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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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2016.02.22


주말이던 지난 토요일, 국민들은 또 한 차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서해안의 북한 지역인 장산곶 일대에서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포격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조치가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다시 남한에 대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나돌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포격 소식의 1보가 전해지면서 우선 떠올랐던 것이 연평도 포격사태였습니다. 북한군이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무려 100여 발의 포격을 가함으로써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연평도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던 텔레비전의 보도 장면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것도 벌써 만 5년이 지난 2010년 11월의 일입니다.

이번 포격으로 한때 백령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피준비 방송이 이뤄졌고 조업 선박에 대해서는 복귀 명령이 떨어졌지만 곧 잠잠해진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북한군의 해안포가 서너 발 정도 발사됐으나 포탄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지는 않았다고 하지요. 북한군이 우리 쪽을 향해 의도적으로 무력시위를 했다기보다는 자체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군 당국의 분석입니다. 북한군의 특이 동향도 아직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움직임에 대해 이처럼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다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경우 과거보다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입니다.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자 정치권 일각에서 “북한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며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발언이 제기됐던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국민들 가운데도 그렇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긴장 상태가 더 이어진다면 이런 우려대로 전쟁이 벌어질 것인가요.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관계는 과연 어떻게 되겠는지요. 최악의 사태를 미리부터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인 분단의 비극이지만 지금 여건이 결코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지난 주말 장산곶 포격 소리가 그냥 가라앉았다고 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적어도 연평도 사태보다는 훨씬 충돌 강도가 높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 뒤로도 북한의 도발로 인한 간헐적인 마찰이 있었고 우리 군은 그때마다 원점타격 등 대응 수준의 원칙을 높여 왔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폭발사건으로 남북한 사이의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합의에 극적인 타결을 이룸으로써 오히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소득까지 올렸지만 이번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진 셈입니다.

더 나아가 오산 기지에는 미 공군의 최정예 스텔스 전투기 2기가 배치되었고,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미사일의 배치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까지 불러오고 있으니, 한반도 정세가 자꾸 복잡하게 얽혀가는 양상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도 핵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까지 제기된다는 자체가 그만큼 위태로운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북한이 겉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내세워 왔으면서도 속으로는 핵 실험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 핵탄두를 실어 나를 장거리 미사일까지 개발하고 있었고, 더구나 핵미사일 발사 능력이 미국 본토까지 노릴 정도에 이르렀다니 쉽사리 물러설 기세가 아닙니다. 그동안 인도적 목적을 내세우며 북한을 지원했던 우리의 입장이 이적행위가 돼버린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면 계속 지원을 하면서 다독거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퍼주기 정책으로 인해 지금 결과가 초래됐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올바른 주장은 아닙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우리가 끌려다녔던 측면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북한의 비위나 맞추며 계속 눈치만 살피다간 어정쩡한 인질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개성공단 폐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북한이 핵개발에 이르렀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대 지도자들마다 서로 잘났다고 하면서 자신의 치적만 내세우기에 바빴던 결과입니다, 전쟁을 막는다는 것은 자기 임기 때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싹을 키웠다면 책임을 벗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부에 조언을 하는 관변 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에 이르러 책임 소재를 논하는 자체가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우리가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인식이 모든 국민 사이에 확고하다는 사실만큼은 전제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공멸이라는 결과에서는 마찬가지겠지요. 북한 역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해도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의 가슴에 서슴없이 총부리를 겨누었던 6·25전란에 이어 또다시 민족상잔이 벌어진다면 그런 민족이 과연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게스트칼럼 / 이정원

스마트폰은 카페인?


요즘 전철을 타고 가다가 보면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내가 탄 전철 칸을 둘러보니 눈앞에 보이는 사람 30여 명 가운데 20여 명이 스마트 폰을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카톡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상품을 검색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5년도 상반기 모바일 트렌드 보고서에서 글로벌 56개국 성인들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83%로 4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1위는 90.8%의 아랍에미리트, 2위는 87.7%의 싱가포르, 3위는 사우디아라비아로 86.1%의 보급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74%로 15위, 미국은 70.8%로 20위, 독일은 64.7%로 24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60%대 보급률의 일본이 나와 있지 않아 그 순위가 궁금합니다.

