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ㆍ광부를 생각하며 ‘외국인 근로자’를 보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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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ㆍ광부를 생각하며 ‘외국인 근로자’를 보다

2014.07.09


15 여 년 전 상황입니다. 국내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복지문제를 다루는 KBS TV공개토론장에서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근로자가 국내에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근무 및 생활환경의 문제점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자 국내 중소기업협회를 대표한다는 한 기업인이“왜 외국노동자의 복지 운운하며 임금을 올리게 하느냐?”고 볼멘소리로 항의성 코멘트를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KBS TV라는 공익매체에서 참으로 낯 뜨거운 장면을 보게 돼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더욱 놀라웠던 것은 공개토론회를 이끄는 사회자가 한마디 제재하는 코멘트 없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함께 이웃하고 있는 ‘소수인의 복지’에 대해 개념이 없는 큰 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이 우리 파독간호사ㆍ광부가 살아야 했던 독일 사회는 어떠했을까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파독간호사ㆍ광부가 독일 땅을 밟은 지 50년이 되는 해여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국내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60년대 당시 국내 삶의 질이 얼마나 열악하였는지를 다시 반추하기도 하면서, 멀고도 먼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하였을 독일 땅에서 우리 간호사ㆍ광부들이 얼마나 적응하기에 힘들었을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그들이 얼마나 빨리 유능하고 훌륭한 직능인으로 서 독일 사회에서 인정받고 적응하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감동이 있는 현대사의 일부인가 봅니다.

그런데 필자는 잠시 이런 역발상적 가상을 하여 봅니다. 우리 간호사나 광부가 독일 사회에서, 직장에서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에 따른 임금차별을 받았고, 건강보험을 비롯하여 제반 크고 작은 복지혜택에 차등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직장에서 보이지 않은 차별성이 전혀 없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개인 간의 다른 생활문화에서 비롯된 범주 안의 일입니다. 공익사회규범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큰 틀에서 우리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은 독일사회가 마련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은 물론 모든 사회복지혜택을 동급 동료와 동등하게 받고 누렸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한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1965년 당시 독일사회는 ‘한 가정에 차 한 대 갖기’시대가 막 시작되려던 때입니다. 당시 필자 주변의 지인들 중 자기 차를 소유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독일 남부지역 뮌헨에 사는 필자를 찾아 북부독일 탄광지역의 옛 친구가 동료들과 함께 4명이 승용차 한 대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태리로 여행가는 길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독일 땅을 밟은 지 약 1년 반 후 일이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직장에서 3주간의 휴가를 받아 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그들의 밝은 모습을 필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독일사회가 스스로 제정한 복지 관련 여러 규정들이 예외 없이 지켜지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 간호사나 광부도 독일 사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어떤 계기에 사사로운 개인적 갈등을 경험하고 마음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넘기고 있는 것은 독일사회가 큰 틀에서 그들을 법으로 감싸 안아 주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독 간호사나 광부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 스며 있는 독일 사회복지개념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 주변에는 이미 해외에서 온‘파한근로자’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공평 공정한 복지혜택을 주고 있을까 염려어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해서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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