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분담금 1인당 1,135만원씩 냈는데"...2기 신도시 주민들 분통 터트리는 이유


"교통분담금 1인당 1,135만원씩 냈는데"...2기 신도시 주민들 분통 터트리는 이유


신도시 개발 이대론 안된다 

말뿐인 '광역교통망 건설 계획' 


광역교통망 왜 차질 빚나 

재원조달 명확한 규정 없어 

정부·지자체·사업시행자 

비용 분담 놓고 수년여 갈등


억울한 2기 신도시 입주민 

분양가에 교통분담금 포함

"정부가 한 약속 믿었는데…"

전철·철도는 개통 지연·취소


   은퇴를 앞두고 있던 성기철 씨(60)는 2010년 경기 수원 호매실지구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교통 환경이 열악해도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2019년까지 신분당선을 호매실까지 연장한다는 광역교통계획을 믿었다. 그러나 이 노선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다가 결국 지난해 무산됐다. 성씨의 아파트 분양가에는 전철 공사비 930만원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공사비까지 받아가 놓고도 ‘경제성이 없다’며 전철을 놔주지 않고 있다”며 “국가가 대놓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입주 5년째인데… 전철 없는 위례 > 서울 송파구와 경기 성남·하남 등에 걸쳐 있는 위례신도시는 심각한 출퇴근 교통난에 시달리고 있다. 계획된 4개 철도사업 중 착공에 들어간 노선이 하나도 없다. /조인스랜드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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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주요 공공택지에서 교통망 부족에 대한 주민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교통망 신설을 약속하고 돈까지 걷어갔지만 경제성 부족,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는 사례가 거의 모든 공공택지에서 발생하고 있어서다.


예산 부족에 비용 부담 전가 급급 

교통망 구축에 드는 돈을 누가 대느냐가 명확하지 않은 게 사업 무산 또는 지연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광역교통망 구축에 드는 비용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사업시행자 등이 나눠서 부담한다. 사업시행자가 용지판매 대금에 포함해 걷는 분담금만으로는 충당이 어려워서다. 그러나 광역교통법에선 명확한 비용 부담 비율을 정해두지 않고 있다. 정부 지자체 사업시행자가 그때그때 협의해 임의로 정한다. 이렇다 보니 사업시행자와 지자체, 중앙정부 간 비용 분담 비율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유정복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본부장은 “교통망 개통 시점이 계획보다 수년 이상 늦춰지는 건 사업비 부족과 협의 지연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통 전문가는 “정부든 지자체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라며 “돈이 없다 보니 서로 비용 부담을 줄이려고 싸운다”고 전했다.





인천 검단신도시에 예정된 ‘원당~태리 광역도로’는 김포시와 인천시 간 사업비 분담 문제로 수년간 갈등을 빚다가 지난해 무산됐다. 인천시가 독자적으로 다시 추진 중이지만 사업비가 당초 560억원에서 1300억원으로 늘어났다.


지구별 형평성 논란 불가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구마다 광역교통개선대책 분담 비율이 제각각이다. 사업 시행자가 내는 분담금은 최종적으로 아파트나 상가 분양자들의 분양가에 포함된다. 교통 수요자가 재원을 부담한다는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른 것이다. 사업시행자의 분담금이 커질수록 분양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천서창2지구는 사업시행자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광역교통개선대책 분담금을 100% 냈다. 분양자들이 교통시설 건설비를 모두 부담했다는 얘기다. 반면 화성봉담2지구에선 LH 분담금이 20.9%에 그쳤다. 나머지 79.1%는 정부와 지자체가 부담했다.


판교신도시는 입주민 한 명당 분담금이 평균 1838만원이다. 화성비봉지구 분담금은 1인당 405만원에 불과하다. 한 교통 전문가는 “입주민이 내는 분담금이 개발지구마다 달라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경제성 부족한 사업도 많아 

경제성을 무시한 채 교통망 확충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사업 지연 이유라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거의 모든 공공택지의 전철망 구축 계획이 경제성 부족으로 제때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제 개통까지 20년 걸린 사업도 있다. 위례 트램선은 10년 동안 민자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지난 6월 무산됐다. 결국 재정사업으로 전환돼 재추진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기 신도시 기획 당시 조성 원가를 낮추려다 보니 광역교통망 계획이 허술했다”고 지적했다. 


까다로운 기획재정부의 민자적격성 심사와 예비타당성 조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철도 사업은 경제성지표(B/C)가 1.0을 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철도 전문가는 “서울 강남권과 인접한 철도를 제외하곤 현실적으로 B/C 통과가 어렵다”며 “공공택지를 개발할 때 경제성이 있어야만 정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교통망뿐 아니라 병원, 학교 등 기반시설을 우선 조성한 뒤 주거시설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주민이 선호하는 철도가 아닌 도로 중심의 광역교통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에 수립된 총 862개 광역교통개선대책 중 도로 계획이 501건으로 전체 사업비의 58.1%를 차지한다.





광역교통개선대책 

부지면적 100만㎡ 혹은 수용인원 2만 명 이상 대규모 개발사업을 할 때 수립하는 교통망 대책. 이른 시일 내 해당 구역의 교통이 활성화되도록 도로, 철도, 접속시설 등을 확충하는 계획이다.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시행된다. 수립 대상지역은 수도권, 부산·울산권, 대구권, 광주권, 대전권 등 다섯 곳이다. 

양길성/이정선/서기열 기자 vertigo@hankyung.com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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