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내려놓으며 [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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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내려놓으며

2014.08.11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온 지 벌써 20여 년이 되어갑니다.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지방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귀국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 캐나다 동부가 얼마나 추운 곳인지도 모르고 떠나왔습니다. 끝없이 쌓이는 눈과 추위에 적응하며 산 20여 년 동안 가끔 죄책감에 시달린 것이 있었는데 요사이 그 괴로움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날 무렵 큰아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할 시기로 대학을 가지 않거나 이민을 가지 않으면 한국군에 입대를 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미국 대학의 학비가 비싸 이민자에게 학비가 싼 캐나다 대학으로 진학시킬 목적이 우선 컸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미국이나 한국에서 큰아들이 대학을 다녀야 한다면 나와 함께 캐나다로의 이민이 불가했습니다. 그 당시 캐나다의 이민법 조건에는 부모가 캐나다로 이민을 할 때 자녀의 나이가 20세를 넘으면 그 자녀는 이민 자격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한국에 나와 있던 큰아들이 너무 놀기를 좋아한 데다 성실하게 대학에 다닐 것 같지 않아서 사실은 한국 군대를 보낼 생각도 했습니다. 한국군에 입대하여 한국남성으로서의 병역의무를 마치는 것도 바람직하고 또 군대에서 고생을 하면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할 때가 되면 큰아들은 나이 문제로 캐나다 이민 자격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인 막내아들과 함께 이곳으로의 이주가 불가능해서 가족이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군대를 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캐나다로 같이 떠나야 할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만 큰아들에게서 성실하게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함께 이민 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민 길은 내게는 후회스럽고 실망스런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약속을 했던 큰아들은 캐나다에 와서도 공부에 뜻이 있지 않고 노는 데 열중하여 기대 밖의 결과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계속 발생하는 문제로 나와 마찰을 자주 일으키게 되니 차라리 한국에서 대학과 군복무를 끝내고 그곳에서 살게 했다면 큰 아들의 장래가 더 나았지 않았을까, 또 나는 나대로 아들의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것 때문에 항상 대한민국에 죄를 지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게는 군대에서 죽은 두 명의 친척 젊은이가 있습니다. 한 명은 월남전에 장교로 참전했다가 사망한 조카입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청운의 뜻을 펼치려 할 즈음 월남에 해병대 장교로 파병되었다가 우리 집안에 깊은 상처를 주고 떠난 조카입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오빠 같았던 미남 조카의 해맑은 얼굴, 월남으로 떠나기 전날 밤 조카와 나누었던 정겨운 대화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은 형부의 동생으로 나와 자주 장난도 치곤 했던 사돈총각인데 군대에서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그 진상을 파헤치지도 못하고 군대에서 하는 말, 총알이 장전되지 않은 총인 줄 알고 군인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그만 총알이 발사되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상황과 설명이 의문투성이였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일반인으로서는 그 억울함을 어찌할 수 없는 사각지대, 군대에서 그렇다면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군대 28사단 윤 일병의 죽음으로 언론과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그 허무한 죽음 앞에서 나도 가슴이 아린데 윤 일병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괴롭습니다. 상습적인 구타와 인간이기를 포기한 저열하고 수치스러운 가혹행위에 이런 세상도 있는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구조의 손을 뻗칠 수 없는 군대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지요?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그곳이 민주국가 대한민국입니까? 그야말로 공산국가와 뭐가 다를까요? 이런 집단 폭행 치사는 살인행위입니다. 강력한 형량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디 윤 일병뿐이겠습니까? 또 다른 윤 일병이 부대마다 곳곳에서 고통 받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지옥을 왔다갔다 했을 윤 일병의 젊음과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습니다.

'진짜 사나이' 라는 연예인들의 군대 입대기와 훈련 프로를 즐겨보고 있는데 방송에 비치는 군대 생활은 규율과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젊은이들의 패기와 인내로 나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한창 젊음을 발산하며 즐겨야 할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 보였고 거기에 수십 년 전과 달리 군인들의 배급 물품이나 식사가 너무 훌륭해져서 방송을 보는 내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먹는 거라도 잘 먹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보이는 그게 모두가 아닌가 봅니다. 힘든 군대 생활에서도 훈훈한 인정이 보이던 방송 프로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고 젊은이들의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큰아들의 이민을 결정하였을 때, 군대에서 죽은 나의 친척들을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나 역시도 아들이 군대에 가서 죽임을 당할까봐 걱정했습니다. 독불장군인 데다 고집이 센 큰아들이 군대에 가서 적응을 못하여 맞아 죽지나 않을까, 싸우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민을 함으로써 큰아들이 한국의 병역의무를 마치지 못하고 떠나온 것에 대하여 나는 항상 떳떳하지 못했고 조국에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군대를 빼려고 의도적으로 이민을 한 것도 아니건만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윤 일병의 죽음을 보며 차라리 젊은이들을 때려서 죽이는 한국군대 안 보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일병의 영혼에게도 그의 부모에게도 죄송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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