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잡으려다”...거래 조차 안되는 피 말리는 지방 부동산시장


“서울 집값 잡으려다”...거래 조차 안되는 피 말리는 지방 부동산시장


#. 충북 청주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40대 A씨는 자녀들이 크면서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기려고 계획 중이다. 그러나 최근 아파트 거래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1,000만원 가량 가격을 더 낮췄는데도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집값이 3년 전 구입 때보다 3,000만원 가량 떨어진 것도 가슴 아프지만 가격을 내려도 문의조차 오지 않는 상황이 더 힘들다”며 “정부가 10억원을 오가는 서울 집값과 2억~3억원 하는 지방 집값을 같은 잣대로 재단하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피가 마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으로 지난해 폭등했던 서울 집값은 거래 급감과 함께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 와중에 지방의 주택 거래마저 크게 위축되면서 결국 지방 부동산 시장은 고사 직전이라는 아우성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 미입주 물량 소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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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오르는데… 지방 집값 16개월째↓ 

12일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정보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권의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이미 수년 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전국 시ㆍ군ㆍ구의 주택가격지수를 매달 발표하는데, 2017년 11월 당시 지역의 평균 매매가격을 기준(100)으로 정해 전후 변동치를 표시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지수는 2017년 11월 100에서 지난달 98.7까지 떨어졌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제조업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북과 경남은 2016년 1월 이후 지난달까지 각각 5.1포인트, 8포인트 떨어지며 역대 최장기간인 38개월 연속 하락했다.


부산과 충남, 충북 등도 2017년 11월(100) 이후 16개월째 하락세인데, 9ㆍ13 부동산 대책과 공시가격 현실화 등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말부터 하락폭이 더 가팔라지고 있다. 같은 기간 서울의 매매가격 지수가 2018년 11월(106.8)까지 1년간 꾸준히 올랐고, 지난달에도 여전히 106.2에 머무르며 되려 2년 전보다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가격 순서대로 아파트를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있는 아파트의 가격을 의미하는 ‘중위가격’ 역시 지방 주택 시장의 침체를 드러낸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1월 7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8억2,000만원까지 치솟으며 1년 사이 17%나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6대 광역시 중위 가격은 2억4,040만원에서 2억4,169만원으로 0.54% 오르는데 그쳤다. 특히 울산과 부산은 오히려 각각 2,220만원, 1,232만원씩 하락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부동산시장 전문가 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3%가 1년 뒤 비수도권 주택매매가격이 현재보다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커지는 미입주 공포, 분양시장도 한파 

집값 하락 우려에 매수심리도 얼어붙으면서 ‘미입주 공포’도 커지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봄 이사철을 맞은 이달 서울의 입주경기실사지수(HOSI) 전망치는 85.4로 2개월만에 80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전국 전망치는 68.0을 기록했고, 특히 부산은 47.6을 기록하며 40대로 떨어졌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입주 여건이 양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치로 보면 서울은 신규 입주 아파트 10가구 중 1~2가구가 빈집인 반면, 부산은 절반 이상이 빈집이라는 의미다. 김덕례 주산연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부산은 전반적인 주택시장 침체와 신규 입주물량 누적, 기존 주택매각 지연으로 2017년 6월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전망치가 40선까지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지방의 아파트 단지 미입주 사유로는 ‘기존 주택매각 지연’이 43.5%로 가장 많았다. ‘주택매각 지연’ 응답 비중은 지난해 11월(27.7%) 이후 매월 증가추세다. 거래절벽으로 집이 팔리지 않으면서 신규 입주마저 막히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지방은 분양경기마저 한파가 거세게 불고 있다. 대형ㆍ중견 건설업체들이 분양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인 분양경기실사지수(HSSI) 전망치는 이달 서울이 96.0으로 전월 대비 16포인트 넘게 올랐다. 그러나 지방의 경우 광주와 세종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50~70선에 머물렀고 부산(45.8)은 전월보다 2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봄철 분양성수기가 왔지만 건설업계 전반에서는 지방 분양경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올해 2월말 기준 전체 미분양 물량(5만9,614가구)의 87%(5만1,887가구)가 지방에 집중돼 있는데, 특히 경남, 경북, 충남, 충북 지역의 미분양 합계(3만3,511가구)가 전체 미분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토부는 건물이 준공되고 나서도 입주자를 찾지 못해 불꺼진 집으로 남아있는 ‘악성 미분양’도 이 지역에 60% 가까이 집중돼 있다고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달 신규 입주 물량 2만7,000여 가구 중 48%(1만3,00여가구)가 영남권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이미 지방 부동산 시장이 미분양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 물량이 늘어날 경우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세종시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밀집지역이 텅 비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규제로 ’똘똘한 한 채’ 선호…지방 맞춤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각종 부동산 정책들이 지방 주택시장을 더 냉각시켰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 이후 13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똘똘한 한 채’ 신드롬이 일면서 지방 부동산을 처분하고 서울 아파트 매수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과 세금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지방 주택시장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오대열 경제만랩 리서치팀장은 “지역간 아파트 가격 양극화는 지방 산업이 무너진 영향도 있지만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되려 서울의 똘똘한 한 채에 집중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며 “지역마다 부동산 시장 상황이 다른 만큼 지역 상황에 맞춘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4~2018년 지방 아파트값 변동률. 김경진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지방 부동산 시장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한 청원자는 “서울은 투기꾼이나 큰손들이 매매하지만 지방은 주로 서민들이 실거주용으로 사는데, 강남 집값 때문에 시작한 부동산 규제로 지방 부동산이 휘청거리고 있다”며 “서울 부동산 잡으려다 지방은 빈사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위주의 규제책으로 지방 서민의 목을 옥죄고 있는 만큼 서울과 지방의 정책을 구분해야 한다’거나 ‘부산은 지방 중 유일한 조정대상지역이지만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으니 이제는 전면 해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부산 진ㆍ남구 등 일부 지역은 조정대상 지역에서 해제됐지만 해운대ㆍ수영구 등은 여전히 대상지역으로 남아있다.


주택업계도 얼어붙은 지방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심광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은 주택 매매 가격과 전ㆍ월세 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등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며 “미분양 적체와 주택가격 하락이 뚜렷한 지방 주택시장을 회생시키려면 특단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부동산침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맞춤형으로 핀셋 정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기조는 유지하더라도 지방 실수요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지역 상황에 따라 차별화된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지방 경제를 활성화 시켜야 하지만 당장 어렵다면, 지방 미분양 물량이 6만 가구에 달하는 만큼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경우 취득세나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등의 지방 경제 맞춤형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이달 초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의 질의에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 부진이 더욱 심화될 경우 정부가 지역별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등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조치를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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