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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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요

2019.01.02

“여기 한 살 추가요!” 해가 바뀌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궁금한 게 없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 오히려 궁금한 것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알고 싶은 것이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 없고, 알지 못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알아도 별 볼 일 없는 ‘알돈신잡(알고 보면 돈 안 되는 신비한 잡학사전)’ 유의 정보나 지식이어서 문제긴 하지만요.

주위에서는 나의 이런 오지랖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나를 좀 안다는 친구들은 ‘그래서 네가 나이가 안 드는 것’이라고 비난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합니다. 집 아이들 또한 알 듯 모를 듯한 멘트를 날립니다. 어설프게 ‘노인 흉내’ 내지 말고 ‘노인답게’ 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런 나의 취향 또한 ‘나이  듦’의 신종 버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배 연기는 왜 항상 뒤로 날리는가?

길을 걷다보면 난감한 상황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담배 연기는 항상 왜 뒤로 흐르는 것인지? 앞에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서 걸을 경우 뒤를 따르는 사람이 그 연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되거든요. 한때 담배 피우는 사람이 멋있게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트렌치코트 깃을 반쯤 세우고 바삐 걷던 사람이 길 한쪽으로 비껴나 멈춰선 채 ‘자작거려’ 담뱃불을 붙일 때입니다. 사람 나름이라고요? 험프리 보가트나 알랭 들롱 같은? 아니면 로버트 테일러나, 조지프 코튼이거나 리처드 버튼 같은.

연식이 좀 오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공초 오상순 시인은 세수할 때만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잘 때는 어떠했는지 궁금함), 천경자 화백은 담배를 한 가치 꺼내 들고 성냥으로 ‘치익’ 불을 붙이기까지의 과정이 아름다워서 피웠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담배 예찬은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이야기죠.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악성 행성(行星)에서 온 외계인 취급받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뭐 하러 담배 피우는 사람 뒤를 비 맞은 중처럼 궁시렁대며 굳이 따라가느냐고요? 앞질러 가면 될 것을.

#술은 왜 항상 마지막 잔에 취하나?

술은 처음 한두 잔이 가장 맛있습니다. 목구멍에 털어 넣었을 때 조수처럼, 그리움처럼 밀려오는 몽롱함이라니!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겨나며 누구의 잘못인들 다 용서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술처럼 이상한 음료가 또 있을까요?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 함께 자리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보다 술값을 누가 내느냐에 따라 같은 술이라도 맛이 판이하게 다르거든요. 술을 마시면 대개 말이 많아지는데 진실이 수줍은 꽃처럼 얼굴을 내밀기도 합니다.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술이 지나치면 관계 땜질에 도움 안 되는 헛소리, 잔소리, 쓴소리가 비집고 나와 그날 분위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그런대로 좋았던 관계를 일시에 망쳐버리는 일도 있거든요.

과음하고 난 후 숙취의 폐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작취미성(昨醉未醒)의 곤고함이라니요. ‘아, 나는 왜 이런담? 2차만 안 갔더라도.’ ‘그런데 궁금하네. 왜 술은 항상 마지막 잔에 취하는 거지?’ ‘한 잔에 취하든, 몇 잔, 몇 십 잔에 취하든 마지막 잔은 있기 마련이잖아.’ 혼잣말을 주고받다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2차를 안 가면 되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하면 2차를 안 가지?’ ‘아, 2차를 건너뛰고 3차를 가면 되네!’ 여기서의 3차는 노래방이 아니라 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기다리다 잠이 든.

기호품 이야기로 새해를 열어 죄송합니다. 담배는 끊고 술은 줄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라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위태(危殆)하였습니다. 올 한 해는 시작이 끝이 아니고, 끝이 또 다른 시작인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새해에는 누구에게든 고마움 전하고 싶습니다. 올 한 해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빕니다. 이 짧은 글을 읽는 독자들께, 이 글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도.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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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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