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낮은 자세를 잊지 않겠습니다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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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낮은 자세를 잊지 않겠습니다

2014.07.04


갑오(甲午)년도 벌써 반이 지났습니다. 사고와 사건으로 얼룩진 상반기였습니다. 나라에도 꿈찍한 일들이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90 평생 살아오면서, 비교적 건강에는 별 지장이 없어 입원을 하여 의사의 신세를 진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아스피린의 오용으로 위에 내출혈이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검사를 겸해 한  1주일 종합병원에 입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약 두 달 호된 건강의 시련을 겪으며, 한때 삶에 자신을 잃는 비참한 지경에까지 가는 경험을 가졌습니다. 평소 건강이 모든 행복의 요소 중 으뜸가는 것이라고,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지들에게 전도사처럼 강조해 온 자신(自身)이기에 그 충격은 컸습니다.

나이가 많아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라고 속으로 불평할 젊은이가 많을 모임에도, 백발의 초라한 모습으로 거의 매번 출석하는 ‘만용’을 범해 온 제가, 처음으로 공식 모임이나 개인적 회식 초대에 몇 번 불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문제는 4월 중순 어느 주말에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모 언론관계 세미나가 있은 다음 날엔 한 달에 한 번 있는 노인들의 노래방 모임이 있었습니다. 하루 네 시간씩 2차회까지 신나게 시간을 보낸 90 노구에 이변이 없을 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집에서는 아내가 시장에서 사온 계절의 수산물과 막걸리로 과식을 했습니다. 게다가 몇 년 사이 처음으로 가벼운 목감기에 걸렸습니다. 단골 의원에서 감기약만 짓고, 집에 있는 위장약으로 가볍게 생각한 배탈에 대처하였습니다.

이 감기와 배탈이 과거와는 달리 의외로 오래 가고, 감기는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심한 가래까지 동반하게 되니, 걱정을 한 아내와 아이에 떠밀려 동네에 있는 좀 큰 내과병원에 가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잠을 자다 가래로 호흡 곤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침실 공포증이 생겨 결국 이것이 심한 불면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불면증은 원인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특별히 병원 신세는 지지 않고, 다만 집에 있던 신경안정제와 아내가 한때 쓰던 수면제를 한 알씩 조심스레 사용하였습니다.

젊을 때 직장 일이나 개인 문제로 일시적인 불면증으로 시달린 일은 있지만, 나이가 든 요즘 이렇게 오래 불면증으로 고생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신경성 빈뇨증(頻尿症)과 식욕 감퇴까지 겹치게 되어 건강에 자신을 잃었습니다.

직장에 나가거나 정기적인 모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니, 졸음기가 약간 생기는 낮에 눈을 좀 붙이면 부족한 수면시간을 보충할 수 있을 텐데, 낮에 자면 밤에 잠들기가 더욱 어렵게 되지 않나 하는 불안 때문에, 이 낮잠도 마음 놓고 잘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바람에 불면증으로 오는 피로는 더욱 쌓이게 마련이었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분은 짐작하시겠지만, 긴 여름철 날이 차차 어두워지면 수면에 대한 걱정이 절로 떠올라 불면증 불안에 떠는 가슴을 더욱 위축시킵니다. 머릿속으로는 이런 것 전부를 계산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사슬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안타까움이 불면 증세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매일 밤 계속되었습니다.

이 불면증이 생기면서 제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20년 가까이 계속해 온 매일의 일과가 이 불규칙한 수면시간 때문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면증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지금에도, 이 일과의 완전 정상화는 아직 못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기침(起寢)부터 시작되는 스트레칭, 지압, 단전호흡, 컴퓨터 열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과를 아직 규칙적으로 복원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쉽게 생각합니다. 운동을 제대로 못하니 체력의 감퇴는 하루가 달랐습니다. 체중도 3킬로그램이 줄었고, 보행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이번 경험으로 뼈저리게 얻은 교훈은 인생에 대해 한층 더 겸허(謙虛)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 50’이 어느덧 ‘100세 시대’로 구호가 바뀐 요즘이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낮추고 잠시만이라도 오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엄숙한 진리를 다시 깨우쳤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활이 어느 정도 편리해지고 수명이 좀 연장되었지만, 인간은 언제나 조물주 앞에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표면상 불교도로 되어 있지만 깊은 신앙 공부를 해 본 적은 없고 다만 선남선녀로 평범하게 삶을 마치자는 생각만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순박한 마음가짐을 다시 다짐한 것이 이번 일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언제 갈지 아무도 예견 못합니다. 다만 수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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