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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을 생각할 때입니다

2014.06.27


지행합일(知行合一)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지행합일을 설명하면서 각기 다른 해법을 내려줍니다. 성격이 급한 자로(子路)가 “좋은 말씀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부모형제가 있는데 어찌 듣는 대로 바로 행하겠는가?”라고 반문하였고, 신중한 성격의 염유(孺)가 같은 질문을 하자 “들으면 곧 행해야 한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공서화(公西華)가 “왜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십니까?”하고 묻자, “자로는 지나치게 적극적이어서 물러서도록 한 것이고 염유는 소극적인 성격이라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로와 염유에게 같은 문제에 반대되는 처방을 내린 이유는 공자가 중용(中庸)의 도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는 중용을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상태’라고 정의를 내리고 항상 중용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서양에도 오래전부터 이 중용의 개념이 존재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덕(arete)는 과잉과 과소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 중간을 이루는 곳인 ‘메소테스(mesotes)’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공자는 양 극단의 중간 지점을 중용이라고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양 극단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중용, 즉 메소테스로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포, 분노, 욕망, 기쁨 등의 불쾌하거나 유쾌한 감정을 너무 잘 느끼는 것도 너무 느끼지 못하는 것도 좋지 않다. 이런 감정들을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적절한 사물과 사람에게 적절한 동기에 의해 적절한 방법으로 느끼는 것이 중용이며 최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참 쉬운 듯합니다만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열거한 모든 ‘적절한’ 사항들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때와 장소’를 지켰더라도 ‘적절한 사물과 사람’을 구별 못할 수도 있으며 ‘적절한 방법’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늘 자신을 살피며 항심(恒心)을 유지할 수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주장한 중용의 해석과 그 뜻이 일치하는 면이 있습니다. 도올은 '똥을 잘 누는 것이 중용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1년 365일 쾌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그 사람을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 아니 예수 이상으로 존경하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규칙적인 식습관을 유지해야 쾌변을 볼 수 있는데 1년 내내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름철 급하게 마신 막걸리 한 잔이 설사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도올이 생각하는 중용은 비록 똥을 누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이라도 그 지속성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이 중용을 참으로 유연하게 적용했습니다. 자로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가르치고 염유에게는 곧바로 행동에 옮기라고 조언한 것은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방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공자는 꽤 현실적인 감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올이 강의한 ‘중용’은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깝습니다. 그의 말대로 1년 365일 쾌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공자나 맹자가 살아 돌아온 것일 겁니다. 즉, 도올이 말하는 중용은 보통 사람은 도달할 수 없는 하늘 저편 무지개 너머에 있는 이상의 나라에서나 현실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365일 쾌변을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생을 한결같이 살아가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된 욕심을 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재상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관포지교라는 말을 낳게 한 관중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의리 없고 비열하고 염치 없는 사람처럼 비칩니다. 또한 명재상으로 칭송 받는 황희 정승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오는 뇌물을 사양한 적이 없으며 살인죄를 저지른 사위의 죄를 없애기 위해 당시 대사헌이었던 맹사성에게 청탁을 넣었을 정도로 부도덕했다고 합니다. 재상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황희는 24년 동안 재상의 지위에 있었고 19년을 영의정으로 봉직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 사람의 직무와 관련한 평가는 공(功)과 과(過)를 구분해서 공이 과를 충분히 덮고 남을 정도가 되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역사가 주는 메시지입니다.

현실이 이상적이지 않을 땐 유연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자에겐 안회(顔回)처럼 뛰어난 제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부족한 제자들이 미덥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각자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주요 인사가 벌써 여덟 명입니다. 그중 국무총리 후보는 세 명이나 됩니다. 불통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반대를 하는 모습도 중용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총리를 임명하면서 성직자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까요? 끝도 없는 지도층의 부도덕함에 지친 대중은 이미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이렇게 화가나 있는 대중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무의 크기는 보지 않고 나무에 있는 작은 옹이에 집중합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입니다. 이러한 대중의 태도를 너무도 잘 아는 정치인들은 너도 나도 눈치를 보기에 바쁩니다. 언론 역시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포장하며 대중의 눈치를 봅니다. 대중의 마음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립니다. 세상이 온통 살얼음판으로 변해갑니다.

대통령 선거도 아닌 총리를 임명하는 일에 나라가 소란스럽습니다. 서로가 ‘네 탓’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공자가 살아 돌아온다면 여당과 야당 그리고 대중에게 어떤 맞춤형 가르침을 주실까 궁금해집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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