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제네시스 하우스' [김수종]

 


뉴욕의 '제네시스 하우스'
2022.01.26

세계가 변합니다.
미국이 변합니다.
한국이 변합니다.
소비자가 변하고 생산자가 변합니다.
자동차의 세계가 변합니다.

작년 12월 30일 뉴욕타임스 경제란에 '전시장 체험을 새롭게 창조하다'란 제목이 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작년 가을에 뉴욕 맨해튼에 개설한 자동차 전시장 '제네시스 하우스'(Genesis House)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근래 뉴욕에 가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이 전시장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만 신문과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에 의해 그 모양을 그려봅니다.

제네시스는 성경에서는 '창세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현대차가 몇 년 전 야심차게 내놓은 고급차 브랜드(상품)이기도 합니다. 고급 상품은 맨해튼에서 통하면 세계로 통합니다. 이 제네시스 브랜드를 미국은 물론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맨해튼에 꾸며놓은 자동차 전시관이 바로 제네시스 하우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판매를 위해 자동차 모델을 진열해 놓는 종전의 전시실과는 전혀 다른 '브랜드 체험센터' 개념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평합니다.

우선 위치가 특별합니다. 로어 맨해튼 10번가는 허드슨 강 건너 뉴저지가 보이는 곳입니다. 19세기에는 육류를 가공해서 포장하는 공장지대였고 20세기 후반에는 클럽과 게이바가 많아서 그리 상쾌한 인상을 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미술과 패션의 명소가 된 곳입니다. 미국 현대미술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휘트니미술관'이 이곳으로 이사했고 각종 고급 브랜드 패션 가게들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 비싼 곳에 위치한 빌딩의 3개 층 1천백 평에 최고급 실내 디자인을 통해 제네시스 전시실, 도서및 자료관, 고급 레스토랑, 카페, 전통차 시음실, 이벤트홀을 마련했고,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야외 테라스도 만들었습니다. 방문자들이 이 전시장에 들어오면 제네시스 구경은 물론 한국적 풍미를 가진 고급 식사와 전통 한국 차를 마시며 희귀한 책이나 자료를 볼 수 있는 일종의 고급 문화 체험공간이 됩니다.  

현대차가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특별히 많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차를 잘 봐주려고 쓴 기사는 아닌 듯합니다. 근래 자동차메이커들이 고급 자동차 브랜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새로운 추세를 취재 보도한 기사입니다.

이런 갤러리풍 전시관의 시초는 2006년 문을 연 '아우디 포럼'이라고 합니다. 그후 맨해튼 곳곳에 세계적 자동차회사의 유명 브랜드 체험관이 속속 생겨났다고 합니다. '캐딜락 하우스' '람보르기니 라운지'가 있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급 전기차 모델 EQS를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전시관을 개관했습니다. 토요타가 개설한 렉서스 전시장은 자동차보다는 친절함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꾸몄다고 합니다.

왜 이런 고급 자동차 모델에 초점을 맞춘 전시실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건 20대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소위 MZ세대의 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일즈맨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상품구매를 압박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아늑한 분위기 속에 차에 앉아도 보고 음식도 즐기고 책도 보는 여유로움을 원하는 소비층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재빨리 이런 잠재 고객을 파악한 것입니다. 현대차의 제네시스 하우스가 뉴욕타임스 기사의 초점이 된 것은 이런 갤러리풍 전시장의 최신 '완판'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미국판매 실적이 아주 좋았습니다. 현대·기아차가 약 150만대를 팔아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고 합니다.

 

 


특히 현대를 신나게 만든 것은 프리미엄(고가) 브랜드 제네시스 판매가 4만9천대를 넘었고 이를 주도한 것이 SUV 모델 GV80이었습니다. 이 모델은  1년 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몰다 전복사고를 일으켰는데도 자동차 내부가 크게 손상되지 않아 관심을 끌었던 차종입니다.  광대한 대륙을 가진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차가  SUV입니다.
작년 현대차그룹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0%였다고 합니다. 이제 현대차는 미국 주류 사회의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자동차메이커로 자리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1986년 현대 '엑셀'이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일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TV 광고가 나왔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LA 롱비치 항구에 화물선이 입항했습니다. 기중기가 커버로 덮인 물체를 부두로 하역합니다. 그리고 커버가 벗겨집니다. 은백색 '엑셀'이 반짝입니다. 남성 목소리 멘트가 나옵니다. "Car, that  makes sense" (얘기가 되는 차)
그 즈음 LA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엑셀(Excel)과 유고(Yugo), 어느 게 살아남을까." 독일제와 일본제 자동차가 미국 자동차 시장을 판칠 때였으니, 기사의 톤은 이름도 없는 아시아의 후진국 자동차 회사와 공산국가 유고스라비아 자동차가 미국시장에 차를 팔겠다고 감히 도전했다는 투였습니다. 일반 미국인들 사이에 한국이란 나라는 섬유제품이나 마이크로웨이브오븐 등 경공업 제품을 파는 나라로 조금 알려졌을 뿐이었습니다. 한국 자동차가 미국에 출시되었다는 자부심에 차 있던 교포들이 엑셀을 구입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컨드 카'로 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80마일(128㎞)로 달렸더니 차체가 덜덜 떨려서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그후 미국 언론에서 유고는 사라졌고 엑셀은 저소득층 소비자를 끌면서 북미 시장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TV 광고 이미지가 새롭게 떠오릅니다. 폭풍우 속에 하역되는 엑셀의 이미지 말입니다. 현대차는 1980년대 폭풍우 같은 미국 자동차 시장을 뚫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5년이 흘렀고 현대차는 미국 주류사회 속에 고급 자동차 브랜드를 각인시켰습니다.
한 국가가 또는 한 기업이 30년 이상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할 때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속은 얼마나 야물어졌는지 모르나 현대차가 커졌습니다. 또 한국도 커졌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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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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