전설비 도입을 대거 확대하면서 발전비용이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 정부도 에너지전환 목표(2030년까지 현재 7%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는 것)를 달성하려면 국민에게 요금 인상 이유를 이해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건설노조가 4월 10일 청와대 앞에서한전의 유지보수 예산 확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적자, 사고로 이어질 수도

공기업은 사기업과 달리 이윤추구가 지상과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과도한 적자는 자칫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원전 사고도 원전을 운영하던 도쿄전력이 예산을 아끼려고 했던 것이 대형사고로 이어진 경우다. 




지진해일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예산 때문에 대비하지 않은 결과,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진도 9.0의 지진과 이에 따른 해일이 발생하자 후쿠시마원전은 기능을 상실하고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사고로 유출된 플루토늄, 스트론튬, 텔루륨 등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방사성 물질들이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 바다에서 검출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해 4월 취임 후 수익성이 개선될 때까지 ‘비상경영’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일부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했다. 한전 고위 관계자는 "적자가 지속될 경우 전력 공급안정성 위기를 겪을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칫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곧 조사결과가 발표될 예정인 강원도 산불이 사고 사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미 지난해 기자재 납품업체들을 중심으로 올해 한전에서 사고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한전에 배전 기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전은 배전설비 구입량을 전년보다 40%가량 줄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비상경영 계획을 세워 예산을 줄였기 때문"이라며 "여름이나 겨울에는 기자재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데 기자재 구입을 줄이면 사용연한이 약 20여 년인 설비에서 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전력은 올해도 전신주나 변압기, 전선 교체 등을 줄여 공사비 500억원을 절감하기로 했다. 특히 한전은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전선 등 기자재 교체 기준을 개정하기로 했다.




한전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9년 재무 위기 비상경영 추진 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영업적자가 2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전선 교체 기준 등을 개정해 올해 배전과 송변전 등 공사비를 500억원 줄이기로 했다.


한전은 특히 이번 산불의 최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전신주처럼 전선과 전선이 접속하는 곳의 전선 교체 기준을 개정해 보강 공사비를 절감하기로 했다. 이전엔 교체 연수 등을 평가해 교체했지만, 앞으로는 연수는 오래됐더라도 진단 결과 허용 한계치를 넘는 전선만 교체해 공사비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기업 적자가 대형사고로 직결된 사례는


 

1998년 6월 3일 발생한 독일 뮌헨발 함부르크행 고속ICE 884 고속철도 사고 현장. 이 사고로 10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 ITV


강원도 영동지역 산불이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관리하는 전신주의 개폐기(전기 스위치 역할을 하는 장치)에 이물질이 날아와 부딪히면서 불꽃이 발생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전의 개폐기 관리부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전이 개폐기 관리를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처럼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을 관리하는 공기업들이 대형 참사를 불러온 경우는 종종 있다. 대부분은 공기업들이 적자를 줄이거나 예산을 아끼기 위해 유지·보수를 소홀히 하다 발생한 사고들이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서울로 오던 KTX 806호 탈선 사고도 공기업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유지관리 예산을 줄이면서 발생한 대표적 사건이다. KTX 806호가 이용하던 선로의 선로전환기(열차 선로를 자동으로 바꿔주는 장치)의 신호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이게 탈선 사고로 이어졌다. 선로전환기를 유지·보수하는 코레일이 관련 예산을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헌승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코레일의 선로 시설물은 2015년 8465㎞에서 2017년 9364㎞로 10.6%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정비 예산은 4337억원에서 4243억원으로 94억원 줄었다. 이 기간 열차 고장 건수는 2015년 99건에서 2017년 118건으로 19.1%(19건) 늘었다. 코레일이 2017년 5280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봤는데 광역철도 부문(1430억원)과 물류 부문(3160억원) 등의 영업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줄이기 위해 정비 예산을 줄였고 제대로 된 유지·보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일본의 후쿠시마원전 사고도 유지·보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례다. 후쿠시마원전은 일본 최대의 전기·가스 기업인 도쿄전력이 관리했는데 도쿄전력은 일본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회사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원전이 태평양의 지진해일에 취약하다는 것을 내부 연구(토시아키 사카이 수석연구원 연구팀)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예산 투입하는 것을 꺼려 안전 조치를 강화하지 못했다.


