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암반 분쇄기 '진동 리퍼' 개발한 '대동이엔지' Daedong Maxbrio Vibroripper BR55 Korea: VICEO


(주)대동이엔지 박정열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선정 12월 기능한국인 선정

암반 분쇄기 개발에만 27년 열정 쏟아부어

건설기계산업 불모 ‘굴삭기 어태치먼트’시장 개척

진동 해머, 진동 리퍼, 브리오 댐퍼 등 혁신적 기술개발

소음 줄인 환경 건설 장비

50여개국에 700여백만불 수출

건설기계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


   27년 동안 건설기계 분야에서 혁신적인 신기술 개발을 통해 국내 건설기계산업의 불모지였던 ‘굴삭기 어태치먼트’시장을 개척해온 기업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한 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세계 최초 개발 '진동 리퍼' 앞에서 대동이엔지 박정열 대표


대동이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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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동이엔지의 박정열 대표가 그 주인공. 현장밀착형 숙련기술인으로 진동 해머, 진동 리퍼, 브리오 댐퍼 등 국내 최초, 세계 최초의 혁신적인 암반 분쇄기를 개발해 작업 시 소음 감소, 작업 효율 증가,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수입대체 효과로 건설기계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품질개선을 통해 국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매출액의 90~95%가 수출(50여 개국)이 차지하는 수출형 기업으로 성장시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자동차정비로 시작, 암반 분쇄기 엔지니어로 영업력까지 겸비 

박정열 (주)대동이엔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일찌감치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전남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진학했다. 공고 졸업 후 서울 장한평 자동차정비공장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며 자동차정비산업기사와 건설기계정비산업기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이후 군대에 들어가서도 차량중장비 업무를 맡았다. 


군 전역 후 경기도 포천에 있는 자동차정비소에서 정비 주임으로 일하던 중 중장비 업체인 (주)수산중공업의 공채소식을 접하고 도전한 결과 입사에 성공했다. 


박 대표는 수산중공업에서 일본에서 수입하는 유압 브레이커를 수리하는 업무를 맡으며 암반 분쇄장비와 첫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국내 유압 브레이커 시장은 국산 제품이 없어 일본과 유럽에서 비싼 가격에 수입해 쓰는 실정이었다. 


수산중공업까지 근무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마스터 했다고 판단한 박 대표는 친구가 창업한 정국엔지니어링에서 암반 분쇄기 국산화 개발에 도전했다. 주위에서는 국산화 한다는 말에 무모한 도전이라며 만류하거나 비웃기도 했다. 결국 국산화 개발에 실패하고 정국엔지니어링에서 나온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창업한 천양기계에 입사했다. 


천양기계는 제철소에서 주문하는 특수기계를 설계‧제작‧납품하는 회사였다. 두 딸이 태어날 때 한 번도 아내 옆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갈 것을 결심한다. 


천양기계를 떠난 후 (주)대농중공업에 입사했다. 대농중공업은 그의 경력을 보고 청주공장 엔지니어로 발령했지만 박 대표는 “영업을 하고 싶다”며 회사를 설득해 서울에 남아 기술영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품이더라도 이를 제대로 알리고 팔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기계만 다루다보니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거래를 뚫어야 하는 사무실 앞에서 서성이다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6개월 동안 단 한 대의 제품도 팔지 못했다. 그러다가 ‘영업사원이 제품 수리도 가능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한 달에 2억원의 판매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출처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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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 발상의 전환으로 혁신 제품 개발 

박 대표는 1997년 대농중공업이 부도나자 그 해 11월 서울 신도림에 있는 한 주차장의 한편에 천막을 치고 친구 1명과 함께 대동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여기서 다시 암반 분쇄기의 국산화 개발을 시도한다. 일본의 진동 해머를 벤치마킹해 순수 독자적인 기술로 제품 효율을 30% 이상 향상시킨 진동 해머를 국산화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국산화에 성공하자 그에게 행운도 따랐다. IMF 여파로 환율이 2배 가까이 폭등해 대당 5,000만원 정도인 수입제품 가격이 1억원으로 올랐다. 박 대표가 국산화 한 진동 해머가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일념으로 연구개발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두 번째로 태어난 것이 진동 리퍼다. 지난 2004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진동리퍼는 진동발생장치에 리퍼를 부착, 진동을 가해 암반을 깨는 저소음‧고효율 암반 파쇄장비로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개발된 제품이다. 


