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교육부 좀 없애줘"


"누가 교육부 좀 없애줘"

오피니언
안석배 사회정책부장

 
他 부처 공무원 출신 대학총장 
"정부 간섭 이 정도인 줄 몰랐다"

교육부 간판 떼어지는 날 
우리 교육 점프 기회 생기려나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대학 총장으로 일했던 사람을 안다. 대학 재정난, 학생 인구 감소 등으로 대학의 고민을 얘기할 때가 잦았다. 그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끝났다. "나도 공무원 했지만 교육부 공무원들은 해도 너무해. 누가 교육부 좀 말려줘요." 타 부처 경험으로 비추어도 심한 게 교육부 간섭과 규제다. 그러니 민간에서 봤을 땐 어땠을까.

전국 대학의 총장들과 보직 교수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가 있다. 으레 그런 자리엔 교육부 장관이나 고위 간부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다. 강연장 뒷자리로 갈수록 원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정작 마이크를 대면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교육부에 찍히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두 너무 잘 안다.



올해 교육부 예산이 70조원이 넘는다. 나라에서 대학 등록금을 10년째 꽁꽁 묶어 대학은 돈줄이 말랐다. 세금 많이 걷혀 나라 곳간은 넘치고 학교는 한 푼이 아쉽다. 갑을(甲乙) 관계는 점점 공고해진다. 돈 나눠주는 교육 공무원 목소리만 커진다.

정부는 어떤 식으로 전국 350개 대학에 돈을 나눠주나? 매번 다르다. 어떤 해에는 대학에 융·복합 학과 만들면 돈 준다고 하고 어떨 땐 특정 계열 정원을 줄이라고 한다. 논술 문제 어렵게 내면 예산을 깎고 구조조정안이 맘에 안 든다고 줬던 돈을 빼앗는다. 원칙 없고 일관성 없고 통찰력 없는 예산 배정에 대학들이 느는 건 '눈치'다. 수십 년 한국 대학들이 살아온 방식이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이런 식이니 대학 경쟁력이 생길 리 없다. 최근 한국 대학들이 뒷걸음질한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가 만든 생태계에 대학들이 끌려온 결과다.

선거 때마다 교육부 폐지론, 축소론이 나왔다. 대학가 사람들은 "누가 교육부 좀 없애달라"고 한다. 10여 년 전 정부도 교육부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초·중·고교 업무는 시도교육청에, 직업교육 업무는 노동부에, 과학기술 개발 업무는 과학기술부에 이관하겠다고 했다.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교육부 기능을 재조정한다고 한다. 지난주 정부가 그 밑그림을 내놨다. 국가교육위원회, 교육부, 교육청 세 기관을 축으로 교육 정책을 펴겠다는 게 요지다. 국가교육위는 10년 이상 중장기 정책을, 교육부는 대학 업무를, 교육청은 초·중·고교를 관장하겠다고 한다. 명목상으론 교육부의 일 상당수를 다른 기관으로 떼내 힘을 빼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교육부가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게 대학 업무다. 이게 규제의 핵심이다. 학과 신설하고 정원 늘리려 해도 정부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학 경쟁력 키워준다며 교육부가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데 그 결과가 지금 한국 대학들 형편이다. 그만 간섭하고 빠져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예산이 잘못 쓰이는지, 입시 부정이 없는지만 보면 된다. 그런데도 끝까지 대학을 손안에 쥐고 있겠다는 건 나라를 위해서인가, 교육부 공무원들을 위해서인가.



이 정부 국가교육위원회 실험이 성공하려면 중립성이 관건이다. 정부 안대로라면 친(親)정부 인사가 위원회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러면 정권 바뀔 때마다 전(前) 정부 위원 솎아내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국가교육위를 국회 산하로 만들고, 여야가 추천한 인사가 머리 맞대고 10년을 지속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초·중·고는 교육청에 넘기고 대학은 기본적으로 자율에 맡기면 된다. 교육부 역할은 자연히 사라진다. 우리 교육이 크게 점프할 기회는 교육부 간판이 떼어지는 날 생길지 모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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