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도 복마전', MB정부 실세 개입 의혹

 

 

호남고속철도 <사진=뉴시스>

 

 

지난달 26일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제출됐다. 송 의원은 2년(2010∼2012년)간 철도부품 제작업체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억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같은 당 조현룡 의원에 이어 송 의원은 구속수사를 앞두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호남고속철도 공사에 개입해 업체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것에 있다. 호남고속철도 사업은 이미 수차례 '철피아'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바 있다.


모 전문건설사 대표 A씨와 지난 정권 실세와의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건설업계 전문가를 만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호남고속철도요? 문제 많죠. 자금 압박을 받았는지 원가를 절감한다고 여기저기서 부실이 일어난 걸로 알고 있어요. 교량이나 이런 부분들. 설계도 꽤 많이 바꿨더라고요. 발주처가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렇게 하진 않았을 거예요."

 

비리 투성이
호남고속철도

당시 기자가 입수한 문건에는 모두 5개 공구(호남고속철도 1-1, 2-3 등)의 원도급사와 도급금액, 공사기간, 설계변경내역 등이 명시돼 있었다.

 

5개 원도급사가 수주한 금액은 약 1조3200억원. 토공·철콘(철근과 콘크리트), 노반 공사 등을 포함한 호남고속철도 전체 공사비용은 지난해 말 기준 13조원으로 파악됐다. 이 엄청난 공사로 득을 봤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A씨는 이미 회사를 부도내고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무리한 저가입찰을 수년간 지속한 게 원인이었다. 전문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호남고속철도 공사에 참여했던 많은 중소·전문건설사들이 중간에 엎어졌다(부도를 맞았다)"고 말했다.

 

호남고속철도 사업은 길이 249.1km의 철도를 '오송∼익산∼광주송정'에 이어 목포까지 연결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이 중 2006년부터 시작된 KTX 1단계 사업(오송∼광주송정 구간)은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착공 당시엔 이름 있는 건설사들이 군침을 흘렸던 사업이지만 지금은 서로가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하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지난 7월2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28개 건설사에 대해 과징금 4355억원을 부과했다. 이는 건설업계 단일 담합 사건으로는 역대 가장 많은 액수다. 담합을 주도한 건설사 법인과 주요 임원들은 검찰에 고발된 상황이다.

 

공정위가 적발한 입찰 담합 규모는 3조5980억원이다. 1단계 사업으로 책정된 사업비가 8조3500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공사비의 절반 가까이를 담합한 셈이다.

 

공정위는 담합을 주도한 대형 건설사 7곳을 특정했다. 건설업계에서 이른바 '빅7'으로 불리는 대림산업·대우건설·삼성물산·SK건설·GS건설·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이 지목됐다.

 

이들은 2009년 6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2조2000억원대의 호남고속철도 노반공사 수주 과정에서 서로 공사를 '나눠먹기'로 공모했다. 13개 공구의 입찰이 진행되자 각 공구별로 낙찰예정업체가 선정됐다. 나머지 업체는 들러리로 세웠다. 두산중공업·포스코건설·한신공영 등 7개 건설사가 무늬만 경쟁입찰의 들러리가 돼 주기로 했다.

 

다른 공사구간 입찰도 사전 추첨으로 투찰률이 조작됐다. 가령 턴키방식으로 발주된 차량기지 공사를 희망했던 대림산업·대우건설·삼성물산은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 모여 '사다리 타기'로 업체를 추첨했다.

 

이른바 '짬짜미'로 불리는 대기업건설사들의 입찰담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할 만한 점은 유독 정부가 발주한 대형 건설·토목공사가 많았던 지난 정권에서 이 같은 폐해가 도드라졌다는 것이다.

 

대기업 주도
정부가 묵인

 

실제로 지난해에는 이명박정부 당시 건설사 간 담합 과정에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권 실세가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미경 의원실에서 나온 문건과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 과정에서 몇몇 건설본부에 특정 건설사를 선정하도록 한 것으로 의심된다.

 

먼저 한국철도시설공단 고위 관계자는 하급부서에 특정업체를 선정하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내려 받은 담당 부서는 각 건설사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연락을 받은 건설사 임직원들은 대전 소재 한 호텔에 모여 일부 공구 낙찰률을 78.5%로 정하는 등 담합했다. 담합에 가담한 건설사는 모두 8곳으로 이들이 따낸 공사비는 1조5697억원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8개 건설사가 담합한 78.5%의 낙찰률과 관련해 일각에선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다. MB정부의 실세가 개입해 '커미션'을 챙긴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 집계결과 모든 공구의 평균 낙찰률은 73.01%였다. 그러나 8개 건설사가 담합한 구간은 낙찰률이 78.52%로 평균보다 높았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한 국회출입기자는 "높은 낙찰률 때문에 상당한 공사비가 이익으로 남았을 테고, 남은 돈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담합의 배후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남고속철도 공사는 지난 이명박정부의 4대강 공사만큼이나 뒷탈이 많은 사업으로 꼽힌다. 이명박정부 임기 말 '몰아치기 공사'로 안전성에 '노란불'이 켜졌던 건 물론이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가 벌이고 있는 '철피아' 수사에서도 '호남고속철도'란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속된 말로 '해 먹을 것이 많았던 사업'이란 얘기다.

