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여론조사에 드러난 널뛰기 민심 [권오숙]

 


대선 여론조사에 드러난 널뛰기 민심
2022.01.24

대선을 앞두고 많은 여론 조사 기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대선 후보 지지율에 대한 여론 조사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실로 시소게임을 보는 듯합니다.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하며 막판까지 예측할 수가 없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이 여론 조사 결과를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후보의 공약 하나하나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우리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예를 좀 들자면 대선 출마 선언 후 소위 컨벤션 효과로 크게 이재명 후보를 앞서던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대표의 가출과 함께 ‘이대남(이십대 남자)’의 외면을 받아 이재명 후보에게 크게 밀렸습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다시 돌아오고 갑자기 윤 후보 측은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인상’ 등 ‘이대남’을 겨냥한 공약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바로 여론 조사 결과에 반영되어 다시 이재명 후보를 크게 앞섰습니다. 이렇게 여론 조사 결과가 공약과 관련된 집단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보여주자 후보들은 팬데믹 상황과 다가오는 경제 위기 등의 엄중한 문제에 대한 거시적 안목의 국가 경영 비전 대신 아주 얄팍하고 단편적인 공약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후보들의 대선 행보에도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대선 후보의 인물 됨됨이나 거시적 비전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그저 내게 유리한 공약에 촉각을 세우고 그 믿을 수 없는 공약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유권자들의 모습도 보기 좋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번 선거가 ‘비호감 경쟁’이라는 냉소적 말이 나올 정도로 후보와 후보 가족들의 치부와 문제점들이 너무 많은 탓에 빚어진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됨됨이나 국정 운영 능력보다는 자기 이득과 부합하는 공약에 표를 던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심지어 셰익스피어가 쓴 로마 사극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의 민중의 모습에서도 그런 사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의 전쟁 영웅인 시저가 독재 군주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공화정을 지키고자 하는 브루투스와 시저 반대파들이 시저를 암살한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극에서 셰익스피어는 시저를 비롯하여 브루투스, 안토니우스 등 우리들에게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들을 모두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지닌 복잡한 인간상으로 재현했습니다.

우선 전쟁영웅으로서 남성다움과 용맹을 상징하는 시저를 간질에 한쪽 귀가 먹었을 뿐만 아니라 미신

 

빈첸초 카무치니(1771~1844). <시저의 암살>(1805년).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에 크게 의존하고 아첨에 약한 인물로 그렸습니다. 또 로마 시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브루투스는 공화주의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 시저 암살 음모에 가담하지만 지나친 이상주의에 빠져 정치적 오판과 실수를 거듭합니다. 그는 동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저의 최측근이었던 안토니우스를 시저와 함께 제거하지 않았고 안토니우스가 시저를 추모하는 연설을 하도록 허락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로마 군중조차도 양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저 암살자들과 시저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군중을 몹시 변덕스럽고 우매한 무리로 묘사했습니다. 시저 암살이 독재를 막고 공화정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 브루투스의 연설에 감동하여 시민들은 “브루투스를 시저로 추대하라.”(3막 2장 51)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브루투스에 이어 연단에 오른 안토니우스는 피로 얼룩진 시저의 시신을 보여 주어 로마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한 뒤, 시저가 로마 시민들에게 각자 75드라크마씩 나눠주고 자신의 사유 장원을 증여한다는 유언장을 낭독합니다.

이 유언장 낭독은 청중의 현실적 이익에 호소하여 방금 전까지 독재자를 처단한 고결한 행위로 보이던 브루투스 일행의 거사를 일순간 잔인한 반역 행위로 뒤바꿔 놓습니다. 암살자들의 대의명분에 찬동했던 민중은 한순간에 시저 암살자들을 색출하여 죽이는 폭도로 변합니다. 이 장면에서 민중들은 ‘신나(Cinna)’라는 시인을 단지 역모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살해하는 광란의 모습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로마의 자유와 시민들의 공리를 위해 일으켰던 브루투스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로마에 무질서와 내전만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시저 암살파를 진압한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더스가 제2 삼두정치의 세 집정관으로 득세하게 만드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이 극에서 셰익스피어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민심을 사야 함을 보여 줍니다. 시저 암살 후 안토니우스 세력이 우세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도 바로 이런 민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셰익스피어는 군중을 쉽게 부화뇌동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로 그립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렇듯 민중이 정치권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그들이 좀 더 이성적이고 분별력을 지녀야 함을 역설하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75드라크마라는 시저의 유산이 로마 시민의 마음을 시저 암살파에서 시저 옹호파로 돌아서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설정한 것이 현재 우리 유권자들의 태도와 대선 후보들의 가벼운 횡보를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대선이 45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특정 집단의 표를 얻어내기 위한 세대간· 젠더간· 계층간 갈라치기 공약들에서 벗어나 전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해 줄 멋진 비전 제시를 기대하는 건 헛된 바람일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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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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