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에서 창의력 발전소 변신 '마드리드 마타데로' VIDEO: Matadero de Madrid


도살장에서 창의력 발전소 변신 '마드리드 마타데로'

Matadero de Madrid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


   투우에 열광하던 미국 작가 헤밍웨이는 마드리드 체류 시절 아침마다 어떤 곳을 향해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곳에서는 투우사들이 아침마다 도축용 소를 상대로 연습을 하고 있었고, 위대한 작가는 그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정신적 정수는 투우에 있다. 이방인의 눈에 이상하게 비춰지지만 매우 특이한 스페인만의 전통문화다. 


 

Matadero Madrid/Turismo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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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자답게 헤밍웨이는 여행 책자에 나오지 않는 비밀스런 곳을 가고 싶어했다. 관광객들로 득실득실한 곳을 피해 그 도시만의 진정한 정수가 살아있는 곳이라면 더 좋다. 예술가들뿐 아니라 기업의 리더들에도 그러할 것이다. 


헤밍웨이가 매일 아침 출근하다시피 했던 곳, 그래서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장소의 이름은 마타데로(Matadero). 마타데로란 스페인어로 도살장을 의미하고, 이름 그대로 1920년대부터 1996년까지 수많은 소와 돼지를 도축하던 곳이었다. 


 

마타데로는 스페인어로 도살장을 의미한다. 원래 소와 돼지를 잡던 도축장이었지만 지금은 마드리드 미래의 예술문화 실험단지로 변신하였다./사진=손관승


수도 마드리드와 주변 주민들의 육식 공급처였다. 마타데로 단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그 수요가 줄어들게 되어 도축 시설이 교외 지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해 결국 1996년 폐쇄가 결정되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이곳은 버려져 방치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던 곳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신을 도모하게 된다. 아니 2007년부터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뀌었으니 단순한 변신을 넘어 완전 개조에 가깝다.




네오-무데하르 양식의 정석을 보여주는 마타데로의 오리지널 건물의 외양을 그대로 살려, 과거와 미래가 자연스레 공존하도록 디자인했다./사진=손관승


지금은 도시마다 폐기된 공공건축물을 누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화려하게 부활해 내는가 경쟁하는 시대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파리의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뒤바꾼 오르세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장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마타데로’ 복합문화예술공간은 좀더 파격적이다. 뉴욕의 육류창고가 있던 미트패킹 구역이 갤러리와 팬시한 레스토랑 지역으로 바뀌고, 런던 스미스필드의 변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드리드 도살장과 육류창고 단지의 규모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다. 


무려 4만8천300평방미터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모두 11개동의 건물이 채워져 있고, 네오-무데하르(Neo-Mudéjar) 양식의 정석을 보여주는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과거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 무어 족의 건축양식을 근대적으로 다시 복원한 스타일의 건물이다. 


그 가운데는 칼레 이 플라자 마타데로(CALLE Y PLAZA MATADERO)라는 이름의 매우 넓은 광장이 있어 각종 야외 콘서트나 행사, 옥외 설치예술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특이한 것은 모두 한꺼번에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씩 10년에 걸쳐 천천히 변신을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마드리드 시의 예술총국에서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저명인사들이 아닌 젊은 예술가들에게 의뢰하는 파격을 도모하였다. 


마타데로 복합단지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광장. 이곳에는 설치미술이나 콘서트나 야외 전시가 이뤄진다./사진=손관승


그 변화의 출발은 2007년 ‘디자인 센터’와 ‘인터미디어’ 두 건축물의 개관이었다. 젊고 유능한 건축가들은 자칫 혐오스러울 수 있는 이 장소의 이름뿐 아니라 과거 건물들을 버리는 대신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과거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수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기존 건물과 건축자재를 재활용하고 비교적 저렴한 건축 재료를 사용해, 튀어나온 콘크리트와 벽돌, 철구조물, 플라스틱 커튼 줄 등 거친 재료들이 종종 눈에 뜨인다. 예술가들은 이 거친 재료들에 창조라는 이름의 특이한 옷을 입혀 새롭게 보이는 데 성공하였다.


마타데로 복합단지의 변신이 시작되었던 디자인 센터 건물./사진=손관승


마타데로 각 건물에는 전시, 공연뿐 아니라 강의와 강의장, 그리고 작업과 교육, 그리고 연구 공간들로 나눠진다. 여기에 시네테카(CINETECA)라는 이름의 극장이 있는데, 이곳은 주로 시중 극장에서 자주 상영되지 않는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올리는 곳인데, 라파엘아즈코나 연극무대(RafaelAzcona Theatre)와 더불어 비주얼 아트의 실험무대 역할을 한다.




극장 옆에는 이름도 ‘라 칸티나 데 라 시네테카’, 즉 극장의 구내식당이란 매우 귀여운 어감의 구내식당이 있는데,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다과를 즐길 수 있고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도 매우 따뜻하다.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 전용공간인 ‘시네테카’(위 사진)와 그 부속 칸티네. 마드리드 시민들의 산소역할을 하는 곳이다./사진=손관승


생명체의 숨을 끊던 무시무시한 곳에서 지금은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없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쓰기에도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완성된 예술이 아니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젊은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과 전시공간을 제공해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명실공히 스페인의 창의력 발전소인 것이다. 예술에서 가장 나쁜 것이 금기이고 규제라면, 작가 개인에게는 타성적인 관념이다. 그 금기와 타성을 도살해버리겠다는 엄청난 발상이 지배하는 곳이고 도시에 산소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타데로의 한 전시장에서 남미 페루 작가들의 현대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시민들./사진=손관승


스페인의 과거를 보고 싶으면 프라도 미술관을 가야하고, 스페인의 현대를 알려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방문하면 된다. 그러나 스페인의 미래를 알려면 마타데로에 가야 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보물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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