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와 철도" - 한우진 교통평론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여 우리의 철도가 해야 할 일


  지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주된 흐름이라면 ‘고령화’를 들 수 있다. 인간의 수명 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하여 노인인구의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그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 고령화 추이 및 전망 ©서울시

                            

  2005년 UN의 인구통계자료집에 의하면 미국이 고령화사회(노인인구 비중 7%)에서 고령사회(14%)로 가는데 73년, 다시 초고령사회(20%)로 가는데 2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각각 24년(~1994년), 12년(~2006년)이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18년(~2018년)과 8년(~2026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렇듯 초고령 사회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오래지 않아 닥쳐올 우리의 가까운 미래인 것이다.


이 같은 고령화는 우리 사회 여러 곳에 영향을 미치며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철도도 물론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여 우리의 철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로 시설 측면에서의 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철도는 십 수 년 전만 해도 장애인과 교통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지만,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1998),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2006) 등이 잇달아 도입되며 철도역, 도시철도역 등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들이 많이 설치되었다. 이 같은 시설들은 장애인들 외에도 고령화 시대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노인 승객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승강편의시설을 한번 설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의 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보니 이들에 대한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하철 운영사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의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잦은 고장이 발생하여 이용률(utilization)이 떨어져서 예산낭비가 생기고 있다. 이 같은 고장을 막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줄 서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한 줄 서기가 정착되어 버린 바람에 바꾸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레일 역에서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들 ©코레일


또한 에스컬레이터는 안전에 취약하다. 주기적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을 하거나 승객이 실족하는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전동차로 인한 승객 부상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큰 문제다.


지하철 운영사에서는 이 같은 사고를 방지하고자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낮은 속도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터의 수송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계단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더니 계단 시절에는 없던 긴 줄이 발생해서 승객이 역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던 사당역 3번 출구 같은 사례도 있었다. 홍콩이나 모스크바 등 외국 지하철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빠르게 하여 수송력을 높임으로서 역내 혼잡도 줄이고 승객의 통행시간도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후 고령화시대를 대비하여 속도가 다양한 에스컬레이터를 함께 설치하든가, 시간대와 고령승객 이용 비율에 따라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가변적으로 조절하든가 하는 보다 지능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아울러 고령화시대에 철도역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중요한 시설이 될 것이므로, 앞으로는 지하철 운영사가 이 같은 시설을 통합적이고 지능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전동차의 사령실 같은 ‘승강편의시설 종합사령실’이 필요할 수 있다.


한편 현재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승객 중의 소수만 이용한다는 관점에서 설치되고 있으나, 앞으로 노인 인구 비중이 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것을 고려해서 설계 및 설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수송력이 높은 대형 엘리베이터, 고속 엘리베이터, 복층 엘리베이터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동선 설계도 중요하다. 지금의 승강편의시설은 일반인 동선에 비해 유리한 경우도 있고 불리한 경우도 있다. 엘리베이터가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 교통약자의 동선이 길어진다. 반대로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경로보다 엘리베이터 동선이 매우 유리한 경우도 있다(예: 서울도시철도 5-7호선 군자역 환승동선) 따라서 고령 승객 비율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일반인 동선과 승강편의시설 동선의 이용 비율이 조화와 균형을 갖도록 역 건축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쪽이 불편해지는 것은 옳지 않으며, 동선 설계에 원칙을 세우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누리로 열차는 고상홈과 저상홈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코레일


이밖에도 고령자가 철도 이용할 때, 젊은 층에 비해 근본적으로 안전에 취약하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철도 안전관리에 있어서 고령자에 대한 별도의 접근은 대체로 고려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철도 이용시 고령자의 안전에 대해 별도의 통계로 관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취약시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등의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계단은 고령자들에게 매우 취약한 곳이 되는데, 일반철도는 저상 플랫폼을 쓰고 있는 관계로 고령자가 열차 탑승시부터 취약시설에 노출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일반철도에도 고상플랫폼을 도입하거나, 반대로 저상열차를 도입하는 것을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 장거리 간선열차라면 어려워울지라도,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운행하는 중단거리 광역형 차량이라면 저상차량을 도입할 여지가 충분하다. (예: 스위스)


플랫폼을 전면적으로 고상화하기 어렵다면 차량 쪽을 저상, 고상 겸용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구조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출입문 앞 스텝 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벗어나야 한다.(예: 누리로) 차량의 앞쪽문은 고상으로 뒤쪽문은 저상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저상 및 고상 플랫폼에 대응 가능하다.


