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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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

2017.04.07

“모세가 이집트에서 여론조사를 했다면 유대인들을 가나안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을까?”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1884~1972)이 1948년 재선에 성공한 후 한 말입니다. F 루즈벨트의 급서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그는 여론조사나 언론은 물론 당내 분열로 열세라는 평가를 뒤집고 공화당의 강력한 후보 토마스 듀이를 물리쳤습니다. 6·25 참전, 맥아더 해임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트루먼은 승리의 원인을 “소통을 통해 나 자신이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선거 3주 전 뉴스위크는 유명 신문·방송의 정치부 기자 50명에게 트루먼과 듀이 중 누가 이길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결과는 50명 모두가 듀이가 승리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갤럽은 2주 전 듀이(49·5%)가 트루먼(44·5%)을 앞선다는 결과 이후로 여론조사를 접었고, 뉴욕타임스는 선거 바로 전날 듀이가 압승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트루먼 공격에 앞장서 온 시카고트리뷴은 당선이 확정된 날 조간신문 1면에 ‘듀이가 트루먼을 이겼다’고 통단 머리기사를 실어 망신을 샀습니다.

뜻밖의 반전 결과에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 각하, 까마귀 고기를 먹으라면 먹겠습니다”라는 사과 현수막을 사옥에 내걸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우리의 잘못은 여론 조사자들의 눈을 통해서만 트루먼을 평가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유권자의 눈으로 트루먼을 보지 않았다”는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의 편지 내용과 함께 사과 기사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소신이 뚜렷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풍부한 트루먼은 “일을 바르게 하려는 공직자는 언론의 공격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며 정무를 꾸려나갔습니다.(정숭호의 <트루먼> 참조)

“엄마, 지뢰 제거 작전에 나갈까요 말까요?”
수도권에 있는 육군의 한 공병부대 지휘관이 선발한 병사들의 부모동의서를 요구하고, 동의하지 않은 병사는 작전에서 열외 시켰습니다. 투입 예정 병사 60여 명 중 10%가 넘는 8명이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대 갔다 와서 사람 됐다'는 소리는 옛말이고, 군사 작전에까지‘군부모(軍父母))’의 치맛바람을 끌어들이는 작태엔 썩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참 많이 변했습니다. 

이 부대는 6·25 때부터 경기도 일대 작전지역에 매설된 지뢰 제거 임무를 계속해 왔고,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후로는 더 많은 병력을 작전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지휘관은 사고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오해 여지도 있어 구두경고를 받았습니다. 
지휘 통수권을 받은 장수는 전장에서 왕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수천 년을 이어온 군의 철칙입니다. 그것이 통수권자(왕이나 대통령 혹은 총리)들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억제된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병사를 ‘국방 유치원생’으로 만드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인 정치도 그렇지만, 피를 흘려야 하는 전쟁은 이겨야 승리자가 됩니다. 패자는 목숨은 건질 수도 있지만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선 병력과 자원·무기로 압도해야 하는 한편, 장병 모두가 필사의 투지와 전의를 가져야 합니다. ‘전방부대 생활이 싫다’ ‘보초 서기가 두렵다’ ‘근무가 너무 고되다’ ‘식사가 입에 안 맞다’는 따위 병사들의 가당찮은 고충을 일일이 군부모 뜻에 따라 조정하는 군대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편이 낫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1월 ‘역사교과용 도서 다양성 보장에 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도종환 의원 발의)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습니다. 이 법안은 중·고등학교에서 검·인정 교과서만 쓸 수 있도록 제한하고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교문위는 이와 함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 결의안도 가결했습니다. ‘좌편향이다’, ‘우편향이다’는 정부와 전교조·민노총의 이념 대립 내지는 진영 논리가 여소야대의 국회로 옮겨졌으니 또 어떤 결과를 낳을는지 궁금합니다. 뭐가 '다양성'인지도 감이 안 잡힙니다.

십수 년의 논쟁과 공방 끝에 지난해 탄생한 국정교과서는 올 들어 전국 5,566개 중·고교 가운데 문명고등학교(경북 경산) 한 곳만 채택하기로 했으나 끝내 무산됐습니다. 이에 앞서 경북항공고(영주)와 오상고(구미)도 채택을 결정했다 ‘친일·독재 교과서’ ‘최순실 교과서’라며 반대하는 민노총과 전교조의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문명고는 3월 2일 신입생 180명의 입학식조차 취소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 150여 명이 강당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며 입학식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전학이나 입학 포기를 원하는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새 학기 들면서 전국 초·중·고에서는 교사들의 무단결근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교사 16명을 노조 전임자로 승인해달라는 법외노조인 전교조의 요청에 교육부가 불허 통보를 했으나 해당 교사들이 무단결근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은 결근 교사들에게 출근 독촉서와 함께 복귀를 요구했으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조직의 뜻(요구)을 거부할 수 없다”는 대답입니다. 4명이 교육감 권한으로 직위해제됐지만 나머지는 무단결근, 연가, 휴직 상태라고 합니다. 학생보다 조직이 우선인 교육 현장의 또 다른 난기류입니다.

