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좇는 공직자들 [박상도]


돈을 좇는 공직자들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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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좇는 공직자들

2019.04.19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였습니다. 사회학 이론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강의실에서 수업이 먼저 끝난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복도로 나와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학 이론을 가르치던 박영신 교수님은 정의롭고 엄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는데 문을 열고 나가시더니, “어느 과 학생인데 이렇게 소란스럽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한 학생으로부터 “경영학과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으시더니, “돈만 생각하니 예의를 모르는 거 아니냐? 너희들 눈에는 수업 중인 다른 강의실이 보이지 않느냐?”하시면서 문을 닫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듣고 있는 필자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한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인데 돈에 오리엔트된 학과에서 공부를 하면 저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나와 남을 함께 생각하는 올바른 자세를 함양하세요.”

혈기왕성한 학창시절 복도에서 떠드는 학생이 유독 경영학과 학생들뿐이었겠습니까? 하지만, 교수님의 눈에는 젊은 학생들이 돈을 좇아 전공을 선택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사회학 개론이 교양 필수 과목이었던 때라, 각과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한 교수님의 일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쨌든 그날 이후 필자는 ‘돈에 경도된’ 개인의 행동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사회학자 게르르그 짐멜(Georg Simmel)은 1900년에 발간한 ‘돈의 철학’이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를 물질문화로 인식하고 이 물질문화가 당시에 새로운 정신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돈과 영혼의 결합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가 말한 돈과 영혼의 결합은 돈이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함양할 수 있는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전근대적인 경제적 집단주의에서 경제적 개인주의로 변하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짐멜이 이 시대를 다시 산다면, 그것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배고픈 지식인으로 살게 된다면, 돈과 영혼의 결합에 대해 낙관적이었던 자신의 시각을 과감하게 시정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돈에 영혼을 파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돈을 벌고 싶으면 사업을 하고, 명예나 권력에 욕심이 있으면 학자나 공무원 또는 군인이 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돈이 모든 욕망의 꼭지점이 되었습니다. 1995년 국회에서 당시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 원 비자금을 폭로하면서 사람들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대통령마저 결국엔 퇴임 후 호의호식할 돈을 챙겼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소위 지도층의 부도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고 투기와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병역문제, 논문표절은 공직 후보자들마다 빠지지 않고 훈장처럼 줄줄이 차고 나왔습니다. 재산공개 내용을 보면 간혹 마이너스 재산을 신고한 후보자도 있었지만, 다들 차고 넘치게 잘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돈과 명예를 다 챙기겠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고 상당수는 이 둘을 다 챙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언론인 출신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로 사퇴했습니다. 오늘날 돈의 유혹은 삶에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영향을 끼쳐서 이제는 공직자로서의 도덕적인 판단마저 무디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전세를 살다가 노후를 위해 상가 건물을 마련했다는 말에 순간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수십 억에서 수백 억 원의 재산을 신고한 다른 공직자들을 보면서 김의겸 전 대변인의 부조리는 살짝 작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시기와 내용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근본적으로 공직에 있으면서 돈을 좇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과 그의 표리부동함에 대한 실망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적은 액수로 보이는지 몰라도 그가 투자한 금액은 보통 사람들에겐 도달할 수 없는 매우 큰 액수였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아복기포 불찰노기(我腹旣飽 不察奴飢)라고 했습니다. 내 배가 고파야 노비들 배고픔을 아는 법인데, 이미 부자로 공직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으니 국민의 배고픔을 살필 마음이 생길 리 없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든 원인은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대로, 적게 가진 사람도 적게 가진 대로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살고 높은 자리로 가고 싶어만 했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약자를 배려하여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너무나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정치권의 갈등이 연일 뉴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임명을 한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독자께서 칼럼을 받아보시는 지금쯤엔 헌법재판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정치인의 말은 숨소리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저쪽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에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따라서 ‘되네 안 되네’ 하는 정치적 공방은 차치하고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져 봅니다.

1. 공직자는 근무시간에 주식 투자를 해도 될까요? 필자의 경우 회사에서 매년 한 차례 자기 윤리 진단을 합니다. 그중 ‘나는 근무 시간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기업에서도 이런 명문 조항이 있는데 법원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식 거래가 가능한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이니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주식 거래를 할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후보자와 그 배우자가 거래한 횟수를 보면 과연 점심 시간에만 거래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2. 먹고살 만한 전문직종 종사자이면서 사회적 지도층인 판사의 과도한 주식투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을까요? 주식 거래의 패턴을 볼 때, 후보자 부부는 장기 투자로 배당금을 받으며, 투자한 회사의 발전과 함께 자신들의 이익을 키워나가는 소위 정석 투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말 그대로 돈을 벌 욕심에 주식 투자를 했는데, 사실 이는 자본주의에서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지위가 사회 지도층인 판사이고, 그 정도로 심취해서 주식 투자를 했다면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추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후보자는 주식투자는 남편이 전담했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투자한 것은 결국 자신의 책임이고 자신의 소유인 것입니다. 율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억울하시겠지만 법이 그렇습니다.” 아니었던가요? 후보자 역시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 주식은 법적으로 후보자가 투자한 겁니다. 그리고 백 번 양보해서 남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고 해도 가족의 문제로 낙마한 수많은 예를 볼 때, 이 또한 께름칙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렇게 돈도 좇고 명예도 챙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3. 후보자 부부가 주식으로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습니다. 문제가 되자 후보자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벌었는지 아니면 손해를 봤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 또는 얼마 손해를 봤다."는 얘기가 있어야 할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 같기도 하여 오히려 불쾌합니다.

필자는 후보자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막중한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고위 공직에 어울리는 이미지인가? 하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헌법재판관은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어찌보면 총리나 장관보다 더 완전무결한 인물이 올라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돈도 좇고 명예도 챙기려는 사람으로 드러난 후보자가 어떤 이유에서건 그 자리에 오른다면 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은 매우 클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는 어느 누가 권위를 내세우며 사회질서를 바로잡으려 해도 아무도 그 권위에 순응하지 않을 겁니다. 점점 더 존경할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돈에 정신이 팔려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퇴임한 서기석 헌법 재판관은 퇴임의 변에서 “헌법 정신과 시대의 가치가 무엇인지 살피고 진정한 통합과 화합을 이룩하는 것이 헌법재판소가 수행할 역사적 소명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충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곁눈질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도 먹고 살기가 점점 더 팍팍해졌다고 한숨짓습니다. 통합과 화합을 원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과 명예를 다 챙기고 싶은 분에게는 성경 글귀를 하나 보내드립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이들은 미혹에 빠져 믿음을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는도다> 성경 디모데전서 6장 10절.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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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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