 

각종 비리 징후는 뚜렷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국철도시설공단이 특정업체에게 4600여억원에 달하는 사업을 몰아줬다"고 주장했다.

 

당시 심 의원은 "호남고속철도를 비롯해 국내 레일체결장치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AVT사가 제출한 탄성패드를 분석한 결과, 샘플 10개 가운데 5개가 하자보증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탄성패드는 고속철도의 충격을 흡수해 주는 레일체결장치의 핵심 부품이며, 문제가 있을 시 열차탈선 등의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13조 대형관급공사…대기업 무더기 담합 과징금
낙찰률 높여 비자금 조성?…누가 커미션 챙겼나
국회의원 등 줄줄이 구속 "진짜 몸통은 따로 있다"

 

지난 7월28일에는 350억원 상당의 호남고속철도 전력선 입찰 담합을 한 8개 전선회사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호남고속철도 전력선 입찰 과정에서 낙찰사, 들러리업체로 역할을 분담해 투찰가를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적발된 담합업체는 일진전기·LS전선·넥상스코리아·대한전선·호명케이블·TCT·KTC·가온전선 등이다.

 

이 중 일신전기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135억원 규모의 중국산 조가선(주 전력선 지탱 및 전력 공급 보조역할)을 수입해 자사 제품으로 속여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준 미달인 중국산 저가제품이 호남고속철도 공사에 사용된 것을 의미했다.

 

또 철도궤도 시공업체인 삼표이앤씨는 안정성에 일부 결함이 있는 사전제작형 콘크리트 궤도(PST) 공법을 호남고속철도(익산∼정읍, 7.8㎞) 구간에 적용토록 했다. PST는 철로 레일 아래 자갈 대신 미리 만든 콘크리트 패널을 까는 공법이다. 하지만 PST 공법은 열차 하중 및 고온에 약해 레일에 균열이 발생하거나 콘크리트가 휘어지는 등 고속철도에 적합하지 않은 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돈 천국
줄줄이 구속

 

그런데 문제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PST 공법을 승인한 사실에 있다. 이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갔음은 말할 나위 없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전 검사 성모씨는 삼표이앤씨로부터 PST 공법의 안정성 문제 등을 덮어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성씨는 감사원에서 건설·환경감사국장과 공직감찰본부장을 지낸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사진 왼쪽·구속 기소), 사전구속영장 청구 중인 송광호 의원

 

또 최근 AVT사로부터 납품 청탁과 함께 3억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도 호남고속철도 비리에 연루돼 있다.

 

그는 AVT사가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독점납품 계약을 맺자 AVT사를 대신해 김광재(사망)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게 3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던 김 전 이사장은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13일에는 한국철도시설공단 호남본부 궤도부장 이모씨와 철도건설 용역업체 KRTC 감리단장 김모씨가 구속됐다. 이들은 한 철도시설업체로부터 호남고속철도 공구 설계 변경 등 편의를 봐주는 대신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의 시설업체는 공사 지연에 따른 비용부담이 가중되자 콘크리트 타설 방법을 변경해 비용 감축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고속철도 비리와 관련한 구속 릴레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에는 성능 미달인 AVT사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적격 심사를 통과하게 해준 혐의로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 책임연구원 박모씨가 구속됐다.

 

앞서 AVT사는 KRRI 측에 의뢰한 성능시험에서 부품 변형 등의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재심사 과정에서 박씨가 만든 위조성적서로 적격 심사를 통과했고, 호남고속철도 독점납품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수주액은 450억원 규모로 전해졌다.

 

불량 레일에
위조성적서까지

 

이런 까닭에 호남고속철도의 안전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담합으로 얼룩진 기초공사와 불량 레일, 성능미달의 부품까지 '제2의 세월호'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는 "2017년 개통 예정인 호남고속철도가 건설 과정에서 담합과 부정, 비리, 부실시공으로 열차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며 "국토해양부는 비리와 부실 혐의를 철저히 밝혀내고 부실 시공된 불량자재들을 전면 교체하는 등 실효성 있는 안전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열차는 조그만 결함이나 문제로도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원가절감을 이유로 하도급업체들을 괴롭혔고, 끝내는 도산시켰다.

 

국고로 지출된 공사비는 담합으로 뻥튀기됐으며, 현직 국회의원마저 철도비리에 연루돼 구치소에 갇혔다. 정치권에 흘러간 정체불명의 자금은 출처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불행히도 '철피아'가 시작한 돈 먹는 레이스이자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머니게임'은 그 실체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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