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반지를 끼나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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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반지를 끼나

2014.08.29


질투· 저주· 살인· 전쟁· 패륜 등 온갖 죄악은 인간 세상 이전에 신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의 원조인 우라노스(Uranos)는 아들 크로노스(Kronos)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네가 나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지만, 그 벌로 너도 네 자식들 손에 죽으리라”라는 유언을 남긴 채. <吳澄子-'희랍 신화의 주인공들' 참조>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저주가 두려워 아내 레아(Rhea)가 자식을 낳는 족족 죽였습니다. 헤스티아(Hestia) 데미테르(Demeter) 헤라(Hera) 등 세 딸과 두 아들 하데스(Hades) 포세이돈(Poseidon)을 차례로 삼켜 먹어버렸습니다. 레아는 다시 임신을 하자 남편 몰래 크레타 섬의 깊숙한 동굴에서 해산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이름을 제우스(Zeus)라고 지었습니다.

레아는 아기를 한 목동의 집에 맡긴 뒤 큰 돌덩어리를 포대기에 싸안고 크로노스 왕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왕은 포대기에 싼 돌덩어리가 갓난아기인 줄 알고 통째로 삼켜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우스는 씩씩한 소년이 되어서야 어머니 레아의 새 시동이라고 속여 궁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왕도 그가 자기 아들인 줄 모르고 제우스를 총애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반역은 시작되었습니다. 레아와 제우스는 어느 날 신들이 마시는 술[神酒]을 만들어 구토제를 몰래 섞은 뒤 왕에게 대접했습니다. 크로노스는 구역질과 함께 뱃속에 든 모든 것을 토해 냈습니다. 맨 먼저 포대기에 싼 돌덩어리가 나왔고, 세 딸과 두 아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들은 신이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뱃속에 그대로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배에서 나온 젊은 신들은 제우스를 두목으로 삼아 크로노스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왕은 티탄(Titan)이라는 거인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제우스 측도 외눈박이 키클롭스(Cyclops)와 손이 백 개나 달린 괴물 부하들을 동원했습니다. 천둥이 치고 땅이 흔들리며 파도가 일어 천지가 진동하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제우스는 괴물 병사들을 올림포스 산으로 이끌고 가 거대한 바위를 티탄들에게 던지게 했습니다. 거인 족은 산이 무너지는 줄 알고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이때 젊은 목신(牧神) 판(Pan)이 기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겁에 질린 적들은 모두 도망쳐버렸습니다. 파닉(Panic: 공황상태, 영어 발음은 패닉)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골육상쟁 끝에 제우스는 신의 우두머리가 됐지만 갖은 횡포와 죄업을 저질렀습니다. 정처로 삼은 헤라를 비롯한 세 누이와 근친상간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여신, 요정, 시녀와 인간 왕국의 공주 등 모두 26명의 여인에게서 수십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 세계의 타락을 못마땅히 여겨 천벌을 내렸습니다.

제우스는 티탄 신족(神族)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창조물인 인간들이 신에게 제물을 제대로 바치지 않는다며 지상의 불을 모두 거두어 갔습니다. 또 장인(匠人) 신이 만든 절세미인 판도라(Pandora)를 내려보내 온갖 재앙과 악의 씨를 뿌렸습니다. 인간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거짓말을 일삼고 도둑질과 살인을 하며 신을 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제우스는 직접 인간의 타락상을 확인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난 악마와 가증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상을 홍수로 쓸어버리기로 했다”고 선언하고는 대홍수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Deucalion)과 그의 아내 피라(Pyrrha:판도라의 딸) 둘뿐이었습니다.

절멸 직전의 가혹한 징벌로부터 살아남은 인간은 오늘날 70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신화에 나오는 원죄를 하나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판도라의 황금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질병과 고통, 근심과 슬픔, 가난과 불행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방방곡곡 퍼진 때문입니다. 상자에 갇혀 극히 일부만 빠져나온 희망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항상 목마르게 합니다.

그것이 두렵냐고요? 인류를 몇 번 전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땅속에 감춰져 있고, 남북극 빙하가 녹아내리고, 오존층이 뚫려 지구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식량과 물 부족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수림은 인간에 의해 잠식되고, 아프리카 대륙은 에볼라라는 신종 질병에 패닉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업보로 또다시 천벌이 내리지 않을까 두렵지 않나요?

진흙과 빗물을 섞어 최초로 인간을 만든 프로메테우스는 신이 거둔 불씨를 훔쳐 도로 인간에게 전한 죄로 벌을 받았습니다. 제우스가  그를  코카사스 산의 거대한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게 했습니다.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Heracles)에 의해 구조된 그는 속죄의 뜻으로 돌멩이 하나를 채운 쇠고리를 영원히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시련을 기억하기 위해 작은 돌을 물린 반지를 끼고 다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인간은 반지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돌 대신 값비싼 보석 반지를. 신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의연하게 인간의 편에 섰던 프로메테우스의 의리와 희생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오히려 신의 경지를 넘보고 있으니….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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