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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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

2014.07.08


요즘 말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폭언과 욕설이 보통이고 학교에서까지 이런 현상이 팽배해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sns)에서는 요즘 폭언과 모욕적 발언의 도가 넘친다고 합니다.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는 물론 드라마에서도 과격하고 질 낮은 대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관객과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매일 대하는 언론에서도 거친 말, 과장된 말, 선동적인 말, 선정적인 말, 과격한 말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저질의 언어가 횡행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수준을 가늠케 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국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폭언과 저질 발언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가는 말이 좋아야 오는 말이 좋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며, 신언서판이란 말처럼 말이 사람의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요컨대, 말이 좋아야 사람 간의 관계가 좋고 나아가 사회가 건전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의 언어생활이 저질과 혼탁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욕설과 폭력적 언어, 저질 언어는 오랜 교육을 통해 습관화하여 바꾸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편 사회 담론을 이끄는 지식인, 교양인에게서도 언어의 혼탁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후자의 현상은 그대로 두기보다는 자꾸 지적하여 서로 깨닫게 함으로써 개선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봅니다.

지식인 사회에서 언어의 혼탁에 해당하는 말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남을 용납할 만한 도량을 의미하는 금도(襟度)라는 말은 “금도를 넘어서는 행동이다”라는 말처럼 틀리게 쓰이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한자의 금도, 예컨대 禁度나 禁道라는 말이 있는 듯이 말입니다. 또 명확하게 결말을 내지 않고 일시적으로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호도(糊塗)’가 ‘오도(誤導)’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여론을 오도하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여론 자체를 호도할 수는 없을 터인데 여론을 호도한다는 말이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여론을 오도하여 종내에는 진실이나 진상을 호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최근 총리 청문회 관련 사태에서는 한 방송사가 반대 여론을 유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또 관용어구인 옥석구분(玉石俱焚)은 사전적으로는 옥과 돌이 모두 불에 탄다는 것으로 선과 악이 구별 없이 함께 멸망한다는 뜻인데, 이제는 변용되어 옥과 석을 구분(區分)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혼효(混淆)돼 있는 옥과 석을 구분하기는 어려워도 혼합(混合)돼 있는 옥과 석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정도의 변용은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원래의 옥석구분이 무엇인지는 알고 써야 한다고 봅니다.

언론과 사회담론에서 자주 쓰는 말 중 자극적이거나 과격한 말의 예로 ‘혈세(血稅)’와 ‘끝장토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세금은 신성한 의무로서 국민이 국가에 내는 것인데 왜 ‘혈세’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먹고살기 힘들고 지친 백성들이 국가와 관리에게 바치는 세금을 가히 혈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시대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한 바에 따라 국가에 내는 세금을 혈세라고 하면 우선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은연중에 탈세를 불법으로 보기보다는 재산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그릇된 풍조를 정당화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가 세금으로 벌이는 사업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지 않는 습성을 길러줄지도 모릅니다.

‘끝장토론’이란 말도 사회담론을 과격하게 끌고 갈 우려가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정책은 단계별로 토론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모든 토론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토론이 끝나지 않으면 그때는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민주적 절차입니다. 논란이 많은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기 위해 보다 종합적이고 철저한 토론을 한다는 의미로 ‘끝장토론’이란 말을 쓰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좀 과격하게 들립니다. '끝장토론'에서 지면 상대편의 입장을 수용하기보다는 자기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해당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차라리 ‘최종 토론(final debate)’이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격한 말을 자주 쓸수록 담론이 피폐해지고 사회가 과격해질 것입니다.

이 외에 흔히 쓰는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이란 말도 그리 온전한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영어에서 번역된 말로서 ‘인적 발전’이라고 쓰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인간을 개발한다는 것에는 비인격적인 함의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교육이나 훈련 등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발전한다는 뜻으로 보면 ‘인적 발전’으로 바꾸어 쓰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영어의 ‘development’라는 말에 개발과 발전이란 두 가지 뜻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개발하기보다는 인간이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 문명의 진전과 인류의 발전이란 역사적 흐름에 조응한다고 보겠습니다.

영어와 관련된 용어로서 잘못 번역되어 쓰이는 말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가장 비근한 것 중 하나가 국가원수나 정부수반을 가리켜 ‘정상(頂上)’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가원수 급의 회의를 정상회의(summit meeting)라 하지만 국가원수를 정상(summit)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민주시대에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국가원수는 대통령(또는 왕)인 경우도 있고 실제로는 수상 또는 총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을 영어로 뭉뚱그려 표현하면 지도자(leader)일 뿐입니다. 어느 경우에도 최고위직 또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정상(summit)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위 공직자를 각하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었지만 정상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국가원수를 정상이라고 하면 국민은 모두 그 아래에 있다는 뜻이 되니 민주시대에 당치 않은 말이며 공직자이건 아니건 간에, 거꾸로 국민을 정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관(官)피아’를 비롯한 무슨 ‘피아(mafia 의 준말)’도 그렇습니다. 일일이 나열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런 식으로 언론에서 마구잡이로 표현하면 대한민국에서 마피아가 아닌 집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정부 부처를 넘어 법조, 정치는 물론 학계에까지 이 말이 번져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자조적이며 체념적인 현상입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마피아 공화국이란 뜻이 되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잘못된 관행을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버리면 오히려 진실이 호도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을 정확히 짚어 내어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행하는 말을 따라 일률적으로 특성화해 버리면 사안에 대한 접근이 피상적으로 흘러 본질을 놓치기가 십상입니다.

말이 잘못 쓰이고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담론과 소통이 제대로 되어 사회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든 용어들 외에도, 우리 사회의 담론을 혼탁하게 하고 소통을 어렵게 하는 말들이 적지 않을 것이므로 이를 바로잡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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