이는 당시 도쿄전력의 사장인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용을 절감해 ‘코스트 커터(Cost Cutter·비용을 삭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라는 별명을 가졌던 것과 연관된다.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시미즈 사장의 경영방침 때문에 도쿄전력은 후쿠시마원전 앞에 놓여 있는 6m짜리 수벽을 넘어 1~2m만 파도가 들이닥쳐도 후쿠시마원전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파악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진도 9.0의 지진과 이에 따른 해일이 발생하자 후쿠시마원전은 기능을 상실하고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1998년 6월 3일 101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일 뮌헨발 함부르크행 고속ICE 884 고속철도 사고도 공기업이 비용을 아끼려다 벌어진 인재(人災)다. 고속철도가 운행을 시작했을 때 진동이 심하다는 불만이 나오자 철도 제작사인 지멘스와 운영사인 독일철도청(도이체반)은 고속철도를 다시 만들면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해 바퀴만 교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구조조정 잦았던 한전의 역사


 

한전의 전신인 한성전기 사옥. /사진 한전


한국전력공사는 발전·송전·변전·배전에서 판매까지 수행하는, 세계적으로 드문 전력공기업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전력기업은 프랑스 공기업 EDF를 제외하면 한전이 유일하다. 원자력 발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석탄화력 발전사인 동서·남동·중부·서부·남부발전 등 발전사가 분리됐으나 모두 한전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한전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60조6000억원으로 삼성·현대차·LG·포스코에 이어 매출액 기준 국내 5위 규모다. 한전의 최대주주는 지분 32.9%를 가진 KDB산업은행(국책은행)이다. 정부도 지분 18.2%를 직접 가지고 있다. 나머지는 보통주로 증시에 상장돼 있다.


한전의 역사는 120년에 달한다. 한전의 전신은 1898년 창립된 한성전기다. 6·25 전쟁 후 1961년 7월 한성전기는 조선전업·남선전기와 통합해 한국전력주식회사로 창립했다. 이후 1970년대 초 제1차 세계 석유파동에 따라 경영여건이 악화돼 정부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1억2680만 주의 민간 주식을 매입해 1982년 1월 현재와 같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로 재탄생시켰다.


이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직후 정부는 IMF의 권고에 따라 1999년 1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경쟁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권고였다. 이 계획에 따라 한전은 2001년 4월 발전 부문을 분리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1년 1월에는 한전의 6개 발전 자회사를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해 민영화 가능성도 열었다.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도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정부는 2016년 한수원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의 증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2017년 9월 최종 무산됐다. 정부가 제품가격(전기요금)을 결정해 수익성이 좌우되는 기업에 투자하려는 민간기업은 없었던 것이다.

김문관 이코노미조선 기자 조선비즈 




‘전력의 달인’ 한전에 성장의 날개를 달아라


정권마다 바뀌는 전력정책 

신시장 키우는 데 큰 걸림돌 

규제완화와 내부혁신 절실


    한국전력공사(KEPCO)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산림 530㏊와 주택 500여 채를 태운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을 일으킨 최초 발화점이 한 전신주의 개폐기(전기 스위치 역할을 하는 장치)로 지목되면서 한전의 부실 관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적자에 신음하는 한전은 지난해 전신주에 달린 변압기와 개폐기 등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 했다. 통상 한전은 적자가 쌓이면 연구·개발(R&D), 유지보수, 신규투자의 순으로 예산을 줄인다. 한전은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을 2017년 1조8621억원에서 2018년 1조4418억원으로 22.6% 줄였다. 유지보수 예산중 설비교체·보강 예산은 1조5675억원에서 1조1470억원으로 26.8% 줄였으며, 점검수선 예산은 2946억원에서 2948억원으로 0.06% 늘렸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이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을 늘려오다가 적자 때문에 갑자기 줄여도 되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배전 기자재 납품업계에서는 한전이 약 20년의 수명을 가진 배전 기자재 구입량을 지난해 전년 대비 40%가량 줄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전은 전신주 개폐기 외관과 내부의 설치 상태를 점검하는 ‘광학 카메라 진단’을 2017년 11월 이후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광학카메라 진단은 규정상 매년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9일 한전의 과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적극적으로 배·보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원의 화재 원인에 대한 명확한 조사결과는 5월 중 발표된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멜트다운 (원자로 냉각장치의 고장으로 노심(爐心)이 녹아 방사능이 유출되는 것)’ 사태도 안일한 관리에서 비롯됐다. 도쿄전력은 앞서 토목 학회에 의뢰해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 방조제를 더 높게 세워야 한다는 답을 얻었지만, 이를 실제 건설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당시 도쿄전력은 적자 상태였으며 사용 후 핵 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쓰나미 위험을 숨겼다. 결국 이는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전력은 모든 산업의 기초이자 국가 전역에 걸친 대규모 인프라다. 국내에서 전력 발전사를 자회사로 두고 송전·변전·배전·판매를 전담하는 한전은 한국전력공사법에 근거한 시장형 공기업이다. 법에 명시된 한전의 설립목적은 ‘전력수급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다’이다. 2만 명 넘는 전문성을 가진 임직원이 몸담고 있는 한전은 과연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권 따라 휙휙 변 하는 에너지정책 탓에, 또 때로는 과도한 규제 탓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에 더해 이공계 여부 등 출신 성분간 소통이 부족한 점도 조직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해외 시장 개척도 발전 부문에 치우쳐 있다.


