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층 평등하게 만든 엘리베이터, 도시의 ‘수직혁명’ 이끌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위아래로 이동하는 상자’가 바꾼 세상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저 수많은 건축물에는 철근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로 이루어진 입체 격자, 그 위에 층마다 쌓여 올라가는 수평 바닥, 유리면으로 덮인 외피, 그리고 늘 일정한 실내 환경이라는 공간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런 건축물은 대체로 자본주의 경제를 위한 건축적 장치로 발전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아파트는 르코르뷔지에가 창안했다고 하고 철근 콘크리트 구조도 그가 발명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유명 건축가 중심으로 건축을 이해한 까닭이다.  




전차가 수평확장 만들었다면 

고층빌딩 시대 연 핵심 요인 

토지 이용가치 혁명적 변화 


거대 철골구조 에펠탑 승강기 

고공상승 극적인 경험 가능케 

부와 조망권 직접 연결하기도 


그런데 이런 것 말고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근대건축만의 요소가 더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건축물의 공간을 수직으로 꿰뚫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는 특히 철골 구조와 만나 인공대지인 바닥을 층층마다 만들어질 수 있게 해주었다. 흔히 고층빌딩이나 마천루가 먼저 있고 그것이 엘리베이터라는 장치가 생기게 했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반대로 마천루를 만들어 준 것은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공중 이동 상자 엘리베이터였다.  


새 건축 움직이는 동인이자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복잡한 도시의 사회적 공간 




엘리베이터의 설치는 층수와 건물의 높이로 정해진다. 사람이 계단으로 위아래로 다니며 생활할 수 있는 범위는 20m, 건물로는 5층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 법규로는 6층 이상이고 바닥면적이 2000㎡ 이상인 건축물, 건물의 높이가 31m를 넘는 건축물은 비상용 승강기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 31m는 사다리차의 높이가 31m인 것에서 나왔다. 따라서 뒤집어 보면 이 규정은 엘리베이터가 없었더라면 도시에는 5~6층 정도의 건물만 있었을 것임을 반증한다. 


학교에서는 근대건축사의 앞부분을 유명한 건축가들이 주도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20세기 초의 생활과 건축공간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은 건축가의 예술이 아니라 교외전차와 엘리베이터라는 기술적 산물이었다. 교외전차는 근로자의 주거를 도심에서 교외로 나가게 했고, 그 결과 전원도시가 발전하고 도심에는 사무소 건축이, 교외에는 독립 주택이 새로운 과제로 나타났다. 




고층 빌딩의 구조체 기술은 오래전 중세 고딕 대성당에서 이미 실현됐다. 그러나 고층 건물들이 도시에 실제로 지어진 것은 그때부터 400년이 지나서였다.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가 넘는 초고층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이 철골 구조만으로는 절대 지어질 수 없다. 특히 뉴욕에서 자기 땅에 높이와 관계없이 하늘을 향해 얼마든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토지의 이용 가치를 크게 바꾼 것은 엘리베이터였다. 그래서 현대 건축가 렘 콜하스도 자본주의 경제를 가능하게 해 준 맨해튼의 건축적 장치가 다름 아닌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에어컨의 기술이라고 역설하며, 유럽의 모더니즘(Modernism)과 구별해 이런 자본주의 건축을 ‘맨하트니즘(Manhattanism)’이라 불렀다.  



엘리베이터는 아주 오래전 기원전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가 도르래 원리로 제작했다 하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 안에 검투사나 동물들을 들여보낸다고 28개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했으며, 12세기에는 프랑스 몽생미셸 수도원에 당나귀의 힘으로 들어 올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17세기에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설치된 엘리베이터에서 공주가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등 엘리베이터에 얽힌 이야기는 아주 많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엘리베이터를 발명한 이는 미국인 엘리샤 그레이브스 오티스였다. 그는 1854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극적인 연출로 안전장치를 갖춘 엘리베이터를 선보임으로써 엘리베이터의 아버지가 됐다. 그러나 1949년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동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는 높이 509m인 대만의 ‘타이베이 101’로 1분에 1010m 움직이고, 세 번째로 빠른 것은 2010년 준공된 높이 828m에 163층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로 1분에 600m 이동한다. 높이가 1㎞가 넘는 초고층 빌딩에서는 보통 엘리베이터로는 끝까지 올라가는 데 20분이나 걸린다. 그러나 이것은 첨단 설비일 때의 예이고, 보통 엘리베이터로는 16개 도시의 도시 직장인이 1년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33년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점을 해결하려는 것이 도르래를 이용해 로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닌 자기부상열차 엘리베이터인데, 이것은 절반의 공간만으로 건물 속을 위아래로도 좌우로도 모두 움직여 이동 거리도 반으로 줄고 대기 시간도 15~30초로 줄일 수 있다. 이런 엘리베이터가 두루 쓰이면 고층 건축물의 형태와 평면 나아가 도시 공간은 다시 크게 달라질 것이다.


철골 구조는 본래 온실, 역사, 시장, 도서관, 백화점, 은행 그리고 만국박람회 회장 등 광대한 내부가 필요한 거대건축물에 사용됐다. 그러나 이런 철골 구조물에 엘리베이터 장치가 내장되는 순간, 건물을 고층화해 공간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에 똑같이 철골로 지어지기는 했어도 엘리베이터가 없이 장려한 대계단, 내부를 내려다보는 화랑, 공간을 건너는 다리와 같은 통로로 구성된 파리의 백화점과 고층 빌딩은 지향점이 달랐다.




