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남아돌아?...“이런 식으로 탈원전 해야 하나”


'탈원전 논리 꿰맞추기' 논란 


기업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3년간 세 번 발동한 감축지시 7월만 두 번

무리한 계획에 달성률도 1년새 20%P '뚝'

"7월보다 무더워지는 8월이 더 걱정"


   “장관이 뉴스에 나와 발전소를 많이 지어 전기가 남아돈다고 말하는 걸 봤습니다. 전기가 남아돈다면서 4시간이나 공장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막는 이유가 뭡니까.” 


최고기온이 34도(서울 기준)까지 오른 지난 3일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직원이 전력 수급 상황

을 점검하고 있다. 이날도 전력 상황판에는 전력예비율이 28.8%로 높게 유지됐다. 출처 디지털타임스

edited by kcontents


중소 엔지니어링 업체를 운영하는 김 모 대표는 최근 정부가 폭염에도 전력 수급에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전력 수급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선진 에너지 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 걸 두고 한 얘기다. 김 대표는 지난달 정부로부터 두 번에 걸쳐 전기 사용량을 줄이라는 ‘급전(急電)지시’를 받았다. 예년에 비해 목표 감축량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남에 따라 중소기업 사이에서는 “탈(脫)원전하기 전에 공장이 먼저 문을 닫게 생겼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탈원전 해야 하나” 

무더위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정부가 기업들에 전기 사용량 감축을 요구하는 ‘급전지시’는 2014년 제도 도입 후 작년까지 시범감축을 제외하면 시행횟수가 세 번에 불과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발동하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다. 급전지시가 내려지면 기업들은 일정 시간 공장을 멈춰야 하는데, 생산 타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7월에만 벌써 두 차례 발동했다. 정부의 감축 지시량 역시 역대 최고였던 2014년 12월18일 1424메가와트(㎿)를 뛰어넘어 지난달 12일에는 1524㎿, 같은달 21일에는 2508㎿였다. 하루 최대 전력 수요의 2~3%에 해당한다. 


급전지시 대상인 약 2000개 기업은 정부와 맺은 약속에 따라 전기 사용량을 줄이면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김 대표의 경우 시간당 1킬로와트(㎾)를 감축하면 8원 정도를 받는다. 김 대표는 “공장에서 시간당 600㎾의 전기를 사용하는데 급전지시가 내려오면 4시간 동안 400㎾를 줄여야 한다”며 “이럴 경우 아무리 인센티브를 받아봤자 손해를 본다”고 설명했다.


중소 철강업체 대표인 A씨는 “한 달에 두 번이나 급전지시가 내려오는 것은 처음 봤다”며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탈원전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B대표는 “7월보다 더 무더워지는 8월에는 몇 번의 급전지시가 내려올지 걱정”이라고 했다. 



무리한 목표치 제시한 정부 

기업들이 정부의 급전지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12일 정부가 기업에 요구한 감축량은 총 1524㎿였으나 실제 감축량은 1200㎿였다. 정부 목표치 대비 달성률이 79%였다. 같은달 21일에는 정부가 2508㎿를 줄이라고 요구했는데, 기업들은 1721㎿를 감축했다. 이날 기업들은 2014년 제도 도입 후 사용량을 가장 많이 줄였지만 달성률은 정부 목표치에 턱없이 모자란 69%였다. 


2014년 12월18일과 2016년 1월28일에는 정부 목표치 대비 달성률이 각각 111%, 109%로 100%를 넘었다. 작년 8월22일에는 89%였다.


한 자릿수 코앞이던 예비율 

역대 가장 많은 2508㎿ 감축지시가 내려온 지난달 21일 전력예비율은 12.3%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 기업들이 1721㎿를 감축하지 않았다면 예비율은 10%로 떨어진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보통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 ‘이상 신호’로 받아들여 대책 마련에 들어간다. 정부가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기업들의 전기 사용을 통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가는 “에너지 수급에 아무 문제가 없어 탈원전을 해도 된다”는 정부 주장이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생산현장의 전기를 과도하게 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불도저식 탈원전 정책은 결국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한국경제

케이콘텐츠



.

댓글()