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세컨드의 딸이 되고 싶은 이유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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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세컨드의 딸이 되고 싶은 이유

2016.02.19


요즘 여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것은 ‘재벌 세컨드의 딸’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원래는 재벌 2세가 되는 꿈을 가졌으나 아버지가 재벌이 될 가망이 없자 그 꿈을 물리고 이번에는 엄마에게 기대를 걸어 보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이 꿈이 왜 딸들만의 꿈이냐면 아들은 경영권 다툼에 놓이거나, 본인은 원치 않는데도 경영 전선에서 뛰느라 골이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딸은 오직 돈을 물 쓰듯 하면서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는 ‘옹주’의 신분을 즐기기만 하면 되니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혹은 태어날 운명치고 이보다 더 ‘짱’일 수는 없다는 거지요.

금수저, 흙수저 타령을 넘어 이제는 제 어미를 재벌의 첩으로 팔아서 보신을 하려나 본데,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재벌 첩이 되는 것이 아니니 재벌이 될 가망이 없는 아버지만큼이나 엄마도 심란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것도 우스갯소리라고 여대생들이 저희들끼리 둘러앉아 내뱉는 광경이 섬뜩하게 그려집니다. 작위적인 질문에 장난스러운 대답이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절반가량은 10억 원의 돈이 생긴다면 1년 정도 감옥에 가는 것은 감수하겠다는 말도 떠오릅니다. 그리고는 바보처럼 혼자 묻습니다. 10억 원이나 ‘꿀꺽’하고도 고작 1년만 ‘살고’ 나오는 범죄가 있기나 한 걸까, 아무리 웃자고 하는 소리라지만 돈이 생긴다면 부모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많아지는가 하고 말입니다.

시장에서 금덩이를 훔치다 잡혀 온 사람을 원님이, 어쩌자고 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에서, 그것도 대낮에 금덩이를 훔쳤냐고 문초를 하자 도둑이 이렇게 대답했다지요. "원님, 제 눈에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직 금덩이만 보였거든요."

이제 우리는 돈만 눈에 보이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도, 가족도, 사회도, 정의도, 양심도, 윤리도 보이지 않고 오직 돈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장자 양왕편에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상대를 침범했는데 한나라 소희후(昭僖侯)가 이 일로 근심을 하자 자화자(子華子)가 말합니다. " 만약 천하 사람들이 임금님께 이런 서약서를 냈다고 칩시다. 왼손으로 이것을 잡으면 오른손이 잘리고, 오른손으로 잡으면 왼손이 잘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잡는 사람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자, 임금님께서는그 서약서를 잡으시겠습니까?" 소희후(昭僖侯)가 잡지 않겠다고 말하자, 자화자(子華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두 팔은 천하보다 귀중하고, 몸은 두 팔보다 소중합니다. 지금 다투고 있는 땅은 천하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그런데 왜 임금님께서는 몸을 괴롭히고 생명을 파괴하면서까지 그까짓 땅을 가지려고 근심하십니까? "

이야기 속 교훈은 명백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령 갖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비현실적 방법으로 집착하게 되면 결국 삶 자체를 잃게 된다는 것을 팔다리를 잃는 것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누리고 싶어 하는 것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가지거나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더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소유의 다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질 수 있고, 가지고 싶은 항목이 늘어날수록 행복보다는 불행 쪽에 기울기가 더 쉽습니다. 물욕은 해소되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외발 짐승인 기(夔)는 발이 많은 지네를 부러워하고, 지네는 발이 없어도 배로 가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저절로 움직이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움직이지 않아도 가는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가지 않고도 당도해 있는 마음을 부러워했다지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누가 누구를 부러워하는 것이 부질없고 의미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입니다. 물욕으로 이내 어두워지는 눈조차 마음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나요.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지만 자족하는 마음, 아무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만은 부럽습니다. 아무리 우스갯소리라도 탐욕적인 돈에 관한 것은 듣기에 거북합니다. 더구나 젊은이들이 만드는, 부모를 빈정대고 업신여기는 섬뜩한 버전은 이제 그만 듣고 싶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호주에서 21년을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여성중앙, 자생한방병원, 메인 에이지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2016년 1월에 나온 인문 에세이집 『내 안에 개 있다』를 비롯해서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공저)』 등 5권의 책을 냈다.
블로그: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이메일: shinayo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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