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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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2017.04.11

도스또예프스키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아, 세상에! 저들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아십니까! 종이 한 장 써내는 일이 뭐가 그렇게 힘들겠어요? 어떤 때는 하루에 다섯 장 정도 쓰는데 한 장에 3백 루블이나 받는다는군요. 뭐 좀 재미있는 콩트나 웃기는 이야기를 쓰면 5백 루블도 받고, 달라, 못 준다, 아무리 저쪽에서 억지를 써도 이쪽에선 큰소리를 탕탕 친다는 거예요. (중략) 자작시를 써놓은 공책도 한 권 있는데 시라고 해봤자 다들 짤막짤막하더구만, 그는 노트 한 권에 7천 루블이나 달라고 한다더군요. 그만한 돈이면 웬만한 영지나 커다란 집 한 채 값이죠.” 

<가난한 사람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궁색한 늙은 하급 관리와, 그에 못지않은 가난으로 인해 돈 많은 지주에게 팔려서 시집가는 가련한 처녀가 주고받는 편지체 소설입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24세 무렵, 본인 스스로 하급관리로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돈 때문에’ 이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낸 소설이 대히트를 하면서 그는 일약 스타 작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문학의 길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습니다.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 ‘도스또예프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등, 그에 대한 화려하고 웅대한 수식어의 이면적 실상에는 돈, 그것도 생계를 위한 절박한 돈 문제가 똬리를 튼 뱀처럼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대책 없는 소비와 도박 빚에 허덕이는 도스또예프스키의 못 말리는 낭비벽이 근본 원인이었지만 그렇게 돈에 쫓기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 위대한 작가가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은 어떤 식이건 ‘무죄’인가 봅니다. 

만약 당시 상황이 지금처럼 글이 큰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때였다면 세계적 대문호 도스또예프스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글재주가 아무리 탁월했다 해도 그것이 돈이 안 된다면 그는 돈이 되는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의 육필 원고지 사방 여백 곳곳에는 작은 숫자와 덧셈, 곱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매당 원고료를 계산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글은 수단이고 돈이 목적이 되어 틈틈이 돈 계산을 하면서 원고지를 메우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몇 장 썼으니까 얼마 벌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국민으로서 최고의 선행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돈벌이를 잘 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난한 사람들>에도 나오지만 그의 소설에는 유난히 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걸로 보아 이래저래 도스또예프스키는 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만 열면 돈 타령이요, 매사 돈을 밝히며 궁기에 쩐 대문호의 민낯을 대하기가 어색하고 민망하지만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공무원 봉급으로는 무분별한 소비 습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소설가의 길로 가야 했던 도스또예프스키와, 비록 쥐꼬리 월급일지언정 말단 공무원이 되기 위해 쓰던 소설도 집어치워야 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더구나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로 글 쓰는 일이 꼽혔다는 것은 아무리 시대와 공간이 다르다고 해도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저는 지난해 말 소설 한 권을 내고는 얼결에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스또예프스키처럼 러시아 작가도 아니고, 독서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1800년대 글쟁이도 아니니 소설을 써서 돈을 벌기는 애초 글렀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24%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영화, 여행, 맛집 등에 쓰는 돈은 안 아깝지만 책을 사는 데는 지극히 인색하다는 의미입니다. 성인 3명 중 1명은 1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3명 중 2명이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만. 틈만 나면 스마트 폰과 인터넷 서핑,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매달려 거기서 재미를 찾으니 책을 읽을 시간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 국민들의 월평균 독서량은 10권, 미국 6.6권, 일본 6권 수준입니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독서 현실에서는 글을 쓰면 쓸수록, 책을 내면 낼수록 가난해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계속 쓰고 싶다면 밥벌이 수단을 달리 강구해야 합니다. 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이 두 명제가 마치 죽느냐, 사느냐의 다른 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언감생심 도스또예프스키를 부러워할 수는 없고, 그저 시절 인연을 탓할 수밖에 없겠지만, 모두들 책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는 사실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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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아연

이대 철학과를 나와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는 자유칼럼그룹과 자생한방병원 등에 기고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를 비롯,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마르지 않는 붓(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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