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사철나무 [박대문]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사철나무
2022.01.21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사철나무 [박대문]
사철나무 (노박덩굴과) 학명 Euonymus japonica Thunb


소복소복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평온해집니다. 깨끗한 순백의 세상과 군더더기가 가려진 주변 풍경이 참으로 쾌적합니다. 날씨 차갑고 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의 썰렁함을 일시에 잊게 해줍니다. 이 쾌적한 눈빛 풍경에서 만난 사철나무의 푸른 잎새와 붉은 열매가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평상시 무심코 지나쳤던 그 자리의 그 모습의 사철나무가 새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바로 하얀 눈 때문인가 봅니다. 망망한 사막의 벌판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신기루 환상처럼 곱디고운 모습입니다. 잎새 떨궈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의 흑갈색과 풀 마른 들판의 황량한 세상에, 널브러진 주변의 난삽하고 볼썽사나운 잡것들을 덮어버린 하얀 눈이 사철나무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 것입니다. 초록에 굶주린 겨울철에 시야를 환하게 밝혀주는 사철나무의 매력을 이제야 알아보다니...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심히 지나쳐 버린 주변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떠오릅니다.

 

 



사철나무의 푸른 잎새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붉은 열매가 이토록 고운 모습인 줄을 몰랐던 까닭이 무엇일까? 하얀 눈 속에서 돋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것은 세상이 한겨울 눈빛에 잠기기 이전에는 주변에 푸른 풀도 나무도 널려 있고, 고운 꽃들이 하도 많이 피고 지고 하기에 눈여겨볼 새가 없었던 탓입니다. 또한 사철나무의 빈약하고 화려하지도 않은 연초록 꽃이 눈길을 끌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 길거리나 공터, 생울타리에서 쉽게 만나는 키 작은 나무이기에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 속에서 드러나는 감춰진 매력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관심을 두고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철나무는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는 까닭에 원예용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다양한 개량종이 개발, 유통되고 있습니다. 금빛 나는 잎 색깔을 지녀 관상수로 널리 심고 있는 금사철, 금테사철 등도 사철나무 종류입니다. 꽃말은 사철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데서 붙여진 “변함없다”입니다. 상록수이기는 하지만 이른 봄에 새잎이 나면서 묵은 잎은 서서히 떨어집니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른 봄에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잎이 깜찍하고 청초한 싱그러운 모습으로 봄소식을 전해줍니다. 연한 빛깔의 윤택 있는 육질의 새잎이 앙증스레 곱고 귀엽습니다.

한방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철나무 껍질을 화두충(和杜冲)이라 하여 이뇨제 또는 강심제 원료로 사용했으며, 잔가지와 뿌리는 소염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나무껍질은 질겨서 밧줄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사철나무 [박대문]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나무라서 ‘사철나무’


사철나무는 ‘겨우살이나무’, ‘동청목(冬靑木)’이라고도 합니다. 노박덩굴과(科)의 늘푸른나무로 물론 ‘겨우살이’나 ‘동청목’과는 종(種)이 다른 나무입니다. 겨우살이는 주로 참나무에 붙어 기생하는 겨우살이과(科) 식물이고 ‘동청목’은 중국에서 들여와 원예용으로 심는 감탕나무과(科) 식물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별명이 붙은 것은 겨울에도 푸르게 추위를 견뎌나는 나무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철나무는 주로 난대지방에서 자라는 키 작은 나무인데도 추위에 강해 중부지방에서도 주변에 흔하게 심어 기릅니다. 추위와 공해, 음지에 강하며 원래 해안가에 서식하던 식물로서 소금기에도 내성이 강합니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으로 얕게 갈라지며 잎은 마주나고 타원 모양이며 가죽질이며 너비는 3~4cm 정도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습니다. 6~7월에 잎겨드랑이에 취산꽃차례의 자잘한 황록색 꽃이 모여 달립니다. 열매는 삭과(蒴果)인데 굵은 콩알만 하고 진한 붉은 색으로 익으며 겨울이 되면 열매껍질이 네 조각으로 갈라지고 속에서 빨간 씨가 밖으로 드러납니다.

전정(剪定)으로 나무를 마음대로 다듬을 수 있어 원하는 모양대로 키울 수도 있으며,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습니다. 여러 나무를 한데 뭉쳐서 심더라도 서로 심하게 경쟁하지 않고 잘 자라며, 가지를 잘라내면 새로운 싹이 나오는 것이 이 나무의 생리적 특성입니다. 아무데서나 주변 여건을 탓하지 않고, 비좁은 곳에서도 한데 어울리고, 홀로 있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초(民草)의 삶과 같이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유사한 종류로는 금테사철, 금사철, 금반사철, 황록사철, 줄사철, 긴잎사철, 흰점사철, 은테사철 등이 있습니다.

관심을 두고 알아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철나무가 우리 주변의 아주 가까이서 매우 유용하고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관심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토록 많은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굵고 우람한 소나무만 낙락장송이라고 겨울의 푸르름과 기개를 칭송했는데 우리 생활 주변의 작은 사철나무 또한 겨울의 추위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고 있으니 앞으로는 사철나무도 낙락장송만큼이나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게다가 고운 색깔의 예쁜 열매까지 맺고, 겨울 산새의 배고픔까지 해결을 해주니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나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겨울의 사철나무를 보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즈음의 세상살이를 떠올려 봅니다. 오직 사익과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공정과 상식의 잣대가 때와 곳에 따라 오락가락 갈대처럼 흔들리는, 자칭하여 사회 지도자라 하는 일부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성과 품성이 바닥에 떨어진, 저질스럽고 비열한 짓과 막말을 거침없이 행하는 자들을 보면서도 이를 부추기고 퍼뜨리는, 맛이 간 사회의 목탁 또한 시정잡배보다 더 나은 게 무엇인가? 이들이 세상을 너무나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턱없는 말장난으로 말 없는 민초의 심경을 헤집는 이 사람들은 스스로 저명인사, 사회의 거울이라는 자가당착에 빠져 창피한 줄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름은 없지만, 맡은 바 자기 일에 충실하고 착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 살아가는 내 주변의 장삼이사들을 이들보다도 더 소중하고 높이 봐야 할 것을 이번 기회에 눈에 덮인 사철나무로부터 배웁니다.

 


(2022. 1. 21 눈 덮인 사철나무를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www.freecolumn.co.kr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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