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서울 30대 맞벌이 부부는 웁니다"


8.2 대책 두고 엇갈린 실수요자의 희비


#기대 

자녀 둘을 가진 맞벌이 직장인 김모(43)씨는 자신을 ‘전세 난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05년 결혼한 뒤 서울 신림동→경기도 과천→평촌으로 이사를 하며 10년 넘게 전세를 살았다. 차곡차곡 청약 가점을 쌓아 2015년부터 서울에 아파트 청약을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는 이번 ‘8·2 부동산 대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영주택에 대해 청약가점제 적용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서다. 그는 "나 같은 무주택자도 ‘로또’로 불리는 청약에 당첨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망 

서울 화곡동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맞벌이 직장인 임모(32)씨. 임씨와 아내는 각각 서울 상암동과 여의도동에서 일한다. 오는 9월쯤 공덕동에 6억원 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려다 8·2 대책 발표 이후 계획을 미뤘다. 애초 3억6000만원을 대출받을 계획이었는데 대출 한도가 2억4000만원으로 줄면서다.


이번 대책엔 투기과열지구 내 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60%에서 40%로 낮추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는 "직장 생활하기 편한 곳에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왔는데 잠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서울 전역 등에 대한 투기 수요 억제다. 정부는 ‘서민 실수요자’는 보호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고강도 규제로 혜택을 보는 실수요자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의 꿈에서 멀어지는 실수요자도 생겼다. 페이스북과 인터넷 카페 등에선 ‘30대 맞벌이 부부’가 최대 피해자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청약가점제 적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의 가점제 적용 비율을 기존 75%(나머지 25%는 추첨)에서 100%로 높이는 식이다. 


청약가점제는 ▶무주택 기간(최고 32점) ▶부양가족수(최고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 등을 더해 가점이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제도다. 민영주택 미계약분에 대해서도 종전에는 예비입주자를 추첨으로 선정하던 데서 가점제를 우선 적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제도 취지대로 무주택 기간이 길고 자녀가 많은 실수요자의 청약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김영국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장은 "무주택자가 비교적 저렴한 값에 새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자녀 셋을 둔 직장인 김원형(36)씨는 "청약가점제 문이 넓어져 내년부턴 당첨을 기대할만 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혼인기간이 5년 이내이고, 임신 중이거나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에게 분양하는 신혼부부 특별 공급제도 운영하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 공급을 받으려면 맞벌이 가구의 경우 전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20%(세전 592만원·3인가구 기준) 이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특별 공급은 정책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무주택자의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해 일반 청약자들과 경쟁하지 않고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토부는 8일 특별공급 당첨분 중 미계약됐거나 자격미달로 취소된 물량을 일반공급으로 돌리지 않고 다시 특별공급 신청자 중에서 예비 입주자를 뽑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미혼·신혼부부는 상대적으로 불리

하지만 8·2 대책에 따르면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부양가족수에 따른 청약 가점이 큰데 해당 사항이 없어 당첨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결혼해 서울 대림동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박모(33)씨는 청약 가점이 24점에 불과하다. 서울 지역 당첨 기준으로 알려진 60~70점에 턱없이 모자란다.


지난달 GS건설이 분양한 ‘신길 센트럴 자이’ 아파트의 경우 전용 52~84㎡의 중소형 위주로 구성해 신혼부부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청약 결과 당첨 점수가 56~74점에 달했다. 박씨는 "가점제는 포기하고 추첨제에서 당첨되기를 기대해 왔는데 추첨제가 없어져 당황스럽다. 8·2 대책대로라면 가점 적은 30대 맞벌이 부부가 서울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출도 까다로워졌다.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면서 각각 60%와 50%였던 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모두 40%로 낮아졌다. 대책에서 LTV를 40%로 낮춘 만큼 집값의 60%는 들고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6억2448만원까지 올랐다. 서울에서 평균값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적어도 3억6000만원은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출 규제는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만 자산 형성 기간이 긴 50대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30~40대가 불리하다. 상대적으로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많은 무주택자가 유리하다.


예외는 있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적용하지 않는 ‘서민’은 ▶부부 합산 연 소득이 6000만원 이하이면서▶6억원 이하 주택을 사는 ▶무주택 가구주다. ‘또는(or)’이 아니라 ‘그리고(and)’ 조건이라 세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서민 주택마련 대출인 ‘디딤돌 대출’ 기준에서 따왔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6억원을 넘긴 데다 통계청이 집계한 올 1분기 전국 맞벌이 가구 연평균 소득은 7145만원에 달한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실장은 "주택가격 기준을 현실화하고 서민 소득 기준도 최소 1000만원 이상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30~40대 맞벌이 부부는 보유자산은 적어도 소득이 다른 계층보다 높을 수 있어 대출상환 능력이 충분한 경우가 많다. 이번 대책에선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다 실수요자인 30~40대 맞벌이 부부까지 억누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다양한 유형의 실수요자가 있을 수 있지만 청약가점제상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실수요자가 가장 주거복지 정의에 부합하다고 판단했다. 선의의 실수요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선 최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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