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행기는 안전합니까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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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행기는 안전합니까

2014.07.15


며칠 전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겨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강화도 상공에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구름을 뚫고 날아올랐습니다.

그늘진 왼쪽 창가에 앉은 나는 창문을 통해 구름과 산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륙 후 약 20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햇볕이 얼굴에 내려쬐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비행한다면 내 좌석은 계속 그늘지고 있어야 합니다. 창밖을 자세히 보니 비행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어조와 첫마디가 평상시 내보내는 기장의 안내 방송과 달랐습니다. 곧 이어 나오는 방송 내용은 순간적으로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비행기에 기술적인 이상이 발견되어 김포공항으로 회항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김포까지 20분쯤 걸린다는 얘기만 내보내고 안내 방송은 끝났습니다.

기내는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비행기가 조용히 날고 있지만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자 두려움과 안도가 간단없이 교차했습니다. 옆 좌석 승객이 “어떤 이상이냐?”고 스튜어디스에게 묻자 여승무원은 "그건 저희가 알 수 없고요,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연료를 다 공중에 버려야 하니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위험을 느낄 때는 사람의 오감과 육감이 모두 작동하는 것인가 봅니다. 비행기는 조용히 날고 있고, 객실 승무원들은 부지런히 그러나 차분히 승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보며 아주 위기 상황은 아닌가보다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창밖으로 비행기 날개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날개에 붙은 엔진은 돌고 있고, 날개도 겉보기에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른 쪽은 어떤가 하는 걱정도 생겼지만 이내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들 공중에서 별도리가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가항력의 무력감이 몸을 휘감는 것 같았습니다.

회항하는 20여 분이 그렇게 더디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비행기 속도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밖에서 갑자기 아팠을 경우 집이나 응급실까지 가는 동안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자동차를 천천히 모는 것과 같이 비행기도 조심조심 그런 비행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되니, 더욱 고장 난 비행기에 타고 가는 것이 스트레스 덩어리였습니다.

비행기가 곧 착륙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안도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혹시 그 고장이란 게 랜딩기어의 이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승객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상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행기는 공항 활주로를 향해 돌진했고 ‘덜컹’하며 착륙했습니다. 승객들이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김포공항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서너 대의 소방차가 비상등을 깜빡거리며 램프에 대기 중인 광경을 보고 내가 탄 비행기의 착륙 이상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자주 타는 편이라 가끔 기상 상황 때문에 비행기가 회항하거나 오랜 시간 체공하는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공중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그럴 때도 막연한 불안감이 커집니다. 그러나 이상이 생긴 비행기를 타고 회항할 때의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생각났습니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에 중대한 고장이 생기면 기장이 관제사의 도움을 받으며 착륙하는 길 외에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고 비행기에서 승객을 구조하는 것은 영화 속 얘기일 뿐입니다. 같은 교통수단이지만 비행기와 배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행기 여행이 대중화된 지금, 항공 관련 공직자와 항공사 관계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이 비행기는 안전합니까."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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