토마스 듀이가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와 언론의 전망에 듀이 캠프에 대통령 경호요원 5명을 추가로 파견한 백악관 경호실. 부모동의서에 따라 처신한 지휘관이 군법 위반 사항이 없다고 변명한 군 당국. '촛불시민혁명'의 결과로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질 것. 이런 조치와 예단들을 보면서 ‘시민의 뜻’ ‘국민의 뜻’에 편승하여 대세론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후보를 한번 떠올려 봤습니다.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에 ‘문재인에게 묻는다’는 형식으로 몇 가지 의문점을 들어봅니다.

첫째, 대통령감으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재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경력을 토대로 주장하는 ‘준비된 대통령’으로는 아무래도 미흡합니다. 김종인 전 대표가 “남이 써 준 공약이 무슨 공약이냐"는 비방에 대응할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확 뚫릴 슬로건이 없어 아쉽습니다.

둘째, 문 후보는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론과 이승만과 박정희도 다 같은 국민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분노가 없다’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청산해야 할 사람, 분노의 대상을 포용하지 않고 반쪽 정부로 정치를 하며 나라를 이끌겠다는 것인지 염려됩니다. 분노의 정치는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피를 부른다는 역사적 사실이 허다한데도 말입니다.

셋째, 한국의 안보는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목함지뢰 폭발이나 김정남 암살 같은 북한의 도발이 발생할 때마다 문 후보 진영은 ‘그것이 북한의 도발이 맞다면…’이라고 토를 달았습니다.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에 맡기라고 한 문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이미 들여온 사드는 어떻게 처리할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실험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좋아요'를 눌러 대는 엄지놀림을 그대로 국민의 뜻이라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아마도 훌륭한 지도자를 뽑아 든든한 안보정책 아래 희망 넘치는 교육과 생업으로 미래를 꿈꾸는 것이 지금 백성들의 진정한 뜻이 아닐까 합니다. 
“리더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일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 트루먼의 정치철학이 더 돋보이는 계절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할미꽃 (미나리아재비과) Pulsatilla koreana

양지바른 무덤가에 호젓이 피어나는 할미꽃,
잎과 줄기는 하얀 솜털에 싸여 있고 
큼직한 붉은빛을 띤 자주색의 꽃이 등 굽은 할머니처럼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피었습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할미꽃 전설,
부모 없는 어린 세 손녀를 어렵사리 홀로 키워 시집을 보냈습니다. 
나이가 들어 홀로 살 힘이 없어 손녀를 찾아간 할머니,
살림은 넉넉했지만 마음이 고약한 큰 손녀, 둘째 손녀에게 홀대를 받고
한겨울에 멀리 외딴 산골에 사는 막내 손녀 찾아가다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모롱이 길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이듬해 봄에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할미꽃이었다는 이야기.
할미꽃을 볼 적마다 생각나던 전설도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산길과 무덤가에 가 봐도 이제는 만나기가 쉽지 않은 꽃입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슬픈 할미꽃 이야기도 이제는 잊혀 갑니다.
   
흰 깃털로 덮인 열매의 모양이 할머니의 하얗게 센 머리를 닮았다 하여 
또는 대가 구부러진 모양이 할머니의 구부러진 허리와 닮았기 때문에 
할미꽃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손녀의 집을 눈앞에 두고 쓰러져 죽은 할머니의 넋이 피어난 꽃이라 하여
꽃말은 ‘슬픈 추억’입니다.
   
햇볕을 좋아하는 할미꽃은 벌거숭이산과 무덤가에 잘 자랍니다.
요즈음은 산에 풀과 나무가 무성하여 할미꽃이 살기에 적합한 
양지바른 장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갈수록 보기 힘든 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독식물이지만 한방에서 뿌리를 해열, 소염, 살균 등에 약용하거나 
이질 등의 지사제로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학질과 신경통 치료에 사용했습니다.
   
(2017. 3. 30. 남한산성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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