  새로운 철도를 건설할 때 고령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상 트램(노면전차)은 지상에서 계단 없이 올라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이다. 특히 고령운전자들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앞으로 점점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고령운전자들의 운전면허를 반납 받아 도로의 교통량을 줄이면서, 대신 대안 교통수단으로서 저상 노면전차를 도입하는 것은 고령화시대에 패키지로 실행할 수 있는 좋은 교통대책이다. 이밖에도 저심도 지하역(서울 우이신설선의 시점부 일부역), 저심도 철도(광주 2호선) 등 고령화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철도 시스템 모델이 꾸준히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저상 트램(노면전차)는 고령화 시대에 적절한 교통수단이다 ©한우진


고령자를 위한 안내체계(signage사이니지)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시설이다. 고령자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시력의 저하이다. 젊은 층을 기준으로 안내체계의 글자를 너무 작거나 복잡하게 만들면 고령자들은 이것을 읽을 수가 없게 된다. 글자보다는 픽토그램이나 삽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글자 크기는 더욱 크게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역명판 같은 대형 시설물을 글자 크기가 어느 정도 납득할 만 하지만, 승강장이나 대합실에 걸려있는 종합안내도상의 출구별 버스 번호와 행선지는 젊은 사람이 읽기에도 글자가 작을 정도이다. 글자는 작아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모든 정보를 넣으면 그만이라는 무신경과 태만이 이러한 비합리적인 안내체계가 만들어지는 원인이 된다. 꼭 필요한 정보만 골라 큼직하게 안내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고령화 시대에는 사이니지 디자인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한 고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로 고령화시대가 되면 철도의 수요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도시철도 이용시 첨두시간 이용률이 낮다. 젊은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에 비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혼잡한 첨두시간을 골라서 이용해야 할 이유도 적다. 노인들은 생활패턴상 아예 새벽 일찍 나서거나 아침 첨두시간이 끝난 뒤 도시철도를 자주 이용하며, 오후에도 퇴근 피크시간이 시작 되기 전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기도 한다. 고령화 시대가 진행된다면 이 같은 특성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승객의 세대별 철도 수요 특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고령화시대로 인하여 기존 첨두시간대에 주로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젊은 층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 승객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물론 반대로 도시철도 이용 승객 중 학생층 같은 젊은 층 비율은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고, 이들의 수요에 대응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최소의 비용으로 혼잡도를 개선하거나 차량을 신규 투입하는 등의 결정을 올바르게 내릴 수 있다.


보다 크게 본다면 통행수요자체가 감소할 것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증가율이 감소하고 있고, 고령화가 심해지면 급기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령화 시대를 앞서서 겪고 있는 옆 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더구나 고령화로 인해 인구의 활동성이 낮아지면 통행수요는 더욱 감소한다. 특히 고령화시대가 진행되면 직주근접이 가속화되므로 이것 역시 통행수요를 낮춘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철도는 낮아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운전시격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는 도시철도 열차의 승강장 대기시간을 길게 하므로 도시철도를 불편하게 만들어 수요를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전시격을 유지하되 편성량수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또한 수요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잦은 열차 운행으로 인하여 기관사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인운전 도입도 고려될 수 있다. 아울러 수요가 줄어들어 혼잡도가 낮아지면서, 서 있기 힘든 고령 승객까지 늘어난다면 차내의 좌석을 늘려 착석서비스를 본격 제공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한다.


고령화시대의 교통수요가 적은 지방의 교통수단으로 DRT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완주군, 정읍시

                               

한편 고령화시대가 가속화되면서 농촌지역에서도 노인 인구의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이 직접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철도역까지 와서 Park & Ride를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재 대중교통을 운영하기에는 수요밀도가 낮은 농촌지역에서는 DRT(Demand Response Transport 수요응답교통체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도입도 늘어나고 있다.


DRT는 수요자가 교통편을 요청하면 버스나 택시 등을 이용하여 이들 수요를 찾아가는 탄력적인 운행을 하는 준대중교통수단이다. 한편 이 같은 DRT를 이용하여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가까운 철도역까지 이동하여 철도를 탑승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국 고령화시대가 진행될수록 철도와 DRT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철도가 DRT와 어떻게 효율적으로 결합되어야 할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이렇듯 고령화시대에는 철도 수요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도시철도 운영사들은 이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데 예전처럼 장편성 롱시트 전동차를 사용한 대량수송에만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미래에는 과거와 달리, 여러 회사들의 경쟁을 유도하여 지자체 소유의 노선의 위탁운영을 맡기는 것이 일반화될 것이다. 결국 고령화시대에는 고령화에 제대로 대처하는 철도운영사만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도시-광역철도의 무임수송에 대한 사회적 논의이다. 이것은 워낙 첨예한 사안이라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본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각론은 차치하고 본 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원래 지하철 노인 무료승차 제도는 정치인에 의해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안이다. 하지만 본 제도가 지하철 운영사에게 큰 부담을 주고, 급기야 안전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할 정도로 갈수록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인들은 이리저리 눈치만 보면서 자기 임기 내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는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적으로 시작된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자해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책임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소신을 갖고 용기 있게 이 문제를 다룰 정치인을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고령화는 향후 우리사회를 관통할 매우 중요한 사회적 흐름이 될 것이다. 국가의 혈관이라고 불리는 중요 기반시설인 철도가 이것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오히려 고령화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고령화가 가져올 사회적인 충격을 최소화시키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


철도는 우리나라의 큰 변화기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었다. 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 그랬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던 80~90년대에 그랬으며, 2004년 고속철도 개통은 우리나라의 정보화를 가속시켰다. 이제 고령화시대라는 거대한 흐름을 맞이해 철도에게는 새로운 도전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한우진 (인터넷레일뉴스 칼럼니스트, 미래철도DB 운영자, 교통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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