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가 민영화되면 행복해질까" -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권의 하나로 꼽힌다. 


출처samsunglifeblogs.com


이제 전기 없는 삶이란 꿈 꾸기조차 어렵다.


현 정부에서도 에너지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보장해주는 에너지복지 대책을 만들기까지 했다. 전기를 공공서비스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공공서비스는 개인의 이윤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공공의 행복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전력체계가 비효율적이어서 효율화를 추구하겠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면 굳이 고집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력민영화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한전의 전력 판매부문을 민간에 개방하고, 단계적으로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전 독점 체제로 인해 전력 사정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력시장 개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판매부문의 개방일 뿐이지 민영화 추진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론들 역시 거리낌 없이 기사 제목에 전력 민영화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정부 계획에는 장기적으로 도매부문도 개방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발전 5개사와 한국수력원자력 주식 지분을 상장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분을 갖고 철저히 통제하겠다지만, 대주주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화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발전, 송배전, 판매 등 전력체계를 이루고 있는 3개 분야 중 2개가 민영화되는 셈이다. 게다가 송배전은 유지관리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 공적 관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가 공공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경쟁시장 체제로 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전력시장 개방을 통해 다른 공공 편익은 높아질 것인가. 이건 또 확실하지가 않다. 정부 역시 어떻게 가격효과가 발생할 것인지, 경영은 어떤 면에서 효율화가 되는 것인지 실증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막연하게 경쟁체계를 도입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효율화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기는 일반 상품과 달라서 동일 지역 내에서 다른 품질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소비자 선택권은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역별로 민영화된 독점 체제가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완전히 사라지고, 공공서비스 측면만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전력이 민영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의 상당수가 공공재를 위한 투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놓쳐선 안 된다.


누군가는 그렇다고 덩치만 커진 한전 독점 체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고 얘기한다. 사실 한전이 독점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영이 부실해지거나 지나치게 낮은 전기요금, 재생가능에너지체계로의 전환 난항 등 많은 폐해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정책적 의지만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노력 없이 모든 화살을 한전으로 쏟아대는 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심지어 한전마저 전력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연일 시장 개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공개된 한전 내부보고서에서는 전력 소매부문이 민영화될 경우 가격만 상승하고 서비스 질은 낮아진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에서마저 의견이 갈린 중차대한 사안을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건 용납되기 어렵다. 전력 민영화 논란은 2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갈등 요소가 많고, 한번 시작하면 다시 공영화하는 것은 그 몇 배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기가 민영화되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묻는 것이 첫 순서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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