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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쉽게 생각하기

2014.06.26


#1

지하철 3호선 불광역 근처에 사는 몸이라 아침이면 북한산 향로봉 자락에 있는 왕복 1시간 반 거리의 탕춘대 약수터까지 산책을 다니곤 합니다. 탕춘대 약수터는 수질검사에서 늘 음용 적합으로 나오는 곳이라 등산객 산책객 할 것 없이 이용객이 많습니다. 이 약수터에서 받아 마시는 약수 한 바가지로 나의 하루는 행복합니다.

이 약수터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끔씩 벌어졌습니다. 전날에 분명히 있었던 플라스틱 물바가지가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사라진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기로 플라스틱 물바가지를 집에서 쓰려고 가져간단 말인가? 뭔가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바가지 대신 두 손으로 약수를 받아 마시며 지나쳐왔습니다.

최근 그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이 약수터 내방객 중 한 분이 물바가지를 깨서 버린 것이었는데 그 사연이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어느 부인이 산책길에 개를 데리고 와서 바가지에 물을 받아 개에게 먹이는 장면을 본 순간 그분이 물바가지를 빼앗아 깨서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뒤로도 이 약수터를 지나다 물바가지를 보면 버리든지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물바가지를 강아지와 같이 쓰게 될지도 모르니 각자 물 잔을 갖고 다니라고 하더랍니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 분의 행동에 공감을 표시하며 이구동성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을 성토했습니다. 강아지를 자식 대하듯 하는 세상이라지만 밥그릇까지 같이 쓰는 사람이야 있겠습니까. 그뒤 이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약수터에 누군가가 사다 놓은 홍청의 새 플라스틱 물바가지 두 개가 지난 세 달 이상 비치돼 있었습니다. 바가지에는 '가져가지 마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확인하기로 그 중 하나가 최근에  다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산책객들로부터 들은 또 하나의 얘기는 아침에 약수터에 와 양치질을 하고나서 공용의 물바가지로 입안을 헹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바가지가 사라진 원인이 몰상식을 보고 못 참는 그분의 눈에 어떤 몰상식한 장면이 띄었던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산행길에 더러 보게 되는 물바가지 없는 약수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괜스레 걱정됩니다.


#2

오래 전 강남의 대모산 자락에서 살던 때의 일입니다. 등산로 옆의 풀섶에 누가 호박 몇 포기를 심었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풀섶은 무성한 호박밭으로 변했습니다. 길가에 호박 몇 개가 탐스럽게 맺힌 것이 눈에 띄어 몰래 따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지나다 보니 호박잎이 시꺼멓게 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옆에 팻말을 박아 놓았는데 거기에 이런 저주의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호박 따다 먹은 놈, 암에 걸려 뒈지고, 3대가 망해라.’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런 악담을 퍼부었을까. 공들여 가꾼 호박을 도둑질 당한 농부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호박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제초제를 뿌려 태워 죽일 것까지야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호박씨를 심는 마음은 농부의 마음이었겠으나, 호박을 죽이는 마음은 도회의 찌든 마음이 아니었을는지요.

‘키운 사람도 호박 맛 좀 봅시다.’라고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3

지하철에서 한 지인의 목격담입니다. 경로석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다른 노인이 다가와서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젊어 보이시네요.”
앉아 있던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먹을 만큼 나이를 먹었어요.”
자칫 멱살잡이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옆자리와 주변의 승객들이 긴장한 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자 선 노인이 “그러면 우리 주민증을 깔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앉은 노인도 “좋아요.”하며 지갑에서 주민증을 꺼내 서로 “옛수다.”하고 건넸습니다.
이때부터 주위에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민증을 확인한 뒤 앉은 노인이 먼저 일어서며 “저보다 많으시군요. 연세보다 젊어 보이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 노인이 “젊어 보이는 건 그 쪽이 더 하시면서.”라며 “일어설 것 없어요. 나는 이번 정거장에서 내립니다.”하고 악수를 청한 뒤 총총히 내리더랍니다.
노인이 내린 후에도 승객들의 얼굴엔 미소가 오래 머물렀다고 합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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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gi, conpaper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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