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유정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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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유정

2014.09.03

세월호 참사의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사고의 진원지인 진도 팽목항처럼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지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다음은 전남 순천(인구 28만, 2013년 순천시 통계)일 거예요. 청해진해운 소유주 유병언 회장의 마지막 은신처로 알려졌고, 사체 또한 그곳에서 발견되었죠. 정갈한 도시 순천이 고향인 필자로서는 불미스런 일로 도시 이름이 오르내려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천시가 또다시 세인의 관심을 모은 것은 730 재보선을 통해서였어요. 인접 지역인 곡성과의 합동선거구였는데,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당선시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죠. 필자는 여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순천 시민의 선택으로 적지 않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야당의 본향(本鄕)에서 어렵사리 여당 후보가 당선됐으니 지역정서 혁파의 단초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난 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때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 생태수도 순천은 유력한 신문 설문조사에서 전국을 통틀어 ‘살기 좋은 10대 도시로 연거푸 뽑히기도 했어요.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를 양 날개로 거느린 항아리 모양의 내만(內灣)에 접한 순천은 전라남도 동남부의 요충에 위치한 교육문화관광의료역사 도시이며 맛깔스런 음식과 곡진한 정으로 이름난 고장이기도 합니다.

관광지를 더 수소문해봅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자리매김한 순천만(여자만은 순천만의 옛 이름) 갈대숲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주암호, 고인돌 유적지…. 이들은 단순한 관광자원이 아니라 교육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요, 역사와 전통의 얼이 깃든 랜드마크인 셈이지요.

항간에 회자되는 말로 “순천에서는 인물을, 여수에서는 돈을, 벌교에서는 주먹을 자랑 말라”는 우스개가 있어요. 순천 출신 사람들의 외모와 허우대가 훤칠한 데다 학식이 높음을 빗대어 칭찬하는 것일 거예요. 이에 걸맞게 교육문화도시 순천이 배출한 문화예술계 인사, 특히 문학인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현대 인물들로 한정하더라도, 소설가 조정래, 김승옥, 서정인, 출판인 윤형두, 동화작가 정채봉(작고) 등 시대를 떨어 울리는 초호화 라인업이에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인요한(John Linton) 소장입니다. 인 교수는 나눔과 봉사를 숙명으로 여기는 린튼가의 100여년에 걸친 한국 사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남녘의 소외된 이웃,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녘 동포들에게 의료봉사와 경제적 도움을 펼쳐왔지요. 그는 한국사회에 사랑과 관용,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공동체 정신의 실천을 역설합니다. 스스로 밝혔듯 그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향 순천이 자리한답니다. 자신의 원형을 키워준 고향 땅과 마을 사람들의 정에 감사하며 한국인의 일원임을 누구보다 감사해 하는 분이죠.

고향을 떠난 지 오래이지만, 공식적인 대화 중에도 자신도 모르는 새 구수하고 정감 있는 남도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와 화들짝 놀랍니다. 어릴 적 맛보았던 고들빼기와 파김치의 환상적인 조합, 꼬막무침, 서대회, ‘군평선이(금풍생어金豊生魚)’의 맛은 또 어떻고요. 집 나간 며느리(일설엔 바람난 과부)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군평선이 굽는 냄새라니요! 맛으로 이름 난 다른 생선 ‘전어(錢魚)’와 비교하면은요? “너는 좀 빠져 줄래?”

고향을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어요. 몇 년 전 고향을 찾았을 때 터미널을 빠져나오며 들었던 왁자지껄한 사투리의 향연. 사투리는 참 이상해요. 얼굴을 보지 않고도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묘한 것은, 낯익은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틈에서 달콤한 고립감을 느꼈다는 것이지요. 석연치 않은 이질감도 함께였던 것 같아요. 그 낯섦의 발원지가 ‘바로 나’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답니다. 나의 옷자락에 잿빛 도시의 삭막함이 묻어왔던 것이어서요.

그곳에 닿고 싶습니다. 순천만 갈대숲에. 궁륭상의 물길이 바이올린의 몸체 같은 호선(弧線)을 그리고 바람이 말발굽 소리를 내며 얼굴을 때리는 곳. 갈댓잎이 제병 훈련 때처럼 일제히 모로 눕고, 새끼를 등에 태운 가창오리가 고난도의 자맥질을 하며, 흑두루미 떼가 놀란 듯 하늘로 날아오르는 곳. 갯벌에는 퉁방울 짱뚱어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잠망경처럼 눈을 내미는 곳. 천지간에 갈대 울음 가득한데 검붉은 낙조는 애잔하게 날개를 펼칠 거예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고향을 절절히 그리는 것은 고향의 지리적 ‘풍경’ 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고 정지된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고향은 시공을 초월한 대상물로서 마음속 상징물이죠. 그러니 고향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것이지요. 보편적인 원형의 이미지로서 ‘어머니’에 버금가는 단어는 오직 ‘고향’ 이 있을 뿐인 것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제비고깔(미나리아재비과) Delphinium grandiflorum var. chinense

초원과 사막의 황량한 벌판만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알량한 상식을 지닌 채 찾은 몽골이었지만 산과 강이 있고 산림이 우거지고 온갖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몽골의 파란 하늘보다 더 진한 제비고깔 꽃!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우리나라 북부지방에 자란다는 도감 속의 꽃! 이번 몽골 트레킹에서 드디어 생면했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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