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국에 이길 길은 자유뿐 [김상협]


우리가 중국에 이길 길은 자유뿐 [김상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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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에 이길 길은 자유뿐

2019.04.06

중국에서 그렇게 뜨거운 ‘자유찬가’를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하이난(海南)섬에서 열린 2019 보아오(博鰲) 아시아포럼에서였습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개막 기조연설에서부터 “자유무역과 대외개방은 중국의 기본적 정책”이라며 보호무역주의를 집중 겨냥했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의 미국을 염두에 둔 발언이려니 했지만 리커창은 ‘자유로운 중국’을 거듭 역설하며 이를 뒷받침할 조치들을 열거, 눈길을 끌었습니다. 외국인 투자와 금융기관에 대한 대대적 규제 완화를 비롯, 외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제를 금지하는 규정 신설에 이어 지식재산권이 침해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내심 ‘정말 중국이 그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하이난의 한 제조업체가 감세와 비용인하 조치로 이익이 10% 증가, 이를 연구개발과 경쟁력 향상에 쓰고 있다는 얘기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하이난은 맹렬한 속도로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를 능가할 아시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바로 그 주역입니다. 그는 지난해 4월 13일 하이난 경제특구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 “하이난 전역에 자유무역실험구를 조성, 중국 특색의 자유무역항 건설을 추진해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튿날인 14일 중국 국무원은 2035년까지 하이난에 글로벌 최고 수준의 자유로운 사업환경을 부여하는 구체적 일정을 제시했는데, 국제 관광소비 중심은 물론 ‘국가 중대전략 서비스 보장구(保障區)’와 ‘국가 생태문명 실험구’로서의 성격도 명확히 했습니다. 요컨대 중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이난에서 먼저 자유롭게 구현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하이난섬의 크기는 3만5,400㎢로, 각각 1,000㎢ 수준인 홍콩과 싱가포르, 4,000㎢ 수준인 두바이를 다 합친 것보다 큽니다. 제주도의 18배 크기지요. 인구도 930만 명에 달합니다. 40년 전 덩샤요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요지로 손꼽았던 하이난은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광둥(廣東)성장으로 관할했던 곳이며 지금은 일대일로(一帶一路)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지역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자유가 넘쳐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 보아오포럼에서 열린 ‘자유무역지대: 중국과 국제사회의 성공사례’ 세션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하이난을 비롯, 중국의 차세대 리더들이 대거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유일하게 초청받은 외국인은 원희룡 제주도지사 한 명뿐, 그에게 집중적인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비자 프리 정책을 비롯, 자유경제와 특별 자치제에 이르기까지 한참 선배인 제주도로부터 중국과 하이난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 주된 요지였습니다.

원 지사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중국이 배워갈 것은 이미 다 배워갔습니다. 이제는 시진핑 주석이 하이난에 부여한 특별한 자유와 자치가 솔직히 부럽군요. 제주도도 하이난과 같은 자유와 자치를 누리도록 시 주석께서 문재인 대통령께 얘기를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최소한 실험할 자유라도 갖고 싶습니다.” 재치 있는 답변에 좌중의 박수가 쏟아졌지만 원 지사의 마음속은 착잡했을 겁니다. 중국 하이난에서는 다국적 의료특구를 비롯, 블록체인 실험단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에서는 하고 싶어도 원초적으로 ‘금지’되는 일들이 국가적 지원 속에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토론에 참여한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인민은행장은 “중국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러므로 앞으로도 더 발전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염장을 지르더군요. 그러고 보면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적폐청산‘은 자주 들었어도 ‘자유찬가’는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과 달리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선택해 여기까지 왔고, 그런 한국을 중국이 배워왔는데 말입니다.

앞서 언급한 블록체인을 비롯,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심지어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는 5G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중국에 실제로 이길 수 있는 규모의 기술과 산업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번 보아오 포럼을 본 소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을까요.
하이난의 어느 젊은 대학생이 힌트를 줍니다.
“우리의 자유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유입니다. 당에서 부여한 지시받는 자유예요. 시민 개개인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통치를 위한 면허증 같은 겁니다.”

관제(官製) 자유가 아니라 본연(本然)의 자유, 집단과 조직의 자유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 이것이 중국과 한국, 하이난과 제주도를 가르는 마지막 카드가 아닐까요? 진정한 한국발 자유찬가를 고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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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연구 센터장(초빙교수), (사)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서울대 외교학과 석·박사, 매일경제 워싱턴 특파원, SBS 보도본부 미래부장,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기획관 역임. 현재 제주 그린빅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한중일 협력대화(The CJK Cooperation Dialogue)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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