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권하는 사회?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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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권하는 사회?

2014.07.16


10년도 더 전부터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게 좀 천천히 살자는 세태를 반영한 듯합니다. 그것이 진화하여 요즘에는 여기저기서 ‘힐링’, ‘슬로시티’가 식상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행기나 차를 오래 타고 떼를 지어 찾아가는 슬로시티는 탄소 마일리지를 높여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일이니 별로 권장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주말에 경인운하 아라뱃길(정동진로)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한가로운 편도 1차선 10여 킬로미터의 운하 옆 잔디에 군데군데 울긋불긋한 텐트를 치고 아라벳길을 정원 삼아 야영하는 풍경이 부쩍 늘어난 게 드러납니다. 부럽기도 해서 아내에게 “나도 텐트 하나 살까”하면 펄쩍 뛰며 “캠핑카는 못 사지?”하며 비꼽니다. 최근 아파트에 캠핑카 한 대가 서 있는 게 꽤나 부러운 모양입니다. 안을 들여다보고 빌려도 주느냐고 물었더니 “자가용”이라고 했답니다.

슬로시티를 찾는 게 팔자 좋은 사람들만의 여유는 아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늘 부지런한 ‘패스트시티 주민’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은 별을 보고 움직이니 전국에서 물건을 떼러 상인들이 밀려옵니다. 입에 냄새가 나고 발에 불이 붙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밤 새워 일하는 여러 종합병원 응급실의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죠.

며칠 전에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에 갔습니다. 8시부터 영업하는 줄 알았는데 4월부터 10시로 늦춰졌다는 안내였습니다. 이 회사는 2012년 가을 초대형마트(SSM)의 영업제한 조례에 맞서 규제할 법이 없다며 영업을 강행하며 맞서다가 결국 법과 조례가 바뀌면서 정기 휴무를 도입하고 개점시간도 늦추게 되었습니다.

SSM규제는 영세상과 상생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지만 먹이를 일찍 찾아야 하는 ‘얼리 버드’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대책이 안 보입니다. 더욱이 ‘코스트코’는 최종 소비자 고객만이 아니라 코스트코에서 파는 물건을 뗴러 오는 상인들도 기업회원이 되어 많이 찾죠.

얼마 전 서울역을 지나다가 16만8,000원 가격이 붙은 구두를 대폭 할인한 7만6,000원인가에 한 켤레 샀습니다, 굽이 바깥쪽으로 너무 닳아 발목을 접질릴 것 같아 한 6년 신은 구두를 벗어 던진 것이죠.  마트 본점의 문은 닫혀 있었는데 밖에서 구두를 팔고 있었습니다.  여행에는 신발이 중요하니까요. 놀랍게도 마트 개점시간은 오전 11시라니 해가 중천에 떠야 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벽부터 각종 열차를 타고 길 떠나는 사람들이 편리할 까닭이 없죠. 이런 최고의 상권에서 누가 11시부터 영업하고 싶겠습니까?

사회는 언제나 굴러가야 하니 장을 일찍 볼 사람은 서두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에 어떤 물건이 화급한지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알겠습니까, 요즘 살인교사 혐의로 경악의 초점인 김형식 서울시 시의원이 알겠습니까? 대형점이 개점 시간을 늦춘다고 영세상들이 가게 문을 일찍 여는 것도 아니고 대형점이 늦게 열면 기다려서 산다는 사람도 있는 판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영업시간 단축으로 일요일은 생지옥’이라는 아우성이 일고 있는데 규제 실적을 자랑하고 싶은 행정편의주의 발상이 아닌가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영업시간 단축으로 인한 구매자의 불편을 딛고 골목상권이 얼마나 살아났는지 매출액 증가를 수치로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악평등이라고 볼 수 있는 기계적인 사고가 한국경제를 질척거리게 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의 하나가 아닌지 걱정됩니다. 입으로는 서민경제를 되뇌고 민생을 외치지만 그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4시간을 목표로 잘 돌아가는 사회는 교대할 인력이 더 필요해 직원을 더 뽑아 실업률을 떨어트리는 효과가 있죠. 영업시간은 억지로 짜맞출 게 아니라 영세 상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도와줘야죠.

마치 엘레나 이신바예바 같은 정상급 장대높이뛰기 선수에게 '너는 너무 높이 뛰니까 연습장에 일찍 오면 안돼'라고 강요하는 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고객이 구입한 물건에 불만이면 무조건 환불해주는 이 코스트코는 직전 회계연도 매출이 2.5조원을 넘었고 1년 순익이 1,000억원을 넘은 지는 여러 해가 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는 회사는 조금이라도 ‘배 아파할 게’ 아니라 철저히 ‘벤치마킹’해야죠. 우리나라 기업도 그렇게 글로벌 유통 기업으로 키울 생각을 해야지 억누른다고 낙후한 우리 유통업이 해결될 리는 없습니다.

그날도 경인고속도로 끝에서 영등포구 양평동 매장으로 이동하는데 20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돈을 갖다 바치려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차량들이 늘 줄을 길게 서는 것이죠. ‘얼마라도 싸니까.’ 모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호주산 쇠고기를 좀 많이 사는 바람에 39만원을 썼습니다. '재화와 용역의 공급 속도를 높여라.' 대형 병원의 MRI 같은 초고가 기계건, 혹은 상품이건, 사람의 생각이건, 유통 속도를 높이는 것이 경제발전의 지름길이 아닐까? 마트를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왜솜다리 (국화과) Leontopodium japonicum

한여름 삼복더위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설악의 귀때기청봉 너덜길을 지나 대승령 오르는 바위길 목에서 만난 왜솜다리입니다. 한국 자생 에델바이스(Edelweiss)라고도 합니다. 한계령 삼거리에서 대청봉 반대방향인 이 길은 칼날 같은 바윗돌이 제멋대로 들쭉날쭉 솟아올라 등산로도 이어지지 않아 밧줄로 방향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지루한 귀때기청봉 너덜길을 지나야 합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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