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후섬의 여객기 추락사고 [허영섭]

 

 

source http://edition.cnn.com/2014/07/24/world/asia/taiwan-plane-crash/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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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후섬의 여객기 추락사고

2014.07.28


연이은 여객기 참사 소식에 지구촌이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되어 승객과 승무원 298명이 전원 사망했던 불과 열흘 전의 사고에 이어 대만 국내선 여객기와 알제리항공 여객기가 차례로 사고를 당했습니다. 말레이시아 항공으로서는 지난 3월 소속 여객기가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도중 실종된 사고에 이어 불운이 겹친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만 여객기 사고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대만을 찾는 우리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특히 사고가 일어난 펑후(澎湖)섬은 대만 본섬에서 서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진먼다오(金門島)나 마쭈다오(馬祖島)처럼 중국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고 자체는 단순합니다.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 공항을 이륙해 펑후섬 공항에 이른 푸싱(復興) 항공 여객기가 비상착륙을 시도하던 도중 곤두박질치면서 기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고로 승객 54명과 승무원 4명 등 58명 가운데 4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인 탑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마침 태풍 마트모가 대만을 관통한 직후여서 강풍과 함께 천둥, 번개가 몰아치던 상황이었습니다. 시간당 60mm의 폭우가 쏟아졌고, 가시거리도 240m에 불과했다고 하지요. 일단은 악천후에 원인을 돌리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50분 정도 공항 상공에서 순회하다가 관제탑과 교신이 끊어진 끝에 일어난 사고였기에 블랙박스를 판독해 본 뒤에야 자세한 원인이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고로 안타까운 사연들도 전해졌습니다. 여든두 살의 고령에도 대만의 전통 목공건축 분야에서 독보적 솜씨를 발휘하던 예건창(葉根壯)이 사고기에 탑승했다가 목숨을 잃었으며, 휴가를 마치고 귀환하던 소방관이 동료 소방관들에 의해 시신이 수습됨으로써 눈물을 더했습니다. 대만대학에 연수를 왔던 프랑스 여대생 2명이 관광차 펑후를 방문하려다 사고를 당했는가 하면 숨진 승무원 한 명은 한국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고도 합니다.

사고가 나자 중국의 양안관계 협상창구인 해협관계협회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에게 보내는 애도의 뜻과 함께 구조협력 의사를 전달했던 것도 지켜볼 만한 대목이었습니다. 양안의 긴장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던 199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펑후열도가 중국의 무력도발 위협에 대비해 상륙저지 훈련이 실시되어 왔던 현장이라는 점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펑후열도는 9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주민들이 거주하는 섬은 펑후, 바이샤(白沙), 시유(西嶼) 등 20개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인구는 모두 12만여 명에 이르러 지금은 대학교도 하나 세워져 있을 정도입니다. 주민들의 주거환경은 오히려 메마른 편이지만 화산 지형과 주변의 산호초로 인해 눈길을 끄는 곳입니다. 열도 곳곳에 돌출한 현무암 기둥이나 해안 절벽과 동굴, 그리고 파도에 침식된 용암 대지가 절경을 이루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장제스(蔣介石) 총통 당시이던 1971년 펑후와 주변 섬을 연결하는 5.5km 길이의 동양에서는 가장 긴 다리가 놓여졌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양 생태계는 더없이 다양한 편입니다. 철새들의 서식지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요. 대만에는 현재 국립공원이 여덟 군데 지정되어 있는데, 이 일대가 아홉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는 10월부터 정식 개장토록 예정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겠지요.

미국의 로열 캐리비언 회사가 크루즈 정박을 위해 펑후섬에 부두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겁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2년 뒤부터는 로열 캐리비언이 자랑하는 ‘바다의 오아시스(Oasis of the Seas)’호가 펑후에 정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두가 확장되면 펑후 공항의 활주로가 짧아 현재 정원 70~80명 정도의 소형 비행기만 운행이 가능한 관광상의 애로사항이 상당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번 여객기 추락사고는 항공안전이나 관광과 관련된 문제를 떠나서도 한국과 대만이 서로 얽혀 있는 역사의 접점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도 생각됩니다. 1894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맞붙은 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함으로써 이듬해의 시모노세키(下關) 조약으로 대만과 펑후열도가 일본 식민지로 할양됐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만으로서는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셈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청일전쟁 발발 120주년을 보낸 마당이기도 합니다.

일본 식민지배 시절 펑후열도는 전략적 요충이었습니다. 등대가 세워지고 도로가 닦였으며 우체국과 전화국이 설치된 것이 그때의 일이었습니다. 1923년 당시 히로히토(裕仁) 왕세자가 직접 이곳까지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제국주의 일본이 이 일대에 쏟았던 관심의 정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식물표본 수집에 취미가 많았던 히로히토의 개인적인 취향을 말해주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도 하겠지요.

한 가지 덧붙일 만한 것은 대만이 세계무역기구(WTO)에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지역’이라는 명칭으로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에서는 ‘차이니즈 타이베이(中華臺北)’라는 명칭을 쓰면서도 이처럼 관할지역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국호를 표시해야 하는 게 또한 대만의 처지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지금 현실에서나 펑후열도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여객기 사고는 앞으로 펑후열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지켜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냈다. '법이 서야 나라가 선다',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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