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들이 뿔났다 [고영회]

www.freecolumn.co.kr

기술사들이 뿔났다

2014.08.14


기술사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한국기술사회(회장 엄익준)는 지난 7월 5일 국회 앞에서 1차, 7월 16일 역삼공원에서 2차 '국민안전 위협하는 건설기술진흥법 규탄 및 기술사법 선진화 촉구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기술사들은 관피아 출신 기술자들과 업계의 유착을 성토하고, 분야별 기술자가 설 자리를 말살하는 정부정책을 규탄했습니다. 이어 길거리를 행진하며 국민에게 인정기술자제도의 부당성을 알리고, 정부가 이공계 말살정책을 그만두고 엔지니어제도를 선진화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학경력 인정기술자제도는 건설기술진흥법(예전에는 건설기술관리법)으로 1995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이는 국가기술자격 취득 또는 학경력의 내용에 따라 기술자의 기술등급을 특고중초급기술자로 구분하는 제도입니다. 최근 시행령을 바꾸어 기술사 등급을 없앰으로써 특급기술자를 기술사와 같은 등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인정기술사제도가 부활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건설기술자 등급을 자격 위주로 분류했습니다. 예전 ‘기술사특급고급중급초급 5단계 분류’에서 기술자격이 없으면 학력경력으로는 초급 기술자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시행령을 고쳐 ‘건설기술자 역량지수’란 것을 만들고, 역량지수는 경력 40점+학력 20점+자격 40점으로 산출하고, 역량지수 점수에 따라 ‘특급고급중급초급 4등급’으로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기술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기술사도 특급에 들어가며 다른 특급과 같이 취급됩니다. 그러니 ‘인정기술사’를 만들어내는 제도입니다.

기술자 등급을 나눌 때, 경력과 학력을 반영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기술자는 각 기술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람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자질이 있음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기술자격은 그 자질을 확인하는 공정한 절차입니다. 반면에 경력 확인으로 객관성을 띠기 어렵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는 부품의 시험성적도도 위조하는 판입니다. 나아가 경력평가는 공무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불평등도 있습니다. ‘관피아’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건설기술진흥법의 기술자 등급은 기술자격자를 내팽개치는 정책이고, 그 꼭지점에 기술사가 있습니다.

지난온 길을 돌아보면 기술사들의 반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 기술사제도에는 3가지 중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최고 기술전문가 자격이라면서 ‘①고유 업무 영역이 없고, ②기술사 선발 시험을 (과학기술부가 아닌) 고용노동부가 주관하고, ③인정기술사 제도가 널리 퍼져 기술사 위상이 바닥’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 기술사들은 위 3가지 개선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노무현 대통령이 ‘기술사 제도 개선 특별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2006년 12월 학경력 인정기술사제도가 폐지됐고, 7월 17일 이전까지 ‘기술사특급고급중급초급 5단계 분류’로 운영됐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기술기술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현재 등급제가 들어왔고 7월 17일부터 시행됩니다. 그렇게 애써 고쳤는데, 허탈하게 그 옛날로 되돌아갔습니다.

현재 기술사제도에는 고유 업무영역도 없고, 기술사는 여전히 고용노동부가 뽑고 있어 기술사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판에, 겨우 바로잡았던 인정기술사제도가 되살아났으니 기술사들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급기야 머리띠를 매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산업 활동에 필요한 좋은 기술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이냐는 정책에 달려 있습니다. 전문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그 분야를 다룰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특히 안전, 보건, 환경 등 시민의 생명과 관련되는 분야일 때에 그 악영향은 심각합니다. 이공계 출신 대부분이 기술자로 활동합니다. 그들의 꿈은 기술사입니다. 지금 기술사 모습은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미래 희망입니다.

올바른 정책 바탕에서 좋은 기술자가 나옵니다. 기술분야 관피아라는 비판을 받은 인정기술자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기술분야의 세월호 사건’을 서서히 키워가는 게 아닐지 걱정됩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