고공을 향해 상승하는 엘리베이터의 경험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단연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이었다. 이 탑의 철골은 엘리베이터를 떠받치는 것일 뿐 엘리베이터 자체가 탑이었다. 따라서 에펠탑의 본질은 정확하게 300m의 높이를 상승하는 바를 몸으로 체험하게 해 주는 엘리베이터에 있다. 사람들은 상승·하강하는 상자를 타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도시의 파노라마 풍경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것도 돈만 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쾌락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지만 에펠탑에서는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마치 기구(氣球)를 타고 올라가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비행기와 같은 기계의 등속도로 도시생활을 내려다보는 극단적인 파노라마를 처음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건물과 함께할 때 사회의 구조나 이미지를 갱신하는 힘을 가진 것이었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높은 층의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사장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보급되기 이전에 계단만으로 오르내리는 건물에 부자가 높은 층에 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주인은 주요 층인 2층에 거주하고 위층은 하인이 거주하거나 창고로 이용했다. 안드레아스 베르나르는 ‘엘리베이터의 문화사’에서 부자는 왜 높은 곳에 살았는가를 이런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 운동하는 엘리베이터는 이것을 반전시켰다. 잡다한 내부 구성은 정연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고층과 저층의 가치가 역전했다. 고층의 전망은 그대로 부동산 가치가 돼 부자들을 고층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20세기 미국에서 초고층 빌딩 옥상의 ‘펜트하우스(penthouse)’는 탁 트인 전망과 풍부한 자연 채광 그리고 옥상 테라스를 사용할 수 있는 풍요의 상징이 됐다. 이 말은 본래 ‘덧붙인 집’을 뜻했으나 마천루의 지붕에 지은 사치스러운 아파트로 뜻이 바뀌었다. 이렇게 건물이 고층화하자 가치는 위를 향해 옮겨갔다. 엘리베이터 덕분에 전혀 새로운 주택 형식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타고 다니는 엘리베이터.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인 수단이 아니다. 


철로가 수평 방향으로 확장해 나갔다면 엘리베이터는 2층, 3층 등 정수로 명쾌하게 분절되고 정확하게 높이가 같은 층을 쌓아 올린 직선 건축을 만들었다. 과거의 다층 건물은 층의 높이도 다르고 증개축으로 층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으나, 엘리베이터가 건물에 들어오자 경계가 분명하지 못한 중2층, 지붕 밑의 다락방과 같은, 다소 섬뜩하지만 그래도 신기했던 공간은 사라지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는 사람이 들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공업 제품이다. 건축가는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배치하는가는 결정하지만 정작 그 내부는 건축가가 손대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로 보면 모든 층은 평등하다. 엘리베이터는 단추 하나만으로 자동 이동할 수 있으며, 층과 층을 기계적으로 접속해 준다. 그 층이 5층이든 23층이든 관계없이 모든 층은 평등하다. 이런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바로크의 장려한 계단으로 공간을 예술적으로 구성하려는 건축가의 노력은 일거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내부 공간의 쇼케이스다. 존 포트먼이 설계한 하얏트 리젠시 호텔이 그러하듯이 투명한 유리를 통해 내부 공간을 조망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위아래가 크게 뚫린 대규모의 공간 안을 이동하는 주인공이 된다.  




                 파리의 에펠탑은 엘리베이터 자체다. 이 탑의 철골은 엘리베이터를 떠받치는 것에  불과하다. 

                 @Wikimedia Commons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승강기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1937년 화신백화점이었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엘리베이터 수가 12대로 세계에서 세 번째이고 승강기를 64만 대나 보유하고 있으며, 2020년이면 엘리베이터만으로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서울 지하철역이 94%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잘 모르고 지낸다.  




엘리베이터는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은 중요해도 그 사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수직으로 이동하는 지하철과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면 타기 전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엘리베이터는 배타적이다. 그런가 하면 엘리베이터는 아무리 멋있어도 그 안은 짧은 시간이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침묵 속에서 함께 있어야 하는 어색하고 좁은 공간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대개 거울이 있는 것은 왠지 지루한 시간을 잊고 자기 모습을 보며 좁은 공간에서 어색한 시선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정보와 광고를 보여주는 LCD 모니터도 거울의 이런 작용과 비슷하다. 혼자 타고 움직일 때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셀카도 즐겨 찍는 곳이다. 따라서 엘리베이터는 잠정적인 사적인 공간이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는 사람과 물건을 위아래로 운송해 주는 교통 설비다. 교통이라고 하면 자동차를 제일 먼저 생각하지만, 도시에서 제일 많이 타는 운송수단은 자동차가 아니라 엘리베이터라는 교통 기계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물건과 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매개하는 자동판매기와는 다르다. 노약자가 역에서 원활하게 이동하도록 설치된 대형 엘리베이터는 그만큼 내가 갈 곳을 대신 움직여준다는 의미에서 신체를 연장한 기계다.  




아파트에서는 같은 층에 살아도 만나기 힘든 이웃과 우연히 마주치는 곳이 엘리베이터다. 참 어색한 곳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면 그나마 아주 짧은 인사라도 나누게 되는 곳은 다름 아닌 엘리베이터 안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역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엘리베이터 내 인사 나누기’ 캠페인을 실시하자는 움직임도 제법 많다. 그렇다면 금방 수긍하기 어렵겠지만 엘리베이터는 다소 과장해서 지금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공동 공간이다. 건축 속의 엘리베이터란 새로운 건축을 움직이는 동인이요, 의외로 의미가 복잡한 사회적 장치다. (문화일보 12월12일자 24면 10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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