에너지정책은 ‘국가백년대계’라고 불린다.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시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남의 얘기다. 녹색성장·창조경제·탈원전·수소경제 등 정권마다 들고 나오는 전력 관련 정책 청사진이 다르다 보니 한전 및 에너지업계가 몇 년 만에 정부정책 관련사업 및 기술개발을 하다가 이를 접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또 사실상 발전원가에 연동해 조정할 수 없는 전기요금 산정체계에 더해 발전비용이 많이 드는 정권의 탈원전 추진까지 겹치면서 한전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공기업은 사기업과는 달리 이윤추구가 지상과제는 아니다. 그러나 한전의 적자누적은 자칫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등의 국가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한전의 적자원인으로 탈원전이 꼽힌다. 발전원가가 가장 저렴한 원전의 지난해 가동률은 37년 만에 처음으로 65.7%로 추락했다. 핵 위험을 제거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당장 원자력 발전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탈원전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을 사회적으로 감수할 준비가 돼 있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비전문가 그룹의 정치적인 결정으로 탈원전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에너지 신시장 1경5000조원 규모

한국은 사실상 ‘섬’인 지정학적인 이유로 역사적으로 ‘에너지 안보(전력 자립)’의 중요성이 매우 강했다. 그러나 전력은 융·복합 시대 큰 돈이 되는 사업이다. 튼튼한 에너지 안보 바탕 위에서 국가 성장동력으로 전력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에너지 신시장은 2030년이 되면 12조달러(1경500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현재 세계 인구 중 약 25%는 전력 공급이 안 되는 곳에 산다. 나머지 75% 중에서도 절반 정도만 전력을 풍족하게 쓸 수 있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GE는 전력회사로 방향을 틀기 위한 구조개편에 한창이며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한·중·일 전력계통을 연결시키는 ‘동북아 수퍼그리드’ 를 추진하기 위해 한국에 10년간 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앞으로 전력산업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통신 기술(IT), 전자 등 산업 간 융·복합을 통해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는 방증들이다. 실제 해외 에너지기업들은 변신을 통해 글로컬(글로벌+로컬) 시장에서 돈을 벌고 있다.


 

김종갑(가운데) 한국전력 사장이 3월 15일 오후 신안성변전소를 방문해 ‘2019 국가안전대진단’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한전은 2월 18일부터 4월 19일까지 국가안전대진단 기간 61일 동안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변전소, 전력구 등 22개 대상시설물에 대해 집중 점검을 펼치기로 했다. /연합뉴스


한국에도 기회는 있다. 한국 전력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한전이라는 강력한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발전(발전자회사 지분 100% 보유)부터 송전·변전·배전·판매까지 사실상 독점하는 거대한 기업이다. 한국의 전기 품질은 이미 연간 정전 시간, 주파수 유지율, 전압 유지율 등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전 분야 기술도 상당 부분 자립화했다. 2016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전력유틸리티 부문 세계 1위 기업으로 한전을 꼽기도 했다.




한 전직 한전 사장은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한전이 100년 전부터 하던 전력 발전과 판매를 통한 수익창출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ICT와 융합해 전력 절감 솔루션 (스마트그리드 등)을 개발하는 회사 등으로 ‘사업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T와 배터리 강국이자 세계 1위 전 기품질을 가진 전문가집단이 있기 때문에 이미 기반은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규제를 획기적 으로 풀어 새로운 에너지 분야를 적극적으로 키울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과의 연관성도 있다. 한전 고위 관계자는 "과거 한국은 해외 차관을 받을 때 전 세계 선진국 으로부터 전기설비를 현물로 들여왔다"면 서 "한전 기술자들은 사실상 ‘만능’인데 능력이 다 사장되고 있어 동남아시아 진출 등 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한전은 임기 3년 사장을 둔 공기업인 관계로 중장기적인 리더십의 발휘가 어렵다. 때로는 낙하산 사장이 한전 및 자회사 사장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보수적인 문화를 깨고 도전적인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코노미조선’은 에너지업계와 전문가들은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전의 개선방안에 대해 짚어본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문관 이코노미조선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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