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심상치 않은 평양...'최악의 위기 임박' 관측


분위기 심상치 않은 평양...'최악의 위기 임박' 관측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고난의 삼각파도 맞설 김정은의 선택은 


4월 평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업한 수령 김일성(1994년 사망)의 생일인 4.15 행사 분위기로 달아올라야 할 북한 내부엔 긴장감이 드러난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전언이다. 무엇보다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김정은(35)의 핵·미사일 도발이 부른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옥죈다. 식량 부족으로 춘궁기를 걱정하는 절박한 목소리가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까지 번졌다. 여기에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표방하는 조직 ‘자유조선’이란 파도까지 덮쳤다. 이들은 망명정부 설립을 거론하며 “자유의 명령을 거부할수록 김정은 정권은 수치를 경험할 것”(2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입장문)이라며 기세등등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미통 검열”

식량 바닥나 해외 공관에 조달 전문

반체제 ‘자유조선’은 “큰일 준비”

김정은 백두산구상 곧 윤곽 드러내


평양 전경/SPN 서울평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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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스텝이 꼬인 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일격을 당하면서다.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화두로 벌인 담판은 북한의 예상과 달리 녹록지 않았다. 빈손으로 귀환하는 60여 시간 동안 김정은이 전용열차 안에서 절치부심했을 것이란 건 불문가지다. 



  

사실 올 대외전략 이행의 첫 단추는 나쁘지 않았다. 2019년 신년사 첫머리에 김 위원장은 “희망의 꿈을 안고 새해를 맞이한다”고 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역사적인 첫 조·미 수뇌 상봉과 회담은 가장 적대적이던 조·미 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했다.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 용의까지 밝혔다. 그는 곧장 베이징으로 달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1월 8일)했고, 향후 대미 관계 전략 등에 대한 훈수를 들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후견국을 자처한 시진핑의 중국도 능수능란한 협상가 트럼프의 변칙 플레이를 예견하지 못했다. 


지난달 말 평양역전백화점에서 열린 봄철전국신발전시회를 찾은 주민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제재의 여파로 식량부족 사태 등에 직면한 북한 경제는 올 봄 최악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사실을 주민에게 제대로 공표 못 할 정도로 김정은과 노동당 전략가들의 충격은 컸다. 북한 권력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내부에서 ‘트럼프와의 담판에 나선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을 제대로 보위 못 해 큰 망신을 당하도록 방조했다’는 논리로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대미라인에 대한 비판이 엄중하게 진행되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하노이행에는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인 조용원이 동행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옅은 웃음을 띠며 김 위원장을 보좌하는 조용원은 북한 권력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 부서인 조직지도부의 ‘하노이 상무조’(TF·테스크포스)를 가동했다. 대미협상의 전 과정은 귀환 후 최용해 조직지도부장에게 고스란히 보고됐을 것이란 게 대북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영철과 최선희 등 대미 협상라인은 ‘김정은 동지의 대외적 권위를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내가 ‘당신은 협상할 준비가 안 됐다’며 자리를 떴다”고 후일담을 자랑삼아 흘리는 건 북한에 뼈아프다. 이런 점을 들어 최용해가 조직부 검열을 김영철 견제의 수단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 최근 북한 대남 인사와 접촉한 관계자는 “북측에 ‘김영철이 위험해질 것이란 얘기가 있더라’라며 분위기를 떠봤는데, ‘그렇고 그런 내용이 좀 있습니다’란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북·미 추가 협상이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당장 김영철·최선희 등에 대한 혁명화나 숙청 등의 조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최선희의 1.5트랙 국제회의 일정이 취소되고 김영철의 공개활동이 뜸했던 건 이들에 대한 강한 압박과 사상 검토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첫해인 2012년 봄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며 해결을 약속한 민생 문제에는 대북제재란 경고등이 반짝인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직후 이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11개 대북제재 모두를 풀어달라는 게 아니라 민생과 인도주의 관련 5개 항목만 해제해달라는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허사였다. 그간 ‘인도주의’ 간판을 악용해 제재에 구멍을 내온 북한에 대한 비판만 거세졌다. 고위 탈북 인사는 "김정은의 통치 자금 50억 달러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얘기를 평양 쪽 인사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달러와 에너지(유류)·식량이 부족한 3난(難)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결국 김정은은 지난달 초 선전일꾼 대회 서한에서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57년 전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4차 노동당 대회에서 언급한 ‘이팝에 고깃국, 기와집과 비단옷’ 얘기를 꺼냈다. 차마 자신이 7년 전 약속하고 지키지 못한 ‘허리띠’ 문제는 거론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기 상황으로 치닫는 식량부족 문제는 북한 내부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인도네시아 주재 북한 대사인 안광일(아세안 대사 겸임)이 동남아 지역 북한 공관 등에 전파한 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수확은 495만1000톤이다. 이는 2017년에 비해 50만3000톤 줄어든 것이다. 안 대사는 그 원인으로 고온과 가뭄·홍수, 대북제재를 꼽았다. 또 "시급히 다른 나라들로부터 식량 수입조치를 취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올해 부족량이 148만6000톤에 이른다”고 말했다. 안광일은 "현 식량 상황의 위험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기성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며 "4월 중에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미 협상 난항과 경제 문제의 난맥상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려는 움직임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김정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 됐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2월 22일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단체 ‘자유조선’이 반(反)김정은 기치를 내걸고 본격 활동을 예고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찜찜한 건 이들이 미 수사·정보 당국과 연계된 정황이 드러난 점이다. 특히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북한 당국에 의해 독극물(VX)로 살해당한 김정남의 아들 한솔(24)의 신변을 보호해온 ‘천리마민방위’가 이름을 바꾼 조직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자유조선 측은 김정은 정권에 대해 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탈북민 북송 중단, 개혁개방 등의 요구사항을 내놓으면서 "큰일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눈엣가시 같던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의 혈육인 한솔이 반체제 단체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건 김정은에게 찜찜한 대목이다. 더욱이 한솔은 파리정치대학 등을 거치며 좋은 교육을 받았고, 마카오 등지에 거주해온 터라 중국 인사들과 교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손인 김정남의 아들 한솔을 두고선 김정은이 발편잠을 잘 수 없는 건 자명한 이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백두산 인근 삼지연 지역에 체류 중이다. 어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그가 삼지연 지역 주택건설 현장 등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예전 백두산 방문 때와 달리 최측근 조용원 당 부부장만 대동한 단출한 ‘현지지도’다. 대외 생존전략과 내부 경제가 엉망이 된 내우외환에다 반체제 세력까지 급부상하면서 김정은 체제는 그야말로 삼각 파도를 맞이하는 형국이 됐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북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백두산 구상’이 어떤 향배를 보여줄지는 오는 11일 열릴 북한 최고인민회의 14기 첫 회의와 그 직전 개최할 노동당 정치국 회의 또는 전원회의를 통해 베일을 벗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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