현대사회는 컴퓨터, 아이패드, 스마트폰 등 초고속 인터넷으로 엄청난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냅니다. 스마트폰은 전화기능은 물론 움직이는 백과사전이자 도서관이며 쇼핑센터가 되어 현대인의 비밀병기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갓 직장생활을 그만둔 퇴임자는 모르겠지만 65세 이상의 지공(지하철 공짜)족들에게도 스마트폰은 수다 떠는 이동식 찜질방이자 전천후 커피숍이 되기도 합니다. 신중년세대의 사랑방이자 대화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성들에게는 집안의 불만을 쏟아내는 충실한 펀치볼 기능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내 손안 만능 도깨비 상자입니다. 얼마나 다양한 기능입니까?

젊은이들은 각종 지식의 섭렵은 물론 문명의 이기로 그 다양한 기능을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집회의 인원 동원에 스마트폰 등 SNS가 앞장서고 있는 현상을 숱하게 보아오고 있습니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이들의 투표 참여율이 저조하여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어려워 보이자 SNS로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를 독려하여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뒷얘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칠포세대 등 자학적이고 분노 섞인 신조어 트렌드를 쏟아낸 것도 트위터, 스마트폰 등 SNS입니다. 엄청난 온라인 갈등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흔히 정치적인 위기에 몰렸을 적에 집권세력이 우민화 정책으로 각종 당근을 제시한 예를 동서고금에서 많이 보아 왔습니다. 멀리 고대 로마시대에는 소위 ‘빵과 서커스’로 시민들의 불평을 잠재우려 했고 현대에 와서는 ‘3S 정책’으로 국민들의 불만을 카타르시스해주려 했습니다. ‘3S 정책’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본과 군부 통치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온 ‘배기’ 정책의 통칭입니다.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의 머리글자를 딴 것입니다. 이제는 여기에 스마트폰(Smartphone)을 더하여 ‘4S’라는 신조어가 등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IT 강국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합니다.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생활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문명의 이기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에 비례하여 역기능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스마트폰이 보이는 야누스의 두 얼굴입니다.

첫째, 가족과 친지들 간의 대화 단절, 중독성, 건강악화를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 청소년들 사이에서 카따(카카오톡 왕따)등 학교폭력에 이용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스마트폰 소지율은 중학생 85.1%, 고등학생 83.7%, 초등학생 48.8%라고 합니다. 세 번째,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감퇴하여 디지털 치매를 초래합니다. 네 번째, 은밀하게 음란 동영상이나 성매매광고는 물론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독서를 안 하는 청맹과니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TV요, 밖에서는 스마트폰이라는 바보상자에 온 국민이 함몰돼 독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국적불명의 언어가 양산되어 표준어를 혼동하게 만듭니다.

IT 시대를 맞아 요즘 젊은들 사이에 ‘카페인’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자를 따서 만든 단어라고 합니다. 하루 종일 SNS에 매달리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서 커피 향에 취해 가듯 병적으로 ‘카페인’에 중독돼 가는 파장현상이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국가와 기성세대가 심각하게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테제입니다.

문명의 이기는 잘 쓰면 선(善)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毒)이 됩니다. 개구리가 서서히 뜨거워져 가는 물속에서 죽어 가듯이 스마트폰 중독이 국민을 어리석음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인간성을 상실한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마침 한국에 다니러 온 처조카에게 물어보니 미국은 스마트폰 중에서 카카오톡 기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요즘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또라이가 되지 말자”는 운동이 확산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만나면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현상이 안타까워 일어난 운동이랍니다. 시도 때도 없이 문자며, 카톡이며, 트위터며, 핸드폰을 집어달라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 덜 보기 운동’이 일어나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 붙어 있던 글이랍니다. “스마트폰을 끄면 ‘서울 대’(서울에 있는 대학) 가고, 스마트폰을 버리면 ‘서울대’ 간다.”

필자소개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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