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그들 [홍승철]

일터의 그들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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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그들

2019.03.21

직업인들이 처하는 상황은 다양하고 그 상황에 대응하는 태도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상황이 힘들어서 불만이 넘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회사의 중견 간부는 성과는 높은데 거기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안에 독립하여 자신의 회사를 만들려 하고 있었습니다. 설비 회사에서 사후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여 불만인 경우도 보았습니다. 현재의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기업의 대리점 자격으로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은 모기업 경영자와 같이 모인 대리점 회의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해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태도를 지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만난 보험회사의 영업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 제도가 시행되면서 회사에서는 6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남아 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고객과의 상담은 저녁에 할 경우가 많아요. 상담을 할 때는 문제가 없어요. 밖에서 나 혼자 하니까요. 상담이 끝나서 계약을 완료하려면 내부 지원 부서에서 오케이를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데, 그들이 퇴근해 버리고 만 경우에는 난감해요.”

최근에는 대기업 계열의 의약품 회사에 다니는 중간 간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애로가 발생합니다. 휴일근무를 하면 대휴(代休)를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요. 아예 휴일에 근무한 사실을 숨깁니다. 그러다 보니 휴일 근무 때 밥을 먹고도 회사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지요. 평사원층은 겉보기에는 자유롭게 대휴를 사용하는 듯해 보이는데,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주변 상황에 모순이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일은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교육 사업을 하는 회사의 간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사업 기획을 담당합니다. 내가 기획한 신사업을 3년째 운영하는데 지난달에 흑자를 냈어요. 작년엔 첫해보다 3배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엔 작년의 두 배 매출을 계획하고 있는데 실현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해 온 직원과 이별주를 나누었어요.” “사업이 잘 되고 있다면서요. 그 직원은 왜 그만두었나요?” “잘 되고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일러요. 한두 달 흑자 났다고 성공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회사 대표는 이제 되었으니 운영만 잘 하면 된다고 말해요. 그러려면 다른 비용 쓸 필요 없고 운영에 능한 인력만 투입하면 된다는 거죠. 당장은 비용도 줄이고 얼마간 매출도 더 높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잘 하기 위한 일은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 직원이 퇴직한 사유도 그 아쉬움 때문입니다.” “애초에 대표님과 성과지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합의하지 않았나요?” “그게, 이익 실현만을 최종 성과지표로 정했던 거지요. 나의 실수라면 실수입니다.” “다음부터는 투자 단계에서 핵심 성과지표를 잘 설정하고 합의해 두면 되겠군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시지요.” “옳은 말씀이긴 합니다. 어쨌든 오늘 답답한 걸 토로해 놓으니 맘이 시원합니다.” 그에게서는 성취감과 실망이 공존하는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월 말에 만난 마흔 살 사진사의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직원까지 둔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전속 사진사이기도 했으며 주말이면 결혼 사진을 주로 찍었다고 했습니다. “사진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가 집안 경제 사정으로 1년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서른이 될 때까지는 어려웠습니다. 목표를 정했지요. 15억 원을 벌겠다구요. 그 돈의 의미는 살 집을 한 채 소유하고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괜찮은 외제 자동차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삶이 지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편한 것이 싫었습니다. 생각한 끝에 오늘로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해 버렸습니다. 3월에 베트남으로 떠납니다. 아내에게서는 2년간의 베트남 생활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1년치 생활비만 가져가서 1년 동안은 베트남어를 배울 것이고 다음 1년은 현지에서 생활비를 벌어가며 살아볼 계획입니다.” “돌아오면 무얼 할 건가요?” “생각해 두진 않았어요. 사진 일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그때 가서 다른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할지도 모르지요.” “멋있군요. 도전하는 삶이 부럽습니다.” 그는 지난 18일 밤 베트남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저마다의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일을 해 내는 사람들을 보면 크든 작든 열정을 느낍니다. 그들에게는 금전 보상 이상의 동기가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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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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