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변소, 싸 재낀 댓글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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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변소, 싸 재낀  댓글

2014.07.17


이달 말이면 한국에 다시 온 지 꼭 1년이 됩니다. 친정붙이를 비롯해서 자상하고 따뜻한 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연착륙한 안도감이 큽니다.

그럼에도 20년 넘게  한국을 떠나 있던 저로서는 격세지감에서 오는 ‘낯섦’을 어쩌지 못한 채 속된 말로 두어 차례 ‘멘붕’을 경험했고 황당한 일도 몇 번 겪었습니다. 그저 고국에 되돌아 온 신고식이려니 합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어느 여성지에 연재하고 있는 글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가는 바람에 매달 호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뉴스에 올랐다고 멋 모르고 좋아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에 대한 저 나름의 성찰을 에세이 겸 칼럼 형식으로 써가고 있는데, 글의 일차적 기능이 그렇듯 이 글도 저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글이 나가기 무섭게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떼에게 던져진 먹잇감마냥 악의와 적의, 분노와 증오의 독이 선지피처럼 뚝뚝 듯는, 이른바 악성 댓글, 악플러들에게 잔인하게 물어 뜯기고 갈갈이 해체되고 있으니 치유는커녕 ‘뼈도 못 추릴’ 상황에 매번 처합니다.  

 이대 나온 년이라는 둥, 엄청 못 생겼을 거라는 둥, 팔자 편해서 요강에 똥 싼다는 둥, 밑도 끝도 없는 해괴한 말과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 깔기듯 제 글 밑에 달아댑니다.

글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 없는 악에 받친 소리들, 심지어 “네 글 따위는 읽지도 않았다, 그러나 보아하니…” 라는 식으로 매도할 정도이니 백 개가 넘는 욕설을 듣고 나면 예전 ‘오마이 뉴스’나 ‘일베’ 등에서 ‘꾸준히’ ‘맷집’을 불려왔건만 그럼에도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입니다.
인터넷 댓글로 욕을 먹은 지도 어언 15년, 독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갑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자위 수준을 넘은 지는 이미 오래 전입니다.  

오죽하면  ‘댓글을 쓴다’고 하지 않고 ‘댓글을 싼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사회에 대한 욕구 불만 해소와 감정 배설을 위한 '변소' 역할을 하는 곳이 포털 사이트인가 봅니다.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 눈을 희번덕대며 온라인 광장을 헤매던 무리들에게 제 글이 재수없게 걸려든 형국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온라인 상의 감정 배설 장소라도 있으니 한국 사회가 이 정도라도 일상을 유지하는가 싶기도 합니다.

“변소'가 뭐냐, 똥을 한 곳에 모아두는 곳이잖아. 변소가 없다면 똥을 아무 데나 쌀 거 아냐.  감정도 마찬가진 거야. 좌절된 욕구 불만을 세상과 타인을 향해 쏟아 부을 데가 있어야 하는 거지. 이유 모를 미움과 원망과 울분과 분노와 불만과 시기와 질투 등등 부정적 감정과 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데 그걸 어디다 배설해얄 거 아니냐고. 똥오줌을 참으면 병이 되듯이. 그러니 ‘감정 변소’가 필요한 거야. 애꿎게도 내 글은 '밑씻개'인 거고. 난 그래서 '포털 변소'라고 부르는 거야.”    

제 블로그에 ‘내 편’ 들어줄 사람들에게 이런 글을 올려 ‘똥물 튄 기분’을 씻어내자니 아니나 다를까 “똥은 밥이다. 차라리 토사물이라고 해라,  똥이라는 말로도 아깝다.”는 응원까지 있었습니다.  

“제 글에 모든 사람이 공감을 할 수는 물론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생명 가진 것이라면 예외 없이 본질적 고통을 갖고 있다는 것, 그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시대에 살면서 너남없이 이미지 관리에 매달리다 보니 존재의 본질과 자신의 본래적 모습, 내면적 성찰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에 사로잡혀서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점점 잃어가고,  어쩌면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 자기 마음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릅니다. 자기 내면의 뜰이 황폐한 사람이 다른 이의  뜰을 돌아보고 배려하기는 힘든 법이니까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줄 알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상대에게도 너그럽습니다. “

블로그의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며 한국 생활 1년을 다시 돌아봅니다.  마침 오늘은 22년 전, 어린 것을 들쳐 업고 시드니로 이민을 떠났던 날입니다.
어쩌다 보니 다시 맨 몸뚱이로 돌아와 무지막지한 봉변을 당하고 있지만  내 글이 ‘공공의 먹잇감’ 내지는 유독 화가 난 사람들의 '화풀잇감'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고국에서의 몫이라 여기며 달게 받겠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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