“어느 날 건설현장에서 한 작업자가 ‘해머에 바이브레이션을 주듯이 진동을 주면 더 효율적일 것 같지 않아?’라고 하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죠. 진동으로 돌을 깬다? 그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주변에서 ‘진동으로 어떻게 돌을 깨느냐’는 비웃음을 샀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테스트를 거쳐 세계 최초로 진동 리퍼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독보적인 진동 리퍼로 남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능과 품질을 업그레이드 해나갔다. 지난 2010년 유럽의 한 글로벌 중장비 업체가 박 대표가 개발한 제품을 참고한 진동 리퍼를 개발, 출시하며 자금력을 앞세워 시장을 무섭게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세계 최초로 개발한 진동 리퍼를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기능이 더욱 향상된 진동 리퍼를 개발하기로 했다. 진동을 주면서 제대로 긁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술경쟁력의 관건이었다. 지난 2012년 정부연구과제로 연구개발에 나선 결과 2015년에 85dB 이하의 최소 소음, 270kg/cm²의 최고 압력, 40Hz 이상의 최고 작동주파수를 자랑하는 진동 리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개발에 나선 지 10여 년 만에 세계 어느 기업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진동 리퍼(30여 개국 특허출원)를 완성한 것이다. 


“국내외에서 진동 로퍼를 개발한 업체들이 있지만 이들 업체와는 달리 우리 회사의 진동 리퍼는 진동을 주는 동시에 끌어당기는 작업까지 가능한 것이 차별화 된 경쟁력입니다.” 


진동 리퍼는 해외에 2013년 31대, 2014년 35대, 2015년 75대를 판매해 15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신 개념 제품을 개발했다. 굴삭기 유압 붐 끝에 장착해 브레이커나 리퍼, 버킷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잡아주는 ‘브리오 댐퍼’가 바로 그 것. 러시아를 방문하던 중 한 바이어가 진동 발생 시 충격까지 잡아주는 장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충격을 90% 이상 완화하는 브리오 댐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이 제품으로 장영실상, 특허대상을 수상하는 한편 42개국에 특허출원을 한 상태다. 일본 히타치로부터 이 제품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급 요청을 받고 협의 중이다. 현재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신뢰성 검증을 받고 있는 데 여기서 내구성이 검증되면 대량 생산체제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처럼 2~3년에 한 번씩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 출시한다는 게 박 대표의 목표다. 이를 위해 매출의 10% 이상은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연구 인력도 직원 35명 중 11명이나 된다. 


“사실 제조업이 상당히 힘들어요. 신제품을 개발, 출시하면 금방 국내외 업체들이 우리 제품을 모방한 제품을 내놓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정면 돌파합니다. 그만큼 기술력에 자신이 있고 특허로 무장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제품이 우수하기 때문에 카피 제품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박 대표가 진동 해머를 처음 개발, 출시한 지 얼마 안 돼서 한 업체가 자사 제품을 모방했다며 특허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특허를 입증하기 위해 변리사를 찾아갔지만 거액의 변리비용을 투자할 여력이 없어 혼자서 1년 이상 특허를 공부해 변리사를 쓰지 않고 소송에서 이겼다. 이때부터 그는 특허에 눈이 떠 지금까지도 회사의 특허업무는 직접 챙길 정도로 특허 전문가가 됐다. 


“이때가 위기였지만 기회이기도 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소송을 제기한 업체에 고맙기도 해요.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됐으니까요.” 


이미 국내 시장 90% 이상을 점유한 대동이엔지는 매출액의 90~95%가 50여 개국 수출에서 나오는 수출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9년까지 OEM 방식으로 수출하다가 2010년부터는 수출용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수출을 시작해 2014년 5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동 리퍼도 처음엔 OEM으로 수출(일본 히타치)을 시작한 후 자체 브랜드로 수출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대동이엔지는 법인으로 전환한 2010년 26억원, 2011년 38억원, 2012년 65억원, 2013년 80억원, 2014년 10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5년은 최악의 건설경기로 8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올해는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7년에는 진동 리퍼의 성장세에 힘입어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매출을 늘릴 수 있지만 전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도자기를 만든 후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보이면 깨부수고 다시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처럼 되고 싶어요. 오로지 이 세상에 전혀 없는 혁신적인 1등 명품 제품만을 만들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또 건설기계의 종주국인 일본과 독일에서 우리의 제품이 명성을 얻는 것도 저의 목표입니다.” 




일학습병행제 참여, 산학협력 통해 인력 채용 

박 대표는 법인으로 전환한 2010년 직원 5명에서 현재는 35명으로 7배의 고용을 창출했다. 일학습병행제 참여뿐만 아니라 산학협력을 체결한 대진대학교의 산업인턴 지원사업을 통해서도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하대학교와 산학협력을 체결할 예정이다. 그는 직원이 회사의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자기계발비와 근로자 본인의 대학 및 대학원 학자금 지원, 기숙사 제공 등 직원들의 복지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파주시 ‘교남시냇가’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봉사활동과 기금 지원은 물론 장애인보호작업장 동산식품과 협약을 맺고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안 되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현장에 해답이 있다.’박 대표가 후배 기술인과 청년 취업 준비생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라고 계속 되 뇌이면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 것을 끊임없이 실행하면 결국 이뤄지더라고요.”

강은영 기자 qboom@kidd.co.kr [산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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